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출생. 경성사범부속국민학교와 양정고등보통학교(養正高等普通學校)를 나왔다. 문외(門外)·황금좌·신무대 등 극단에서 연기 경력을 쌓고 1935년 나운규 감독의 「강건너 마을」로 영화계에 등장하였다.
이를 발판 삼아 「아리랑 3편」(1936)·「청춘부대」(1938)·「국경」·「성황당」(1939)·「승리의 뜰」(1940)·「복지만리」·「창공」·「처의 윤리」(1941)·「풍년가」(1942)·「망루(望樓)의 결사대」(1943) 등에 출연했고, 해방 후에는 「자유만세」(1946)를 비롯하여 「수우(愁雨)」(1948)·「전우」(1949)·「태양의 거리」(1952)·「출격명령」(1954)·「열애」·「망나니 비사(悲史)」·「불사조의 언덕」(1955)·「애인」(1956)·「애원(愛怨)의 고백」(1957) 등에서 주조연의 역할을 맡았다.
1966년「무정가(無情街) 1번지」를 끝으로 현역에서 물러날 때까지 모두 115편을 남겼다. 1946년 결혼한 노경희(盧耕姬, 1995년 작고)와도 각기 방자와 향단 역을 맡아 화제를 모은 1950년대의 히트작 「춘향전」(1955, 이규환 감독)과 「망나니 비사」(1955, 김성민 감독) 외에 「애인」·「애원의 고백」·「실낙원의 별 후편」(1958) 등 10여편에 이른다. 그 뒤 오랜 연기경험을 살려 「애정무한」(1958)·「푸른 날개」(1959)·「추억은 영원히」(1960)·「홍도야 울지마라」(1965) 등 6편을 제작·감독했으나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는 활달한 성격과 박진감 있는 연기로 외형적인 인물 묘사에 익숙한 모습을 보였는데 그 대부분이 악역이었다. 처음부터 술과 계집으로 세월을 보내는 농가의 외아들(강건너 마을)이거나 마을 처녀를 겁탈하려는 측량기사(아리랑 3편), 아니면 땅문서를 빼돌리는 건달(청춘부대), 남의 아내를 넘보는 산림간수(성황당), 밀수 두목(수우) 따위였다.
그 자신이 꼽은 연기 대표작은 교리의 소실로 들어가기를 거부하고 도망쳐 나와 자기의 집에 숨어들어온 처녀를 스스로 죽여야 했던 「망나니 비사」의 주인공 망나니역이며, 조연이지만 「춘향전」의 방자 역에도 애착을 보였다. 1995년 제16회 청룡영화상 특별공로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