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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시(永川市)

인문지리행정지명

 경상북도 남동부의 중앙에 위치한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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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경상북도 남동부의 중앙에 위치한 시.
영역닫기영역열기개관
동쪽은 포항시와 경주시, 서쪽은 경산시와 대구광역시, 남쪽은 청도군, 북쪽은 군위군·청송군과 접하고 있다. 동경 128°41′∼129°09′, 북위 35°50′∼36°10′에 위치한다. 면적은 920.29㎢이고, 인구는 10만 648명(2015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1개 읍, 10개 면, 5개 행정동(30개 법정동), 276개 행정리(209개 법정리)가 있다. 시청은 경상북도 영천시 문외동에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자연환경
동쪽 경계는 태백산맥의 남쪽 여맥에 해당하며 이 부근에서 산세가 약해져서 운주산(雲住山, 806m)·도덕산(道德山, 703m)·관산(冠山, 394m) 등의 낮은 산맥으로 이루어져 있고, 서쪽에는 팔공산(八公山, 1,193m)·태실봉(466m) 등이 있다.
남쪽에는 금박산(金泊山, 432m)·구룡산(九龍山, 675m)·사룡산(四龍山, 685m) 등의 맥으로 이루어져 있고, 북쪽은 보현산(寶賢山, 1,124m)을 주봉으로 해 600∼800m의 급사면에 둘러싸여 있는 화산(華山, 828m)과 수석봉(水石峰, 821m)·모자산(母子山) 등이 동서방향으로 이어져 있어 지형은 완전한 분지로 이루어져 있다.
그 외 금호읍 경계에 봉화산(烽火山, 277m)·유봉산이 있고, 화산면과 신녕면의 경계에 일명 할미산 또는 새미산이라고 하는 노고산(老姑山, 520m)이 있다. 산맥으로 이루어진 시계에는 갑령(甲嶺, 288m)·노고재(502m)·시치재(195m) 등 유명한 고개들이 있고, 이들 고개는 예로부터 교통로로 이용되어 왔다.
갑령은 신녕면 화남리와 군위군 고로면 화수리의 경계에 있는, 팔공산맥(八公山脈)의 준령을 횡단하는 고개로 6·25 때의 격전지이기도 하며, 고개 밑에는 갑현(甲峴)이라는 취락과 갑현제(甲峴堤)라는 못이 있다.
시치재(195m)는 고경면 청저리와 경주시 안강읍 하곡리와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일명 시티재로 불린다. 한편, 시의 중앙부는 대체로 주위가 수성암으로 된 저산성 구릉지로 되어 있다.
낙동강의 대지류인 금호강(琴湖江)은 영천분지의 물을 집수해 낙동강으로 배수한다. 그런데 이 강의 주요지류인 자호천(紫湖川)·고촌천(古村川)·신녕천(新寧川)·고현천(古賢川) 등은 분지 중앙인 도심지 부근에서 그 연안에 주남들이라 불리는 영천 시가지 남방에 형성된 궁상(弓狀)의 대충적평야인 영천평야와, 시가지 동쪽 금호강이 곡류하는 매상부(袂狀部)에 영천평야보다 규모가 작은 장천평야를 형성하면서 모두 합류한다.
이 중 신녕천은 신녕면 시루봉에서 발원해 부산리에서 동쪽으로 꺾이고 신녕면을 관류하면서 충적평야를 형성한다. 그리고 다시 청통면과 화산면과의 경계를 이루면서 동남류해 도심지에서 고현천을 합해 도심지 서단에서 금호강으로 흘러든다.
분지의 저지는 대부분 중생대 경상계의 퇴적암층으로 이루어진 낮은 구릉지로서 야산으로 남아있거나 밭농사에 이용되며, 하천연변의 충적평야는 주요 논농사지역으로 개발되었다. 기후는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온대몬순기후권에 속하며, 동하절기의 기후가 현저히 다르다. 하절기에는 해양성기후의 영향을 받아 고온다습하고, 동절기에는 대륙성기후로 인하여 한랭건조하여 한서의 차가 큰 편이다. 연평균기온 12.25℃이며, 최고기온은 39.4℃(1994.07.20), 최저기온은 -20.5℃(1981.01.17)이다. 1월 평균기온 -0.9℃, 8월 평균기온 27.7℃이며, 연강수량은 1,021.8㎜이다.
영역닫기영역열기역사
이 지역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이 언제부터인지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이 지역에서 출토된 많은 청동기 유물과 유적을 통해 청동기시대에 사람이 많이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중 화산면 연계리와 금호읍 어온리에서 발견된 각종 청동제품은 우리나라 청동기시대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들이다. 청동기사회의 발전에 따라 사회가 분화되었던 사실은 양평리, 조곡리, 자양면 용산리의 지석묘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이 지역에서 소국(小國)주 01)들이 등장했는데, 변진 24국의 하나인 호로국(戶路國)과 골벌국(骨伐國)이 이곳에 비정되고 있다. 이들 나라는 236년(조분이사금 7) 신라에 병합되어 군현체제에 들어가 절야화군(切也火郡)주 02)과 사정화현(史丁火縣)이 되었다.
504년(지증왕 5)에는 이곳에 골화성(骨火城)이 축조되기도 했고, 531년(법흥왕 18)에는 왕명으로 제방수리시설이 이루어져 536에 청제(菁堤)라는 저수지가 축조되고 비가 세워지기도 하였다.
757년(경덕왕 16) 지방제도를 개편할 때 절야화군과 사정화현이 각각 임고군(臨皐郡)과 신녕현(新寧縣)으로 개명되어 양주(良州)에 속하였다. 당시 이 지역은 임고군을 중심으로 장진현(長鎭縣)·임천현(臨川縣)·도동현(道洞縣)·신녕현(지금의 신녕면) 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후삼국의 쟁패기에 이 지역은 경주에 가까이 있었으므로 왕건과 견훤의 관심이 집중된 지역이 되었다. 925년(경애왕 2)고울부(高鬱府)의 장군 능문(能文)이 왕건에게 항복하자, 이 지역이 경주에 가까이 있다는 이유로 크게 우대되었다.
927년 견훤이 신라를 공격할 때에도 이 지역은 양대 세력의 각축장이 되었다. 고려 통일 이후 임고군·임천현·도동현이 통합되어 영주(永州)가 되었는데 고울군이라고도 하였다. 995년(성종 14) 자사(刺史)가 파견되기도 했으나, 1018년(현종 9)신령현과 함께 동경유수관의 속현이 되었다.
영주는 1172년(명종 2) 감무(監務)가 파견되었으며, 다시 지주사(知州事)로 승격되었다. 1202년(신종 5)경주에서 신라부흥운동이 일어나자 이와 대립해 경주 별초군(別抄軍)과 싸움이 일어났고, 1233년(고종 20)에는 경주인과 연합해 반란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1335년(충숙왕 복위 4) 영주관내의 이지은소(梨旨銀所)가 현으로 승격했고, 속현이던 신녕현에도 1390년(공양왕 2) 감무가 임명되었다.
조선초에는 고려에 이어 영주군·신녕현으로 나뉘었다가 1413년(태종 13)영주군은 영천군으로 개명되었고, 신녕현은 1497년(연산군 3) 현의 향리들이 현감의 악정 때문에 도망가자 현이 한때 해체되기도 하였다.
당시 이 지역의 토질은 비옥·척박이 반반이었다고 하며, 풍속은 평이했고, 주민들은 학문을 좋아했다고 한다. 호구수는 『경상도지리지』에 의하면 영천군이 863호 8,104인, 신녕현이 382호 2,679인, 이지속현(梨旨屬縣)이 88호 410인이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에는 정세아(鄭世雅)·조희익(趙希益)·권응수(權應銖)·정대임(鄭大任) 등이 의병을 크게 일으켜 이 지역 일대의 적을 대대적으로 격파해 적이 2경주로 후퇴하도록 했고, 경주성 탈환에도 큰 공을 세웠다.
