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전라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정운은 임진왜란 때 옥포ㆍ한산해전 등에서 이순신 전라좌수사의 선봉장으로서 전과를 올리고 몰운대(歿運臺)에서 순절하였다. 이를 기리기 위해 1609년(선조 41) 명정을 받았고, 그의 출생지 입구에 정려를 지었으며, 1959년에 중수하였다.
정운은 본관이 하동(河東)으로, 현재의 해남군 옥천면 대산리(당시 영암소속)에서 훈련원참군 응정(應禎)의 아들로 태어났다. 28세 때인 1570년(선조 3) 무과에 급제하여 응천현감ㆍ제주판관을 지냈다.
1592년 유성룡(柳成龍)의 천거로 녹도만호(鹿島萬戶)로 부임했고, 임진왜란 때 좌수영 앞바다에서 전라좌도수군절도사 이순신의 선봉이 되어 대 전과를 올리고, 다시 추격하다가 부산의 ‘몰운대’ 싸움에서 전사하였다. 병조참판에 추증되고 1843년(헌종 9)에 충장(忠壯)의 시호가 내려졌다.
정려각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팔작집이며 주변으로 담장을 둘렀다. 안에는 명정 편액과 12대손인 홍채(洪采)의 중수기 현판이 걸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