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1999. 7남매 중 장남으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1963년 경희대학교 정경대 상과를 나와, 1985년 순복음신학교 및 1994년 미국 비콘신대 석사 과정을 이수하였다. 1980년대부터 선교 활동에 전념하였으며, 온누리교회 담임 목사를 지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기독교방송 성우로 출발한 이래 1964년 극단 실험극장과 자유극장, 국립극장 단원으로 무대에 올라 「베니스의 상인」 · 「리어왕」 · 「따라지의 향연」 등을 남겼다. 1965년부터 TV탤런트로 활약하여 KBS-TV의 드라마 「탑」 · 「조총련」 · 「북간도」 · 「밀고」 · 「삼포가는 길」 등에 출연했다.
영화에 첫 선을 보인 것은 장일호(張一湖) 감독의 「황혼의 부르스」(1968). 막대한 유산을 물려 받은 재일 교포 모녀를 감금하여 북송선에 태우려는 조총련계 간부의 음모에 맞서 구출해내는 한국 민완 정보원의 활약상을 그린 액션 드라마이다.
계속해서 「내장성(內藏城)의 대복수」 · 「의협 방랑의 형제(1969)」 · 「야광주」 · 「젊은 아들의 마지막 노래(1970)」 · 「특별수사본부와 기생 김소산(1973)」 · 「들국화는 피었는데」 · 「여자 정신대」 · 「낭자한(娘子恨)」 · 「조총련」 · 「특별수사본부 김수임의 일생(1974)」 · 「인간단지」 · 「거지왕 김춘삼」 · 「광녀(狂女)(1975)」 등 80여 편에 출연하였다.
그의 대표작으로 박태원 감독의 「조총련」 등이 꼽힌다. 1974년 일본 요꼬하마항에 북한의 만경봉호가 정박하면서 조총련 본부 내부에 일어난 세력 다툼을 부각시킨 당시 성행했던 반공영화의 하나로, 선이 굵은 연기가 관심을 끌었다.
이 밖에 임금이 바뀌자 억울하게 자결한 어느 대감 일가의 혼령을 위로하고 마을을 평정시키는 공포영화 「낭자한」(박윤교 감독, 1974)에서 신관 사또 역을 맡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진가는 액션 드라마에서 발휘되었다. 88㎏을 오르내리는 체중과 180㎝의 훤칠한 키가 발산하는 특유의 중량감, 부리부리한 눈이 갖는 날카로움 등 타고난 그의 개성이 잘 부합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멜로드라마보다는 활극, 선량한 캐릭터보다는 악역에 강한 배우라는 인상을 심어 주었다. 1991년 세계복음화중앙협의회 연예인 교회상, KBS-TV연기대상 등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