1895년영천·신녕이 모두 군이 되어 대구부에 속했고, 1896년 경상북도 영천군·신녕군이 되었는데 각각 2등군·4등군으로 되었다. 1914년 군면통폐합시 신녕군이 영천군에 흡수되어 오늘에 이른다. 1934년화북면·고경면이 만들어졌고, 1937년영천군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이 시기에 근대적 학교가 설립되자 은해사(銀海寺)의 승려들을 중심으로 해창학교(海昌學校)가 설립되었고, 일제 침입에 대항한 의병운동이 계속 일어났다. 1906년 산남의진(山南義陣) 편성시에 이 지역에 유림들이 크게 호응했고, 1919년 3·1운동 때에는 신령공립보통학교의 교사와 학생, 완전동 기독교신자, 화북면민과 임고면민의 만세시위 운동이 잇따라 일어났다.
8·15광복 이후 지방제도의 개편은 거의 없었으나, 1950년 북한군의 침입으로 인한 영천지구공방전 및 신녕지구 전투의 승리는 이 전쟁에서 우리측 승리의 결정적 계기를 마련하였다.
1973년 7월 1일금호면이 읍으로 승격했고, 1981년 7월 1일영천읍이 시로 승격되어 시·군이 분리되었다. 1986년 4월 1일화북면 삼창출장소가 화산면 구호동을 편입해 화남면으로 승격하였다.
그리고 1995년 1월 1일 시·군의 통합에 따라 영천시와 영천군이 통합되어 새로운 영천시가 되었다. 같은 해 8월 21일에는 화북면 오리를 오동리로, 고경면 답수리를 논금리로 각각 개칭하였다.
1998년 10월에는 영천시 조례 제211호에 의해 교동과 대전동의 대전 및 서산을 통합하여 서부동으로 하고, 명산동과 대전동의 오미를 중앙동으로 편입하였으며, 주남동, 봉작동, 영도동을 통합하여 남부동으로 변경하는 행정구역개편이 있었다.
영역닫기영역열기유물·유적
골화국(骨火國)의 고지로서 일찍부터 취락이 형성되어 많은 유물·유적을 남기고 있다. 선사시대의 유적으로는 신녕면 완전리 선돌과 임고면 양평리, 자양면 용산리, 대창면 조곡리, 북안면 당리·북리·상리 일대의 고인돌이 있다. 또 금호읍 어은리에서는 한경(漢鏡)·방제경(倣製鏡)과 호형대구·마형대구(帶鉤) 등 초기철기시대의 청동기 일괄유물이 출토된 바 있다.
삼국시대유적으로는 영천청제비(永川菁堤碑, 보물 제517호)을 비롯해 영천시 완산동고분군·도림동고분군, 금호읍 대미리고분군·석섬리고분군(石蟾洞古墳群)이 있다. 성지(城址)로는 후삼국 황보능장(皇甫能長)의 금강산성(金剛山城)과 화산산성지·치산성지·화남리성지·백암성지·선천리성지가 있다.
불교문화재로는 청통면 신원리의 은해사경내에는 은해사거조암영산전(銀海寺居祖庵靈山殿, 국보 제14호)을 비롯해, 은해사백흥암극락전(보물 제790호)·은해사 백흥암극락전수미단(銀海寺百興庵極樂殿須彌壇, 보물 제486호)·은해사오층석탑·은해사거조암삼층석탑(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04호) 등이 있다.
그리고 대창면 용호리에 영지사대웅전 및 범종각(靈芝寺大雄殿 · 梵鐘閣,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07호), 자양면 보현리의 거동사대웅전(巨洞寺大雄殿,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37호)등의 사찰건물이 있다.
또한, 금호읍의 영천신월동삼층석탑(永川新月洞三層石塔, 보물 제465호), 신녕면의 영천화남동삼층석탑(永川華南洞三層石塔, 보물 제675호)과 화북면의 영천공덕동삼층석탑(永川公德洞三層石塔,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03호)·영천정각리삼층석탑(永川正覺里三層石塔,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69호) 등이 있다.
그 밖에 임고면의 영천선원동철불좌상(永川仙源洞鐵佛坐像, 보물 제513호), 청통면 치일리의 은해사운부암청동보살좌상(銀海寺雲浮庵靑銅菩薩坐像, 보물 제514호), 신녕면의 영천화남동석불좌상(永川華南洞石佛坐像, 보물 제676호) 등이 있다.
유교문화재로는 신녕면 화성리의 신녕향교와 신녕향교대성전(新寧鄕校大成殿,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02호), 교촌동의 영천향교대성전(永川鄕校大成殿, 보물 제616호), 성내동의 숭렬당(崇烈堂, 보물 제521호), 신녕면 화성리의 신령향교명륜당((新寧鄕校明倫堂,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68호), 자양면 충효리의 충효재(경상북도 기념물 제81호) 등이 있다.
그리고 용산리의 생육신이경은선생부조묘(生六臣李耕隱先生不?廟,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53호)·생육신이경은선생제단(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54호)·용계서원(龍溪書院,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55호), 임고면 양항리의 임고서원(臨皐書院, 경상북도 기념물 제62호) 대창면 용호리의 도잠서원(道岑書院,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00호), 삼매리에 자양서당(紫陽書堂,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78호) 등을 들 수 있다.
또한, 정자와 고가로는 안증(安拯)이 후학을 가르치던 도남동의 완구정(玩龜亭,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20호), 화북면 횡계리에 옥간정(玉磵亭,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70호)·모고헌(慕古軒,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71호) 등이 있다.
다음으로 자양면 성곡리의 강호정(江湖亭,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71호)·오회공종택(五懷公宗宅,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72호)·하천재(夏泉齋,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73호)·사의당(四宜堂,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74호)·삼휴당(三休堂,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75호)·오회당(五懷堂,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76호) 등이 있다.
그 다음으로는 임고면 삼매리의 동린각(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77호)·영천 정재영씨가옥 및 산수정(永川鄭在永氏家屋 · 山水亭, 중요민속자료 제24호), 선원리의 영천정용준씨고택(永川鄭容俊氏古宅, 중요민속자료 제107호)·환구세덕사(環丘世德祠,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87호) 등이 있다.
그 밖에 금호읍 오계리의 영천만취당(永川晩翠堂, 중요민속자료 제175호), 대창면 신광리의 지산고택(芝山古宅,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99호), 대전동의 호수종택(湖?宗宅,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90호)과 창구동의 영천조양각(永川朝陽閣,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44호), 대전동의 양계정사(暘溪精舍,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88호) 등이 있다.
여타 문화재로는 임고면 양항리의 임고서원 소장전적(臨皐書院所藏典籍, 보물 제1109호), 대창면 대재리의 유후재 및 옥비(遺厚齋 · 玉碑,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01호), 신녕면 화남리에 임진왜란 때 의병장이었던 권응수장군유물(權應銖將軍遺物, 보물 제668) 등이 있다.
그리고 북안면 도천리 박노계집판목(朴蘆溪集板木,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68호), 고경면 창하리의 전금강성장군황보능장묘(傳金剛城將軍皇甫能長墓, 경상북도 기념물 제51호), 조선 숙종 때 학자 이형상(李衡祥)의 저서인 성내동의 병와유고(甁窩遺稿, 보물 제652호)와 병와이형상유품(甁窩李衡祥遺品, 중요민속자료 제119호) 등이 있다.
또한, 임고면 우황리에 이대전선생유허비(李大田先生遺墟碑,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4호)·포은정몽주선생유허비(圃隱鄭夢周先生遺墟碑,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72), 녹전동의 명고영정(鳴皐影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79호), 청통면의 영천보성리암각화(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86호) 등이 있다.
기념물로는 천연기념물 제404호로 지정된 영천자천리오리장림을 비롯하여 전금강성장군황보능장묘, 임고서원, 영천충효재 등이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교육·문화
조선시대 교육기관으로는 향교와 서원이 있었다. 향교로는 영천향교와 신녕향교가 있다. 1435년(세종 17)에 창건된 영천향교는 1517년(중종 12)에 중건되었고, 1546년(명종 1)에 중수했으나 임진왜란 중에 소실되었다. 그 뒤 1615년(광해군 7)·1622년에 두 차례 중수해 교동에 있다.
신녕향교는 조선 초에 창건해 1551년(명종 6)에 중수했으나 임진왜란 중에 소실되었다. 그 뒤 1615년에 이건해 수차에 걸쳐 중수해 신녕면 화성리에 있다. 그러나 1914년에 1읍 1교의 원칙에 의해 향교의 문부가 연천군수에게 인계되기도 하였다.
