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승귀 ()

조선시대사
인물
고려 후기에, 밀직부사, 양광도절제사 등을 역임하였으며, 정몽주가 피살될 때 그 일파로 몰려 유배되었다가 조선 건국 이후에 여러 왕씨와 함께 살해된 왕족 · 공신.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1394년(태조 3)
주요 관직
양광도절제사(楊廣道節制使)
목차
정의
고려 후기에, 밀직부사, 양광도절제사 등을 역임하였으며, 정몽주가 피살될 때 그 일파로 몰려 유배되었다가 조선 건국 이후에 여러 왕씨와 함께 살해된 왕족 · 공신.
생애 및 활동사항

고려 왕족으로, 1378년(우왕 4) 밀직부사(密直副使)에 오르고, 1383년 밀직상의(密直商議)로서 김화·평강 등지에 침입한 왜구를 맞아 싸웠으나 패배하였다.

1389년(공양왕 1) 양광도절제사(楊廣道節制使)에 오르고, 그 이듬해 양광도에 침입한 왜구를 격파하였으며, 곧 청주절제사에 개수되었다. 1392년 정몽주(鄭夢周)가 이성계(李成桂) 일파에게 피살될 때에 그 당여로 몰려 원지로 유배되었다가 곧 방면되었다.

1392년(태조 1) 그간 태조의 휘하에서 노고가 많았다 하여 개국원종공신(開國原從功臣)에 책록되었다. 1394년에 동래현령 김가행(金可行) 등이 밀성(密城)의 맹인 이흥무(李興茂)에게 신국가의 안위와 공양왕의 복립 가부 등 왕씨의 운명을 점친 사건을 계기로, 한 조정의 왕씨일족 제거에 연관되면서 합포에 유배되었다가, 여러 왕씨와 함께 살해되었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태조실록(太祖實錄)』
집필자
한충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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