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원주(原州). 자는 언인(彦仁). 원주(元柱)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원맹현(元孟儇)이다. 아버지는 장수현감 원붕(元鵬)이며, 어머니는 윤은좌(尹殷佐)의 딸이다.
1568년(선조 1)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고, 1574년(선조 7)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586년(선조 19) 명나라에 간 하성절사(賀聖節使) 윤자신(尹自新)과 하동지사(賀冬至使) 성수익(成壽益)이 회동관(會同館)에서 실화(失火)하여 명 조정으로부터 문책을 당하게 되었다. 이때 원사안은 왕명을 받고 배삼익(裵三益)과 함께 명으로 들어가 표(表)를 올려 경위를 설명하고 사죄하였다.
이듬해 11월 직강(直講)으로 있을 때, 선조에게 동지사 성수익이 방물(方物)을 잃어버린 사건에 대해 충분히 조사하여 기록하지 못했음을 보고했는데, 이로 인해 사헌부의 탄핵을 받아 추국을 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