서원으로는 1555년(명종 10)에 설립한 임고서원은 임진왜란 중에 소실되었으나 1603년(선조 36)에 도일동으로 이건해 그 이듬해에 사액을 받았으며 임고면 양항리에 있다. 1613년(광해군 5)에 설립한 도잠서원은 1678년(숙종 4)에 사액되었다.
그 외에도 1618년 백학서원이, 1686년 경덕사가, 1657년(효종 8) 입암서원이, 1702년 송곡서원이, 1704년 상덕사가, 1727년(영조 3) 도계향사·위양공사·참대서원·경덕사·호연사·구인사 등이 세워졌으나 고종 때 서원 철폐령으로 모두 훼철되었다. 그러나 임고서원은 훼철되지 않았다.
근대 교육기관인 초등학교로는 1909년에는 신녕공립보통학교가 설립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1911년에 영천공립보통학교가 건립된 뒤에도 19개의 학교가, 중등학교로는 1927년 영천공립농업보습학교(영천중학교의 전신), 1938년 녹전간의학교(북부초등학교의 전신)가 설립되었다. 고등학교는 광복 후에 건립되었다.
2015년 현재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9개교, 중학교 15개교, 고등학교 10개교, 전문대학인 성덕대학교가 있다. 그 외에도 특수학교 3개교(경북영광학교, 나무와 학교, 산자연학교)가 있다.
문화시설로는 시립도서관과 공공도서관 각 1개, 체육관 2개, 시민운동장을 비롯한 실외 씨름장, 테니스장, 궁도장 등이 있으며, 영천민속관과 문화재 및 문화복지시설 9개, 문화원 1개소가 있다. 문화행사로는 1974년부터 매년 10월 문화원을 중심으로 영천문화제를 개최해 각종 행사가 실시되고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민속
이 지방의 대표적 민속놀이로는 석전과 줄다리기를 들 수 있다. 정월 대보름날에서 그 이튿날까지 벌어졌던 석전은 두 이웃마을이 강을 사이에 두고 서로 돌을 던져서 도망가는 편이 지게 되는 놀이인데, 때로는 산등성이를 경계로 해 같은 동네가 윗마을과 아랫마을로 나뉘어 겨루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놀이는 돌팔매에 맞아 부상을 당하는 경우가 허다해 10년 전부터는 중단되었다.
줄다리기는 마을이 두 편으로 나뉘어 들판이나 강변에서 힘을 겨루는 놀이로, 보통 정초에 집집마다 짚을 내어서 줄을 만들고 보름을 전후해 거행된다. 암줄과 수줄 가운데에는 고를 만들어 거기에 방망이(비녀봉)를 끼워서 두 줄을 연결한다.
그 다음 두 편이 서로 줄을 당겨 시합을 벌이는데 이때 아녀자들은 응원전을 펼쳐 흥을 돋운다. 줄다리기 도중에 줄을 끌어간 편의 날렵한 청년 하나가 방망이를 뽑아 도망을 치면 상대편 사람들은 방망이를 되찾기 위해 청년을 쫓고, 청년과 같은 편 사람들은 그들을 저지한다.
결국 숨겨 놓은 방망이를 찾지 못하면 방망이를 빼앗은 편의 승리로 시합은 끝을 맺지만 다시 찾게 되면 줄다리기가 계속된다. 승부가 결정되면 진 편에서는 미리 준비해두었던 술잔을 예를 갖추어 이긴 편에게 올려야 한다.
이 밖에도 윷놀이·씨름·연날리기·농악·그네뛰기 등이 전승되고 있다.
수령이 많은 당나무나 당집에 제단을 마련해 매년 1년 동안 동네의 태평을 기원하는 동제를 지낸다. 보통 화주라고 불리는 제주는 제를 지내기 3일 전부터 목욕재계하고, 대문에는 대나무나 농기를 세워둔다.
당나무나 당집 주위에는 왼새끼를 꼬아 금줄을 치고 바닥에는 황토를 깔아 뭇사람의 접근을 막으며, 또한 제수(祭需)를 장만할 우물에도 황토를 깔고 멍석을 덮어 부정이 접근하지 못하게 한다. 과일 등의 제수는 새 그릇에 통으로 진설해야 한다.
제는 대개 축시(丑時)에 올리며 헌작(獻爵)과 축관의 독축순서로 진행되는데, 제가 끝나면 세대주 성명이 적힌 소지를 올리고, 다음날 아침 전동민이 모여 음복을 한다. 이 밖에 산간지방에서는 산마루에 있는 산당(山堂)에서 마을의 원로 몇 사람이 음식을 차려놓고 산신에게 제를 지낸다.
영역닫기영역열기설화·민요
이 고장에는 박인로(朴仁老)에 대한 인물전설을 비롯해 「불집골전설」·「천연수전설」 등의 지명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박인로는 조선시가사에 이름을 남겼던 유명한 인물인 만큼 그에 대한 일화도 지금껏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린다.
박인로의 사후에 자주 영험한 일이 일어났다고 한다. 일례로 공의 제삿날이 가까워져서 벼를 말리려고 멍석 위에 널어 두었더니 새들이 이를 쪼아먹고는 그 자리에서 죽어 버렸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종부(宗婦)가 제수를 마련할 때 깨끗하지 못한 의복을 입었으면 갑자기 병이 나서 제사 참례를 못하게 되므로 제수를 장만하는 종부는 매우 조심스러웠다 한다. 서원에 오를 때에도 행동을 조심해야 하는데 하인들이 나막신을 신고 서원 뜰 축에 오르면 반드시 축 아래로 떨어져 중상을 입었다는 것이다.
또한 3년상이 끝날 때까지 달밤이면 공이 군복차림에 창을 거꾸로 들고 서원 앞뜰을 배회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이는 생전에 이루지 못했던 왜적 섬멸의 염원을 사후에도 간직했다는 애국 충절의 표시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불집골전설」은 자양면 신방리에 살던 강효자에 얽힌 이야기이다. 강효자가 아버지의 병간호를 하던 중 백사를 만나 아버지의 병을 쾌차시킬 수 있었으나, 대신 사악한 백사에게 목숨을 빼앗기게 되었다. 그러자 근처의 부처님들이 강효자를 구해 석불이 되게 한 뒤, 호랑이 한 마리를 앞에서 지키게 했다는 이야기이다.
「천연수전설」은 효성이 지극한 두 딸을 가진 부부가 대를 잇지 못해 백일기도 끝에 학이 되자 그 곳에서 천연수가 솟아나게 되었고, 그 뒤에 자식이 없는 사람들이 그 곳의 물을 마시고 태기가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용마바위전설」은 이 지역의 대표적인 전설이다. 고려 초 이 곳에 성주로 부임한 어느 장군이 국령을 받고 성을 쌓던 중 별안간 산이 무너지는듯 한 굉음과 함께 힘찬 말울음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러더니 날개가 달린 말 한 마리가 성으로 날아와서 장군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이었다. 장군은 이 말이야말로 하늘이 준 선물이라 여기고 말을 데려다 정성껏 길들였다.
얼마 뒤 성이 완성되어 금강산성이라 이름을 붙였으므로 장군 또한 금강장군이라 불리게 되었다. 성의 낙성을 축하하던 날 장군은 그 기념으로 화살과 자신의 말을 경주시켜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장군이 활시위를 당기자마자 용마는 힘껏 절벽을 박차고 번개같이 날아올라 절벽 아래 흐르는 강을 건너고 들을 지나 단숨에 마상에까지 다다랐다. 마상에 도착한 장군은 주위를 둘러보고는 용마가 늦게 도착한 줄 알고, 시합 전에 화살보다 늦을 경우 용마를 죽이겠다고 한 약속대로 용마를 칼로 내리쳤다.
바로 그때 ‘씽’하는 소리가 나며 화살이 날아와 죽어 가는 용마의 머리에 꽂히는 것이었다. 장군은 자신의 성급함으로 인해 죽은 용마를 애도하며 성대히 장사를 지내고는 용마를 못 잊어 따라죽고 말았다.
고경면 창하리 솔밭에 있는 말무덤이라 불리는 커다란 무덤이 바로 이 용마의 무덤이라 한다. 금호강을 가로막은 주남신보의 절벽 아래 보 안을 메울 듯이 비스듬히 기울어진 채 놓여 있는 용마바위에는, 당시 용마가 절벽을 찰 때 생긴 말발굽자국과 더불어 금강산성과 금강장군의 이름이 아직도 남아 있다.
