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파평(坡平). 아버지는 성종의 장인 우의정 윤호(尹壕)이고, 어머니는 전효천(田孝薦)의 딸이다. 부인은 현감 김복기(金復基)의 딸이다.
문음(門蔭)으로 벼슬길에 오르고, 1482년(성종 13) 이전에 호조좌랑을 역임하였다. 1483년 장령(掌令)에 제수되고, 같은 해 파직되었으나 곧 서용되었다. 1484년 4품으로서 승지에 천거되고, 1485년 종3품 중훈대부(中訓大夫)에 승자되었으며, 다시 정3품 통정대부에 초자(超資)되면서 동부승지(同副承旨)에 발탁되었다.
이 후 좌부승지·우승지·좌승지를 역임하고, 1489년 종2품 가선대부에 오르면서 공조참판에 제수되었다. 이어 우윤(右尹)과 좌윤을 거쳐, 이조참판이 되고, 1490년 방납(防納)을 행한 일로 파직되었으나 곧 고신(告身: 관직 임명사령장)을 돌려받고 서용되었다.
이 후 제수 때마다 지난 방납사로 인해 대간(臺諫)의 탄핵을 받았지만 국왕의 처남이었기에 불문에 부쳐졌다. 1493년에 좌윤·겸오위도총부부총관(兼五衛都摠府副總管)·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역임하고, 1494년 내의원 제조를 겸하였으며, 1495년(연산군 1)에는 다시 경연특진관(經筵特進官)을 겸하였다. 성종의 내친으로 장기간 재상직에 있었지만 식견이 부족하여 별 치적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