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사웅 ()

내암유고
내암유고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형조좌랑, 예조정랑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경빈(景贇)
내암(耐菴)
이칭
노사백(老詞伯)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536년(중종 31)
사망 연도
미상
본관
온양(溫陽)
주요 관직
정랑
정의
조선 후기에, 형조좌랑, 예조정랑 등을 역임한 문신.
내용

본관은 온양(溫陽). 자는 경빈(景贇), 호는 내암(耐菴). 정랑 정탁(鄭鐸)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정구붕(鄭龜朋)이며, 아버지는 정자(鄭磁)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89년(선조 22)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1601년 형조좌랑을 거쳐 병조와 예조의 정랑을 역임하였다.

또한, 어려서부터 백가의 서와 부를 읽고 시에 능통하여 일찍이 노사백(老詞伯)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그가 지은 시 29수가 있고, 저서로는 『내암집』이 있다.

참고문헌

『선조실록(宣祖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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