그 밖에도 과거 길에 알게 된 여인과의 약속을 어겨 원한을 산 데에서 유래되었다는 「혼골전설」, 자기를 배신한 소에게 원한을 품은 범이 마을의 소를 죽여 앙갚음을 했다는 「소와 범 이야기」, 스님의 신통력으로 500명의 도둑이 불도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오백나한상전설」 등이 있다.
그리고 중암암(中巖庵)에 얽힌 「장군수와 쌀구멍전설」과 「노름꾼과 옥피리」·「요도와 무리미산의 전설」·「사모산전설」·「청못전설」·「원한새이야기」·「탕건바위전설」 등이 전해지고 있다.
이 고장에는 예로부터 다양한 종류의 민요가 불려왔으나, 현재는 농업노동요와 잡역노동요가 비교적 널리 전승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 「모내기소리」와 「어사용」이 있다. 「모내기소리」는 일반적으로 교환창으로 부르나, 일부지역에서는 선후창으로 노래부르기도 한다.
고경면의 「모내기소리」는 아침 나절에는 싱그러운 기분을 나타내는 “이논배미 모를숨가/잎이 피어 정자로다/우리부모 산소등에/솔을숨가 정자로다…….” 하는 사설의 아침소리를 부른다.
그리고 한낮에는 “이물기저물기 다헐어놓고/주인양반은 어데로 갔노/문어야 대전복 손에들고/첩의방에 놀러갔다…….”라는 사설로 된 것을 부르거나 “해다졌다 해다졌다/영천땅에야 해다졌다/늦어간다 늦어간다/점심때가 늦어간다/열두칸 정지안에 돌고나니 늦었도다/아흔아홉칸 사십길에/돌고나니야 늦었도다.” 하며 두 패로 나뉘어 교환창으로 부른다.
화북면에서도 역시 교환창으로 노래하는데 “모시야적삼에 반뚱거진/분통겉은 저젖보소/많이야보면 병난단다/손톱만치만 보고가소……/바람아 부채야 청사도포/꽃을 보고 지내가노/꽃이야조매야 좋지마는/나무야 꽃에다 손을대리/사래질고 장찬밭에/목화따는 저큰아가/목화야백화야 내따줌세/백년언약 날캉하세…….” 하는 사설로 종일 반복해 부른다.
이 고장에서는 특히 나무꾼들의 노래인 「어사용」이 풍부하게 전승되고 있다. 「어사용」을 부르는 사람은 주로 머슴들이다. 늦도록 장가도 들지 못하고 남의 집에 고용살이하는 머슴은 할 말이 많으나 나무하러 갈 때가 아니면 혼자만의 조용한 시간이 없고, 까마귀가 아니고서는 말을 들어줄 상대도 없다.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말을 까마귀에게나 하는 것이다.
“아헤헤 까마구야/저건너 적석산에/물이 꽉꽉드는 저산에/우리동무 개장국에/밥말아놓고 날부리나/저산이라 가자……/저건너 저골짝에/나물하는 저처녀야/이건너 이골짝에/어나리 사나리/참나물 고두서리/이골짝에 자빠졌다/이리오너라 헤어어……/귀야까마귀야/신에신곡산 가리갈가마귀야/니껌다고 한탄마라/니껌은줄은/온조선이 다알건마는/이내속 울홰병든줄/어느누가 알아주리…….”
이들 다양한 사설의 노래 중에는 ‘잦은 어사용’이라 해서 빠른 속도로 부르는 노래도 있다. 「어사용」은 율격이 엄격하지 않고 혼자 부르는 노래로서, 여음 없이 사설만으로 되어 있다.
이 밖에도 집 짓기 전에 집터를 다지면서 부르는 노래인 “대문여니 만복래/마당쓰니 황금출” 하는 사설이 길게 이어지는 「지신밟기노래」, 메밀을 수확하며 부르는 「메밀가」 등이 있으나, 노동요 외에는 그 수가 많지 않다.
영역닫기영역열기산업·교통
경지면적은 1만 5332㏊로 경지율은 약 18.1%이다. 대표적 평야는 와촌들로 불리는 금호평야로서, 강수량이 적어 가뭄의 피해가 컸으나 1980년 자호천에 저수량 9,640만t의 영천댐이 준공되어 관개사정이 매우 좋아졌다.
유역에는 대평(大坪)들·대안(大安)들·질림(迭林)들 등의 하안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섭제·신화저수지(新花貯水池), 명천지(鳴泉池)·화산지(花山池)·풍락저수지·횡계저수지·하곡지(霞谷池)·고경저수지 등의 저수지가 있어 이들 농경지에 관개 용수를 제공하고 있다.
도심지에 있는 주남들은 우수한 벼농사지역이다. 경지 중 논이 5,540㏊, 밭은 9,792㏊로 밭농사의 비중이 조금 높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와 같은 주곡 이외에, 한우와 사과·포도·복숭아 등의 과수와 양파·마늘 등의 소채이다.
인구 감소와 맞물려 채소를 전업으로 하는 농가가 거의 없고, 인근에서 필요로 하는 양만큼 재배를 하기 때문에 영천시의 무·배추·당근·파·마늘·양파 등 기본채소는 재배면적과 생산량이 매년 줄어들고 있다. 이에 반해 양배추·오이·호박·수박·참외·딸기·상추·고추·사과·배·복숭아·포도 등은 생산량이 크게 늘어났다.
인접한 경산시와 함께 대구 사과의 산지로 유명하며, 금호강 양안의 자연제방에서 주로 생산된다. 구릉지에서는 ‘산능금’이라는 사과가 생산되고 있다. 그러나 구릉지의 주된 과수는 복숭아이며, 대구·경주 등 인근도시에 많이 출하되고 있다.
그 밖에 화북면의 고추·토마토, 신녕면의 양파, 임고면의 딸기, 고경면·북안면의 누에고치 등이 유명하다. 특히 농경지의 반 이상이 양파 밭인 신녕면의 신녕양파는 멀리 일본에까지 그 이름이 알려져 있다. 그리고 신녕면 치산리의 대나물은 60∼90㎝ 크기로 자라고 독특한 향기가 있어 인기가 높다.
그 외 특산물로는 보현산 계곡의 음지(陰地)에서 자생하며 연하고 부드러운 향기가 독특한 참나물, 그리고 방목으로 기른 토종닭으로 만든 닭백숙, 은해사의 명물로 널리 알려진 무공해 청정미나리 등이 유명하다.
이 밖에 청통면 호당리의 전통한방차인 보명도는 피로회복·체력보강에 좋기로 유명하다. 이는 작약·천궁·황기 등의 약초에 제주도의 진피, 강원도의 삼백초·녹각 등을 가미해 8시간 정도 달여낸 것으로, 재탕을 전혀 하지 않고 한지를 이용해 약초 고유의 냄새와 독을 걸러 낸다.
약용작물은 지황·목단·당리·작약·황기·천궁·백지·시호·황금 등인데, 1986년 이후 재배농가수가 급격히 줄어들어 620여 가구에서 재배하고 있을 뿐이다. 또한 잠업도 1970년 1만 1,876가구에서 누에를 키워 245t을 수매했으며, 1975년에는 1만 6,886가구에서 806t, 1980년에는 1만 2,583가구에서 660t으로 변화를 보이다가 1992년에는 256가구에서 57t의 생산량을 보여 급격한 감소를 보이고 있다. 현재는 보현산 주변 일부 농가에서만 양잠이 이루어지고 있다.
임산물 생산은 주로 북안·화북·자양·고경면에서 많다. 영천시는 내륙지방이고 큰 하천이 없어 어업은 미약하며, 다만 못이나 기타 양어시설을 갖춘 몇몇 업체에 의해 어업이 이루어지고 있을 뿐이다.
광공업은 아주 미약해 고령토광산 2개소와 청통면과 금호읍에 몇 개의 중소공장이 있을 뿐이며, 제조업 또한 영세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2008년 현재 광구수는 총 9개로 가행광구는 1개이다. 농공단지는 6단지로, 면적 248만 1,000㎡에 총 66개 업체가 입주해 있다.
