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백춘(伯春), 호는 소소(笑笑). 이현유(李顯猷)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창중(李昌中)이다. 아버지는 이의상(李義常)이며, 어머니는 유건(柳健)의 딸이다.
1821년(순조 21)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그 뒤 지평(持平)·이조참의·이조참판·한성판윤을 역임하였다. 1843년(헌종 9)에 동지 겸 사은정사(冬至兼謝恩正使)로서 청나라에 다녀왔다. 이어 대사헌·호조판서를 거쳐 1847년 광주유수(廣州留守)로 있을 때, 전날 대사헌으로서 조병현(趙秉鉉)의 탐학과 전권을 휘두르는 것에 대해 탄핵한 소장(疏章)에 과격한 문구가 들어 있었던 것이 문제가 되어, 전라도 임자도(荏子島)에 유배되었다가 이듬해에 풀려났다. 그 뒤 전라감사·형조판서 등을 역임하고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