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3년(태조 2) 이전 이성만호(泥城萬戶)에 제수되고, 1394년 상의중추원사 겸 정주등처도병마사(商議中樞院事兼定州等處都兵馬使)에 승직하였다.
1396년 충청 경상도 조전절제사(助戰節制使)로 파견되어 그곳에 침입한 왜구를 방어하고, 같은 해 충청도병마도절제사에 제수되었다. 1397년 오도도통사(五道都統使) 김사형(金士衡)이 울주(蔚州) 등지에 침입한 왜적 나가온(羅可溫) 일당을 격멸하기 위해 지정한 기일에 군사를 도착하지 못해 왜적을 도주하게 한 일로 파직되고 수군에 배속되었다. 1398년(태조 7) 사면을 받고 의주만호(義州萬戶)에 서용되었다.
1402년(태종 2) 정2품 자헌대부(資憲大夫)에 승진하면서 중군도총제(中軍都摠制)에 발탁되어서 1407년까지 재직하였다. 1407년 성절사(聖節使)가 되어 명나라를 다녀오고, 그 직후 지의정부사(知議政府事)에 제수되었으나 ‘군무에는 합당하지만, 묘당(廟堂, 의정부)에는 마땅하지 못하다’는 지적에 따라 서북면도순문찰리사(西北面都巡問察理使)로 파견되었다.
다음해에 충청도병마도절제사 겸 영홍주목사(領洪州牧事)로 파견되었고, 1409년경 도총제로 입조하였다가 동직 재직 중에 졸하였다. 태종의 신임을 토대로 10여년에 걸쳐 내외의 군사를 지휘하면서 왕권의 안정과 국방에 크게 기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