상업활동을 보면, 1830년대에 황지원(黃池院)·신녕읍·고현(古縣)·흑석(黑石)·원곡(原谷)·건지발(乾地發)·창총(倉總)·환귀(還歸)·남천 등의 5일장과 영천읍내장이 있었다. 영천읍내장은 매일 아침 열렸다고 하므로, 오늘날의 상설시장과 같은 기능을 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이 장은, 특히 영천이 옛날부터 영남지방의 교통의 요지이므로 동해안의 해산물을 군위·의성·칠곡·선산·달성·경산방면으로 많이 공급했다. 그리고 일제강점기까지도 벌꿀·완초·인삼·유지·송이·대마·산약 등이 이 지역의 특산물로 많이 거래되었다.
1928년경에는 임포·대창·금호장을 포함한 8개의 5일장이 열렸고, 주남장이 개설되었으며, 1956년에는 영천장이 확대되어 공설시장인 염매시장으로 개장되어 상설시장으로 발전하였다.
1960년대 이후 경제개발 및 교통통신의 발달로 인해 상설점포가 증가하는 반면, 정기시장은 점점 쇠퇴하고 있다. 현재는 금호·신녕·대창·영천의 네곳에서만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한편, 사과·포도 등의 과일생산이 많으므로 수확기에는 정기적으로 구판장이 개설되어 도시중소상인과 농민간의 거래가 활발하다. 2008년 현재 영천·금호·신녕 공설시장의 3개 정기시장(5일장)이 있다. 특히 영천공설시장은 대구의 약령시, 안동장과 함께 경상도 3대 시장으로 꼽히는 곳으로 예로부터 경상도 최대의 교역시장으로 1955년 완산동으로 옮겨 현재까지 맥을 잇고 있다.
교통은 국도 35, 28호, 4호가 시내에 갈라져 군위·청송·대구·경주 등으로 연결되고, 이외에도 지방도 등이 각 읍·면으로 연결된다. 철도의 대구선과 중앙선이 동서로 뻗어있고, 경부고속도로가 통과하여 4통 5달의 교통요충지이다. 또 상주영천고속도로, 익산포항고속도로가 통과하고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관광
대구의 근거리에 있는 이 시는 대구를 거점으로 하는 대구관광권에 속하며, 보현산을 비롯해 수석봉·운주산·팔공산·화산·사룡산 등 수림이 울창한 산악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또한 위장병과 고혈압에 특효가 있다는 황수탕(德井藥水), 잉어·붕어가 많은 파계지(巴溪池) 낚시터와 사동저수지, 포항제철의 공업용수와 포항시민의 식수를 공급하기 위해 자호천의 계곡을 막아 1980년 완공한 영천댐 등도 있어 자연적 관광자원은 풍부하다.
오랫동안 행정중심지였기 때문에 많은 문화유적을 가지고 있다. 대표적인 문화적 관광자원으로는 팔공산 동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은해사를 손꼽을 수 있다. 팔공산은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국보 3점과 60여 점의 문화재와 24동의 건물이 있다.
원래 13개의 부속암자가 있었으나 은해사 서쪽 2㎞ 지점에 비구니 암자로 간결미가 돋보이는 극락전과, 생동감 넘치는 기법으로 표현된 대좌수미단이 있는 백흥암, 김유신장군이 머물며 심신을 단련했으며 장군이 마셨다는 샘물 ‘장군수’가 샘솟고 있는 중암암, 청동보살좌상이 있는 운부암, 산책로가 멋진 기기암(寄基庵)과 거조암·백련암(白蓮庵) 등 8개의 암자만이 현재 남아 있다.
그 중 거조암의 영산전은 고려 말기의 대표적 목조건물로 내부에 500나한이 봉안되어 있다. 특히 백흥암의 극락전에 있는 백흥암극락전수미단은 현존하는 불단 중 가장 화려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외 풍치절경의 절벽에 신선이 머무르다 갔다는 삼인암과 약수·만년송·신라석탑이 있다.
팔공산이 북쪽 산자락을 드리운 신령면에는 치산(雉山)계곡이 펼쳐지고 있는데, 웅장한 폭포와 울창한 삼림이 6㎞나 이어지는 이 계곡은 높이 20여m의 수도사폭포(修道寺瀑布) 등이 산과 조화되어 오랫동안 팔공산의 숨은 명소로 손꼽혀 왔다.
치산계곡 중턱에는 원효대사와 자장율사가 창건한 수도사가 자리하고 있다. 영천 최북단 화북면 정각리에 천문대로 유명한 보현산이 우뚝 솟아 포항·영천·청송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그 밖에 영천의 산 역사나 다름없는 조양각은 진주 촉석루, 밀양 영남루와 함께 영남삼루에 속한다. 1368년(공민왕 17)에 부사 이용이 명원루라는 이름으로 창건했으며,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38년에 중건하면서 조양각으로 고쳐 불렀다. 조양각은 영천문화의 요람으로, 율곡·노계·포은 등 명현들의 시문이 수십 편 걸려 있고, 앞뜰에는 영천문화원이 있다.
그리고 임고면 양항리에는 임고서원이 있다. 또한, 금호강 북안의 절벽에 서 있는 정몽주의 청계석벽시(淸溪石壁詩) 외에 70여점의 명현의 유운(遺韻)이 보존되어 있는 조양각과 1433년에 건립된 숭렬당이 있다. 한편, 맞배집으로 건조된 중국양식의 영천향교대성전, 정호례(鄭好禮)가 건조한 일(一)자형의 목조와가 등도 유명하다.
이 밖에 마현산(馬峴山)의 마현공원(馬峴公園), 시내의 창구공원(昌邱公園)·완산공원(完山公園)이 있다. 마현공원은 이른봄부터 늦여름까지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며, 임진왜란 때의 화공전(火攻戰)으로 유명한 전술지였다. 그리고 6·25 때에는 국군이 반격을 감행해 승전한 곳이기도 하다.
교촌동에는 영천지역의 옛 조상들이 사용했던 문화재 700여점이 전시된 영천민속박물관이 있다. 농기구·생활용품·장신구 등이 용도별·분야별로 분류되어 전시되어 있고 아담하게 가꾸어 놓은 정원은 옥외전시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읍·면
1. 금호읍(琴湖邑)
시의 남부에 위치한 읍. 면적 51.46㎢, 인구 1만 1770명(2015년 현재). 읍 소재지는 교대리이다. 조선시대 창수(蒼水)·거여(巨余)·칠백(七百)·고현(古見)면 등이 설치되어 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이 4개 면을 통합해 영천군 금호면으로 개칭하였다.
1973년금호읍으로 승격되었고, 1982년도남리를 영천시에 편입시켰으며, 1987년경산군 와촌면 계당리 일부를 덕성리로 편입하였다.
가운데 넓은 평야를 축으로 서쪽을 제외한 남쪽과 북쪽은 구릉야산이 많다. 읍을 가로질러 동서로 금호강이 흐르며, 산곡(山谷)에서 흐르는 하천유역은 비교적 넓은 평야를 형성하기 때문에 토양이 비옥해 농업에 적합하다.
총 경지면적 18.63㎢로 36%, 임야면적 23.22㎢로 45%, 기타 17%로 이루어져 있다. 경지 중 논이 4.17㎢로 24.0%를 차지하고 밭이 13.19㎢로 76.0%를 차지해 밭농사의 비중이 높은 편이다.
주요 농산물로는 주곡 외에 포도·채소류 등이 있다. 금호포도와 채약산 가야 미나리는 지역 특산물이며 가야 미나리는 2005년부터 규모를 늘려 본격적으로 농가소득 증대 방편으로 재배하고 있다. 그리고 제조업으로는 사료공장과 섬유공장이 있다.
교통은 경부고속도로, 군산∼감포간의 4번국도, 대구선 등이 통과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신월리에 삼층석탑, 오계리에 만취당, 대미리와 석섬리에 고분군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 교, 중학교 2개 교, 고등학교 2개 교가 있다.
금호읍에는 교대(橋垈)·덕성(德城)·2성천(成川)·대미(大美)·석섬(石蟾)·원제(元堤)·냉천(冷泉)·신월(新月)·봉죽(鳳竹)·관정(官亭)·황정(凰亭)·구암(龜巖)·약남(藥南)·대곡(大谷)·호남(湖南)·어은(魚隱)·오계(五溪)·원기(元基)·신대(新垈)·남성(南星)·삼호(三湖) 등 21개 리가 있다.
