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호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진위사부사, 한성좌윤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호이(浩而)
와빈(臥濱)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563년(명종 18)
사망 연도
1639년(인조 17)
본관
광주(光州)
주요 관직
좌찬성
정의
조선 후기에, 진위사부사, 한성좌윤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광주(光州). 자는 호이(浩而), 호는 와빈(臥濱). 정순인(鄭純仁)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정경(鄭褧)이고, 아버지는 증예조판서 정이주(鄭以周)이며, 어머니는 정응서(鄭應瑞)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11년(광해군 3)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1625년(인조 3)에는 사은 겸 진위사의 부사로서 박정현(朴鼎賢)·남궁경(南宮㯳) 등과 함께 중국에 다녀왔다. 1626년 한성좌윤을 역임하였고, 좌찬성양관대제학에 추증되었다.

참고문헌

『인조실록(仁祖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광주정씨족보(光州鄭氏族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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