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국첨(國瞻), 호는 비와(卑窩). 정혁(鄭爀)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정두종(鄭斗宗)이고, 아버지는 정순(鄭珣)이며, 어머니는 월성이씨(月城李氏)로 통덕랑 이인건(李仁健)의 딸이다.
1715년(숙종 41)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부정자에 제수되었고, 1717년 봉상시주부 겸 부정자에 임명되었다. 그 해 숙종에게 동서고금의 역사를 강설, 그 실력을 크게 인정받아 정자에 승진되고, 이어 박사가 되었다. 이듬해 성균관전적을 거쳐 금교도찰방(金郊道察訪)으로 나갔다.
이 때 자신의 녹봉을 털어 주민들을 진휼(賑恤)하는 등 선정을 베풀었다. 1722년(경종 2) 황해도도사가 되고, 1724년 사축서별제(司畜署別提)가 되었으며, 이듬해 교서관교리를 거쳐 무안현감으로 나갔다. 1731년(영조 7) 부사과 겸 문신선전관에 임명되었다.
다음해 이조와 병조의 정랑을 거쳐 1734년 사헌부감찰에 임명되었다가 곧 사간원사간에 전임되었다. 이듬해 형조좌랑 겸 춘추관기사관이 되고, 1736년 봉상시판관이 되었다가 이듬해 양산군수로 나가 많은 치적을 쌓았다. 경학(經學)과 사학(史學)에 밝았다. 저서로는 『비와문집』 4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