2. 고경면(古鏡面)
시의 남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120.59㎢, 인구 5,867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해선리이다. 조선시대 고촌면(古村面)과 추곡면(追谷面) 등이 있었으며, 정점(井店)·덕성(德城) 등 25개 리를 관할하였다.
그러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고촌면에다 추곡면 전사리 일부와 북안면 차당리를 병합해 16개 리로 개편하였다. 1934년청경면(淸鏡面)과 고촌면을 통폐합해 고촌의 고자(古字)와 청경의 경자(鏡字)를 따서 고경면으로 개칭하였다.
동쪽으로 천장산(天掌山, 695m)과 도덕산(道德山) 등 중앙산맥(中央山脈)에 속하는 산이 있고, 서쪽으로 차츰 낮아지는 동고서저의 지형적 특색을 나타낸다. 어림산에서 발원한 고촌천이 면의 중앙부를 동서로 가로질러 흐르고, 연안에서 충적평야를 형성하며 금호강으로 흘러든다.
총 경지면적 18.45㎢로 15.8%, 임야면적 88.74㎢로 75.8%, 기타 8.4%로 이루어져 있다. 경지 중 논이 7.06㎢로 38.3%를 차지하고 밭이 11.39㎢로 61.7%를 차지해 상대적으로 밭농사의 비중이 높다.
쌀·보리 등 주곡 외에 주요 농산물은 황토참외, 황토고구마, 복수박 등이며 작목반 별로 인터넷 판매도 하고 있다. 영주∼포항간의 국도가 면의 중앙부를 동서로 관통해 대구·포항 방면과 연결하고, 남동부에서는 경주∼영천간의 지방도가 국도에서 갈라져 경주와 연결되고 있다.
덕정리에 있는 황수탕은 유황이 함유된 약수샘으로 위장병·고혈압에 특효가 있다. 상리리에 밀양손씨(密陽孫氏) 동족마을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 교, 중학교 1개 교가 있다.
고경면에는 해선(海仙)·가수(柯樹)·고도(古道)·단포(丹浦)·논금(論琴)·대성(大成)·대의(大義)·덕암(德巖)·덕정(德井)·도암(道巖)·동도(東道)·부(釜)·삼귀(三歸)·삼산(三山)·삼포(三浦)·상덕(上德)·상리(上梨)·석계(石溪)·오룡(五龍)·오류(五柳)·용전(龍田)·전사(前沙)·차당(次堂)·창상(倉上)·창하(倉下)·청정(淸亭)·초일(草日)·칠전(七田)·파계(巴溪)·학(鶴) 등 30개의 리가 있다.
3. 대창면(大昌面)
시의 남단에 위치한 면. 면적 50.92㎢, 인구 3,148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대창리이다. 본래 영천군에 속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창수면(蒼水面)·북안면(北安面) 일부와 모사면(毛沙面) 대부분을 병합해 대창면으로 개칭하였다. 1995년영천시와 영천군이 통합되어 영천시 대창면이 되었다.
남부에는 구룡산(九龍山)에서 금박산(金泊山)에 이르는 높은 산지가 솟고, 북동부에는 채약산(採藥山, 499m)이 자리하는 등, 3면이 산으로 둘러싸여진 분지로 곳곳에 구릉이 산재해 있다.
면 중앙부를 흐르는 금호강의 지류는 하류에서 넓은 충적평야를 형성하고 있으며, 경산평야에 연속된다. 총 경지면적 10.76㎢로 21.2%, 임야면적 34.71㎢로 68%, 기타 10.7%로 이루어져 있다.
경지 중 논이 7.25㎢로 71%를 차지하고 밭이 3.41㎢로 29%를 차지해 논농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미곡 외에 복숭아·양봉·고추·마늘 등을 생산하며, 복숭아 생산이 많다. 한우·젖소 등 낙농업과 양봉도 성하다.
북안∼청통간, 대재∼도동간, 자인∼대창간 등의 군도가 있으나, 오지에 있어 교통은 불편하다.
문화유적은 용호리에 영지사(靈芝寺)와 도잠서원, 신광리에 지산고택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 중학교 1개 교가 있다.
대창면에는 대창(大昌)·강회(江回)·구지(求芝)·대재(大才)·병암(屛巖)·사리(沙里)·신광(新光)·어방(於方)·오길(五吉)·용전(龍田)·용호(龍湖)·운천(雲川)·조곡(助谷)·직천(直川) 등 14개 리가 있다.
4. 북안면(北安面)
시의 남단에 위치한 면. 면적 71.18㎢, 인구 4,595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고지리이다. 신라시대에는 북안곡부곡(北安谷部曲)이라고 불렸고, 고려시대까지 경주군에 예속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조선시대에는 영천군에 속해 원곡면(原谷面)·비소면(比召面)·원당면(元堂面)·북안면(北安面) 등 4개 면으로 되었다. 그 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이 중 일부를 고경·대창면에 이관하고 나머지를 병합해 북안면으로 개칭하였다. 1995년 1월 1일 시군통합으로 인해 영천시 북안면이 되었다.
좁고 긴 충적평야인 북안천(北安川) 저지에 의해 남서부 산지와 북동부 산지로 나누어진다. 남서부 산지의 최고봉은 사룡산으로 금오산(金鰲山, 412m)이 그 핵심부를 차지하며, 이 사이에 북안천의 상류가 형성하는 산간분지가 있다. 북동부 산지는 300m 내외의 구릉성 산지이다.
총 경지면적은 15.14㏊로 미곡을 주로 생산하는 전형적인 농가위주의 지역이나 현재는 배·포도를 위시로 한 경제작물의 식부면적이 늘어나고 있다. 이 지역의 황금배는 일본 및 캐나다 등에 수출하며 그 가치를 높이고 있으며, 수출량 또한 매년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 그 외에 젖소·한우·돼지·산양 등의 가축사육과 양봉도 성하다. 또한 농공단지의 설치로 참기름공장 등이 설립되어 농산물가공업이 발달하고 있다.
교통은 경부고속도로, 감포∼군산간의 국도와 중앙선 철도가 면의 중심부를 통과하며, 언양∼영천간의 지방도와 북안∼청통간의 군도로 인근의 남·서부지역과 연결된다.
문화유적은 도천리에 도계사가 있다. 자포리에는 월성김씨(月城金氏)의 동족마을이 자리한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 중학교 1개 교가 있다.
북안면에는 임포(林浦)·고지(庫旨)·관(冠)·내포(內浦)·당(堂)·도유(道有)·도천(道川)·명주(明珠)·반계(磻溪)·반정(半亭)·북(北)·상(上)·서당(書堂)·송포(松浦)·신대(新垈)·신리(新里)·신촌(新村)·옥천(玉泉)·원당(元堂)·용계(龍溪)·유상(柳上)·유하(柳下)·자포(自浦)·효(孝) 등 24개 리가 있다.
5. 신녕면(新寧面)
시의 서단에 위치한 면. 면적 81.11㎢, 인구 4,156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화성리이다. 신라 초기에는 사정화현(史丁火縣)이었고, 749년(경덕왕 8)임고군(臨皐郡)에 속하였다.
그 뒤 고려 1018년(현종 9) 때는 동경유수관(지금의 경주)에 속했다가, 1390년(공양왕2)에 다시 현으로 복원되어 화산(花山)이라 하였다. 1497년(연산군 3)에 현을 폐지하고 영천군에 속했다가 1503년에 다시 복현되었다. 1910년(순종 3)에 신녕군이 되어 8개 면과 96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현내면과 치산면을 합해 신녕면이 되어 영천군에 병합되었다.
면의 남서경계에는 팔공산맥의 주령(主嶺)인 팔공산과 동봉(993m)이 있고, 그 북동사면에 해당되는 높은 산지가 이 면의 서반부를 차지한다. 북경에는 산정의 평탄면으로 유명한 화산(華山)이 솟아 있고 남부를 향해 점차 낮아진다.
남북산지간을 신령천이 남동으로 관류해 좁고 긴 충적평야를 형성하고 있다. 총 경지면적 12.9㎢로 14.0%, 임야면적 65.2㎢로 76.9%, 기타 9.1%로 이루어져 있다. 경지 중 논이 7.8㎢로 60.7%를 차지하고 밭이 5.1㎢로 39.3%를 차지해 논농사의 비율이 높은 편이다.
