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광주(光州). 자는 호이(浩而), 호는 와빈(臥濱). 정순인(鄭純仁)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정경(鄭褧)이고, 아버지는 증예조판서 정이주(鄭以周)이며, 어머니는 정응서(鄭應瑞)의 딸이다.
1611년(광해군 3)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1625년(인조 3)에는 사은 겸 진위사의 부사로서 박정현(朴鼎賢)·남궁경(南宮㯳) 등과 함께 중국에 다녀왔다. 1626년 한성좌윤을 역임하였고, 좌찬성양관대제학에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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