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교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후기 지돈령부사, 경상도병마도절제사, 판돈령부사 등을 역임한 무신.
이칭
시호
양간(良簡)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1446년(세종 28)
본관
전주(全州)
주요 관직
동지돈령부사|우군총제|충청도병마도절제사
정의
조선후기 지돈령부사, 경상도병마도절제사, 판돈령부사 등을 역임한 무신.
개설

본관은 전주(全州). 아버지는 의안대군(義安大君) 이화(李和)이고, 어머니는 경원군(慶原君) 노은(盧訔)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400년(태종 1) 이전 정2품 원윤(元尹)에 봉작되었다. 1412년(태종 12) 태종은 강력한 왕권을 토대로 왕위 계승을 태조직계에 한정시키기 위해 당시까지 태조계와 동일하게 취급한 비태조계를 왕위 계승에서 제외시키고, 재내제군(在內諸君: 종친내에서의 君으로 봉군된 친족범위) 원윤·정윤(正尹)에 책봉하던 것도 혁파하였다.

한편으로는 이 조치로 인한 비태조계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문무관직에 종사할 수 있게하였다. 그리하여 삼군 도총제(都摠制)·총제·동지총제·첨총제와 영공안부사(領恭安府事)·판인녕부사(判仁寧府事)·판경승부사(判敬承府事)·인녕부윤(尹)·경승부윤 각 1직을 가설하고, 당시 제내제군 이하에 책봉되던 비태조계를 영공안부사 이하에 제수하였다.

이에 따라 원윤(元尹)에서 우군동지총제(右軍同知摠制)에 제수되고, 이후 일반 관료와 같이 아무런 구애없이 관직생활을 할 수 있었다.

1418년(세종 즉위) 동지돈녕부사(同知敦寧府事)에 제수되고, 이후 세종대를 통해 좌군동지총제·동지돈령부사·중군총제·우군총제·도총제·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충청도병마도절제사·지돈령부사·경상도병마도절제사를 두루 지냈다.

또 1422년 하정부사(賀正副使), 1427년과 1430년에는 사은사(謝恩使)가 되어 각각 명나라를 다녀왔다. 1443년(세종 25) 종1품 숭정대부(崇政大夫)에 오르면서 판돈령부사에 제수되고, 재직중 병으로 졸하였다.

종실 존친(尊親)으로서 태종과 세종의 아낌을 받았고, 30여 년 동안 여러 군직을 역임하면서 개국초의 국기(國基)와 왕권을 다지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참고문헌

『태종실록(太宗實錄)』
『세종실록(世宗實錄)』
「종친부고」(김성준, 『사학연구』18, 1964)
집필자
한충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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