쌀·보리 등 주곡 외에 양파·고추·마늘 등의 특용작물 재배가 활발하다. 이 고장의 특산물인 신녕양파와 마늘은 널리 알려져 있다. 한우·젖소·돼지·개·토끼의 사육과 양봉이 행해진다.
중앙선 철도와 영주∼포항간의 국도가 면의 중앙부를 남북으로 관통해 안동·영천과 연결되며, 면을 횡단하는 언양∼우보간의 지방도와 신령∼삼창간의 군도가 화성리에서 교차하고 있어 교통은 좋은 편이다.
문화유적은 화남리에 화남동한광사삼층석탑·화남동한광사석불좌상, 그리고 임진왜란시 의병장으로 활약한 권응수장군의 유물이 보관된 전시관이 있으며, 완전리에 선돌, 화성리에 환벽정(環碧亭)·신녕향교 등이 있다. 치산리의 수도사폭포는 여름에 휴양객으로 붐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교, 중학교 1개교, 고등학교 1개교 그리고 대학교 1개가 있다.
신령면에는 화성(花城)·가천(佳泉)·매양(梅陽)·부산(富山)·신덕(新德)·연정(蓮亭)·완전(莞田)·왕산(旺山)·치산(雉山)·화남(華南)·화서(華西) 등 11개 리가 있다.
6. 임고면(臨皐面)
시의 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88.21㎢, 인구 4,300(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양항리이다. 신라 경덕왕 때부터 임고군으로 불려오다가 고려시대에 임고현으로 바뀌게 되었다.
이후 환귀면(還歸面)과 아천면(阿川面)으로 나누어져 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환귀면(還歸面) 21개 리와 북안면 8개 리가 병합되어 임고면으로 개편되었다. 1987년언하·신기리가 영천시에 이관되었다.
동쪽으로는 운주산과 천장산 등의 중앙산맥에 속하는 산이 있고, 서쪽으로는 차츰 낮아지는 동고서저의 지형적 특색을 나타낸다. 면 중앙부를 동서로 관류하는 임고천은 자호천과의 합류점 부근에 비옥한 충적평야를 형성하고 있다.
총 경지면적 14.34㎢로 16.7%, 임야면적 62.33㎢로 71.0%,기타 12.3%로 이루어져 있다. 경지 중 논이 9.52㎢로 66.5%를 차지하고 밭이 4.82㎢로 33.5%를 차지해 논농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쌀·보리 등 주곡생산 외에 사과·마늘·딸기 등의 경제작물을 생산하고 있다. 이 가운데에서 특히 딸기의 생산이 많으며, 농가소득의 절대적 위치를 점하는 작물로 크게 사랑받고 있다.
면내를 통과하는 영천∼영덕간의 지방도와 임고∼죽장간의 군도로 영천·포항·청송 방면과 연결된다.
문화유적은 선원리에 세덕사·철불좌상·정용준고택, 삼매리의 동린각·영천정재영씨가옥 및 산수정·자양서당 등이 있으며, 양항리에 임고서원, 고천리에 고천서원(古川書院)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 교, 중학교 1개 교가 있다.
임고면에는 양항(良港)·고천(古川)·금대(金大)·덕연(德淵)·매호(梅湖)·사동(沙洞)·삼매(三梅)·선원(仙源)·수성(守成)·양평(良坪)·우항(愚港)·평천(平泉)·황강(黃岡)·효(曉) 등 14개 리가 있다.
7. 자양면(紫陽面)
시의 동북단에 위치한 면. 면적 89.42㎢, 인구 1,205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성곡리이다. 신라 경덕왕 때 임고군에 속했으나, 고려 말엽 자양현(紫陽縣)이라 칭하다가 익양군(益陽郡)에 합병되었다.
1897년구리내면(究理內面)이라 칭했고 1910년 자양면으로 개칭되었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자천면과 죽남면의 일부가 병합되었다. 1974년 10월 24일 영천댐의 건설로 인해 소재지가 수몰되자 현 위치로 소재지를 옮기게 되었다.
운주산·기룡산(騎龍山, 961m)·수석봉·보현산·시루봉 등이 면계를 둘러싸고 있어 대부분이 경사진 지형을 이루고 있다. 보현산 남쪽 기슭에서 발원한 가사천(加沙川)이 자호천과의 합류점 이남에서 산간을 곡류하고, 곡저평야를 형성하고 있다. 지형상 산지와 많은 호수로 구성되어 경지율이 낮다.
총 경지면적 6㎢로 7%, 임야면적 73.3㎢로 81.9%, 기타 11.1%로 이루어져 있다. 경지 중 논이 2.2㎢로 36.7%를 차지하고 밭이 3.8㎢로 63.3%를 차지해 밭농사의 비율이 높은 편이다.
주요 농산물은 대추·사과·인삼 등의 경제작물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더덕·약초·담배 등의 특용작물 생산이 농가의 주소득원이며, 산양·토끼·거위 사육과 양봉이 성한 편이다.
자호천의 계곡을 막아 영천댐을 축조해 노항·용산·삼귀·충효 등 면의 일부가 수몰되고 또한 상수도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개발이 극히 제한되어 있다. 교통은 영천∼영덕간 지방도와 화북∼자양간, 송정∼논골간 등 2개 노선의 군도가 통과하고 있으나, 교통은 좋은 편이 아니다.
문화유적은 용산리에 생육신이경은선생부조묘·용계서원, 충효리에 충효당, 성곡리에 강호정·삼휴당·하천재·사의당·오희당 등이 있다. 보현산 남쪽 기슭에 보현사(普賢寺)가 있고, 기룡산 중턱에 약 10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구멍이 있는 바위와 성현암(聖賢巖)·묘각사(妙覺寺)가 있다.
임진왜란 때 조자암(趙紫巖)은 영천향교에 있는 오성위패(五聖位牌)와 임고서원에 있는 정몽주의 영정을 이 곳으로 이관해 봉안하였다. 노항리에 경주김씨(慶州金氏), 용산리에 영일정씨(迎日鄭氏)의 동족마을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분교 1개 교가 있다.
자양면에는 성곡(聖谷)·용산(龍山)·노항(魯港)·도일(道日)·보현(普賢)·삼구(三龜)·신방(新坊)·용화(龍化)·충효(忠孝) 등 9개 리가 있다.
8. 청통면(淸通面)
시의 서단에 위치한 면. 면적 67.46㎢, 인구 4,311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치일리이다. 조선시대 북습면(北習面)과 산저면(山底面)으로 분리되어 있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2개 면과 죽남면(竹南面)·아촌면(牙村面) 일부를 폐합해 조선시대의 청통역의 이름을 따서 청통면으로 고쳤다.
동부에는 봉화산(烽火山, 299m)·대왕산(大王山)·환지봉(環芝峰) 등의 구릉성산지가 널리 펼쳐져 있고, 서부에는 태실봉(胎室峰, 466m)을 서단에 두고 동봉(993m)을 중심으로 하는 높은 산지가 분포되어 있다.
이 동서산지간을 청통천(淸通川)이 남북으로 관류하면서 충적평야를 형성하고 있다. 총 경지면적 14.31㎢로 21.3%, 임야면적 44.87㎢로 66.7%, 기타 12.0%로 이루어져 있다. 경지 중 논이 9.32㎢로 65.1%를 차지하고 밭이 4.99㎢로 34.9%를 차지해 논농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 등이며, 이 밖에 사과·복숭아·자두 등 과실류와 한우·돼지·개·닭 등의 축산물 생산이 많다. 호당리에서는 전통한방차 보명과 약우의 생산이 많다. 영천시의 인접지로 한국생사공장을 비롯한 몇 개의 중소공장이 입지하고 있다.
교통은 언양∼우보간의 지방도와 은해사∼화산간의 군도가 면의 중앙부에서 교차하고, 영주∼포항간의 국도와 중앙선이 면의 북동부를 통과하면서 대구·안동을 연결한다.
문화유적은 신원리의 은해사 경내에 거조암영산전·백흥암극락전수미단·운부암청동보살좌상과 중암암·기기암, 보성리에 암각화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가 있다.
청통면에는 신학(新鶴)·치일(治日)·계지(桂芝)·계포(桂浦)·대평(大平)·보성(甫城)·송천(松川)·신덕(新德)·신원(新源)·애련(愛蓮)·용천(龍川)·우천(牛川)·원촌(院村)·죽정(竹井)·호당(虎堂) 등 15개 리가 있다.
