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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李濟)

조선시대사인물

 조선후기 대사성, 평안도감사, 예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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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조선후기 대사성, 평안도감사, 예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영역닫기영역열기개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경인(景仁), 호는 성곡(星谷). 이후재(李厚載)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형(李逈)이고, 아버지는 군수 이영휘(李永輝)이며, 어머니는 대사헌 박정(朴炡)의 딸이다.
영역닫기영역열기생애 및 활동사항
어려서부터 박세당(朴世堂)의 문하에 들어가 학문을 닦았고, 1687년(숙종 13)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이후 문음으로 관직에 나아가 시직(侍直)에 임명된 이래 여러 관직을 거쳐, 공조정랑에 올랐다. 1699년의 식년문과에 장원하였고, 2년 후 승지에 발탁되어 3년간 재직하다가 1704년 충청도감사에 임명되었으나 사직을 청하였다. 곧 황해도감사에 임명되어 외직에 나갔는데, 이때 궁장(宮庄) 소속 관노(官奴)들의 횡포를 강력하게 저지시켜 민생을 안정시켰다.
이어서 승지를 거쳐 대사성이 되었는데, 이때 시무책(時務策) 10조를 올려 인사의 공정, 성균관운영의 혁신 등을 논하였다. 다시 승지·이조참판을 거쳐 1710년에 평안도감사가 되었고, 2년 후 예조참판을 거쳐 대사간이 되자 과거의 부정 및 과옥문제(科獄問題)를 준열하게 논하다가 왕의 노여움을 사 삭직되었다.
이후 광주(廣州)의 전사(田舍)로 돌아가 경사(經史)의 연구에 몰두하다가, 관직이 복직되어 소환되었으나 곧 죽었는데, 당시의 대표적 청백리의 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7년)
장동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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