9. 화남면(華南面)
시의 중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79.43㎢, 인구 3,251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삼창리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명산면(鳴山面)의 죽곡(竹谷)·도림(道林)·녹전(祿田)·대전(大田)·오미(五味)의 5개 리와 고현면(古縣面)의 대천(大川)·신호(新湖)·사천(沙川)·선천(仙川)의 4개 리를 병합해 화동면(華東面)으로 개편하였다.
또, 지곡면(知谷面)의 삼창(三昌)·안천(安川)의 5개 리와 자천면(慈川面)의 용계(龍溪)·온천(溫川)·구전(龜田)의 3개 리를 합해 지곡면으로 개칭하고, 신촌면(新村面)의 죽전(竹田)·상송(上松) 6개 리와 자천면의 정각(正覺)·횡계(橫溪)의 6개 리를 병합해 신촌면으로 개편하였다.
1934년 행정구역 통폐합시 화동면의 도림·녹전·대전·오미의 4개 리를 영천읍으로 넘겨주고, 나머지 4개 리와 지곡면의 8개 리, 신촌면의 12개 리를 병합해 화북면으로 개편하였다.
1986년에는 1971년화북면에 설치했던 삼창출장소가 화남면으로 승격했고, 승격 당시 삼창출장소 관할 외에 화산면 귀호리를 편입했으며, 1989년에는 화북면 용계·월곡리를 편입하였다. 1995년 1월 영천시 시·군 통합으로 영천시 화남면이 발족되었다.
면의 북동·북서·동부 쪽은 크고 작은 산들로 이루어져 있어 대부분 중산간지역이나, 고현천과 안천 등이 관류하는 하천유역은 토양이 비옥해 농사에 적합하다. 총 경지면적 13.86㎢로 17.5%, 임야면적 59.14㎢로 74.5%, 기타 8%로 이루어져 있다. 경지 중 논이 7.83㎢로 56.5%를 차지하고 밭이 6.03㎢로 43.5%를 차지해 논농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 외에 사과·포도·복숭아 등으로 높은 소득을 올리고 있으며, 약용작물은 적작약·천궁·시호 등이 있다. 닭·사슴 등의 사육도 활발하며, 구호리에서는 마늘·약초의 재배와 토종꿀 채취로 많은 소득을 올리고 있다.
교통은 사천·대천·선천·삼창·금호·자천의 국도가 남북으로 놓여 있고, 삼창에서 서남방향으로 연결되는 삼창·구호·효정의 지방도와 금호에서 서쪽 방향으로 연결되는 금호·안천·온천·구전의 군도가 있다. 그리고 안천리에는 신안약수탕(新安藥水湯)이 있는데 위장병에 효험이 있다고 한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분교 1개 교, 중학교 1개 교, 고등학교 1개 교가 있다.
화남면에는 삼창(三昌)·금호(琴湖)·죽곡(竹谷)·신호(新湖)·사천(沙川)·대천(大川)·선천(仙川)·구호(龜湖)·안천(安川)·온천(溫川)·구전(龜田)·용계(龍溪)·월곡(月谷) 등 13개 리가 있다.
10. 화북면(華北面)
시의 북단에 위치한 면. 면적 87.21㎢, 인구 2,126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자천리이다. 조선시대 영천군의 명산면(鳴山面)·자천면(紫川面)과 신녕군의 고현면(古見面)·지곡면(知谷面)·신촌면(新村面) 등으로 되어 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화동(華東)·지곡·신촌면으로 폐합되었다.
그 뒤 1934년 이들 3개 면을 합해 화북면이라 개칭하였다. 1971년 이곳에 삼창출장소가 설치되었고, 1986년 삼창출장소 관할 10개 이와 화산면 구호동을 편입받아 화남면으로 승격되어 화북면에서 분리되었다. 1989년용계·월곡리가 화남면에 편입되었다.
청송군과의 경계에 있는 경상북도 제2고지인 보현산(1,124m)이 최고봉으로, 서쪽은 팔공산맥, 북동은 중앙산맥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들 산지는 남부로 감에 따라 저산성구릉지가 되고 남저북고의 지형을 나타낸다.
청송군과의 경계지대에서 고현천이 발원해 정각천(正覺川)·안천천(安川川)·화북천을 합류하고, 산지를 양분하면서 남류해 연속적으로 좁은 곡저평야를 형성하고 있다.
총 경지면적 10.20㎢로 11.7%, 임야면적 71.50㎢로 81.9%, 기타 6.4%로 이루어져 있다. 경지 중 논이 4.88㎢로 47.8%를 차지하고 밭이 5.32㎢로 52.2%를 차지하며 논농사와 밭농사가 비슷한 비율로 행해진다.
주요 농산물은 주곡 외에 사과가 유명한데, 특히 오산사과는 전국적으로 그 명성이 높다. 주요 농산물은 고추·마늘·참깨·약초·담배 등의 채소류와 특용작물의 생산과 한우·젖소·산양의 사육이 많다.
면을 남북으로 통과하는 영주∼포항간의 국도가 영천·안동 방면과 연결되며, 북동부에서 화북∼자양간의 군도가, 남서부에서 신령∼삼창간의 군도가 동서간의 연결에 도움을 주고 있다.
문화유적은 법화리에 법룡사(法龍寺)와 봉림산 아래에 봉림사(鳳林寺)가 있다. 횡계리에는 횡계서당을 비롯해, 모고헌(慕古軒)·옥간정(玉澗亭) 등이 있으며, 오산의 학 도래지와 자천숲은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정각리에는 보현산천문대가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 중학교 1개 교가 있다.
화북면에는 자천(慈川)·공덕(公德)·법화(法華)·상송(上松)·오동(梧桐)·오산(梧山)·옥계(玉溪)·용소(龍沼)·입석(立石)·정각(正覺)·죽전(竹田)·하송(下松)·횡계(橫溪)등 13개 리가 있다.
11. 화산면(花山面)
시의 북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53.36㎢, 인구 3,295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유성리이다. 조선시대 신녕군 아촌면(牙村面)과 대량면(大良面), 영천군 소속 질림면(迭林面) 등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그러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녕군 벌양면의 15개 리, 영천군 질림면의 11개 리, 영천군 북습면 일부, 명산면 일부를 병합해 신녕군의 옛 이름인 화산(花山)을 취해 화산면으로 개칭하고 다시 영천군에 편입하였다. 1982년매산리가 영천시에, 1986년귀호리가 화남면에 편입하였다.
북부 일대에 표고 500m 이상의 산지가 분포되어 있을 뿐, 면의 대부분이 이보다 낮은 구릉성산지이다. 남단에 신령천이 충적평야를 형성하고, 그 지류인 덕암천(德巖川)·삼부천(三釜川)이 산지의 남북으로 관류하면서 대안·지림·삼부들 등의 좁은 곡저평야를 이루고 있다.
총 경지면적 12.70㎢로 23.8%, 임야면적 33.92㎢로 63.4%, 기타 12.8%로 이루어져 있다. 경지 중 논이 7,77㎢로 61.2%를 차지하고 밭이 4,93㎢로 38.8%를 차지해 밭농사의 비중이 조금 높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 등 주곡 외에 양파·마늘·포도의 생산이 많다. 특히 양파와 마늘의 생산량이 많으며, 그 외 양봉과 양계가 성하다.
영주∼포항간의 국도와 중앙선이 면의 남부를 통과하며, 신녕∼삼창간의 군도가 면의 북부를 지나고 있다.
문화유적은 용평리에 가죽나무, 효정리 노고산 아래에는 장군수(將軍水)라는 약수탕이 있다. 이 밖에도 봄에 진달래가 아름다워 화전(花煎)놀이터로 유명한 곽산(郭山)과 옛날 양반 자제를 교육시킨 서당골(書堂谷)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 교, 중학교 1개 교가 있다.
화산면에는 유성(柳星)·연계(蓮溪)·가상(佳上)·당곡(堂谷)·당지(唐池)·대기(大基)·대안(大安)·덕암(德巖)·부계(富溪)·삼부(三釜)·석촌(石村)·암기(巖基)·용평(龍坪)·화산(花山)·효정(孝亭) 등 15개 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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邑城國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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