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찬 ()

유교
인물
일제강점기 때, 『당언』, 『설창질서』 등을 저술한 학자.
이칭
양지(揚之)
원호(遠湖)
이칭
정진원(鄭鎭遠)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96년(건양 1)
사망 연도
1970년
본관
동래(東萊)
출생지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장팔리
정의
일제강점기 때, 『당언』, 『설창질서』 등을 저술한 학자.
개설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내경(乃卿), 호는 남산(南山), 초명은 진원(鎭遠). 경남 거창군(居昌郡) 거창읍 장팔리(長八里)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정완섭(鄭完燮)이며, 어머니는 합천이씨(陜川李氏) 이재룡(李在龍)의 딸이다.

아버지가 지리산(智異山)에서 기도해 낳았다고 한다. 유중교(柳重敎)의 문인이다. 15세에 경전(經傳)을 통송하고, 해시(解試: 향시)에 장원하였다.

생애 및 활동사항

일제의 침략이 있자 세상에 나가지 않고 학문하기를 결심, 이준식(李濬植)에게 이학(理學)을 배웠다. 1926년 중국의 하영봉(夏靈峰)과 서한을 주고받음으로써 학문을 질정(質正)받았다. 1937년 공사촌(貢士村)에 덕산재(德山齋)를 건립해 후진 양성에 힘썼다.

이듬해에 일제의 잔학(殘虐)에 비통과 울분을 달래려고 성인(聖人)의 심법(心法)과 치세(治世)의 지표(指標)를 내용으로 한 『당언(戇言)』 12편과 『설창질서(雪牕疾書)』 10조항을 찬술했다.

1963년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으로 하여금 인의(仁義) 정치를 구현토록 하기 위해 정자(程子)·주자(朱子)의 역리(易理)를 바탕으로 의리와 정직을 주안점으로 주해(註解)한 『주역직의(周易直義)』 12편을 찬술했다. 천체 물리학(天體物理學)에 대한 연구의 일환으로 『발비(發悱)』 3편과 『몽해(蒙解)』 2편을 찬술하였다.

자유는 오히려 혼란의 씨앗이라 주장하고, 노자(老子)·장자(莊子)·묵자(墨子) 등의 평등론은 바로 자유의 근본이라 전제하면서 불교와 기독교를 비판하고 배척론을 전개했다. 그리고 정관(政官)과 형관(刑官)의 통합론을 주장하였다.

심성설(心性說)에 있어서 심은 이(理)와 기(氣)가 합친 것이라고 주장한 동시에 이와 기의 단편적인 논리를 배제했으며, 허령불매(虛靈不昧)는 심의 기본이며 명덕(明德)은 심의 당위(當爲)라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심이 정(靜)하면 이와 기가 혼연일치하게 되므로 도심(道心)과 측(則)이 되고, 반면에 동(動)하면 기기(氣機)가 감발(感發)하게 되므로 인심(人心)과 물(物)이 된다는 주장이었다.

정찬은 애국 사상과 반공 사상이 투철해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에게 남북 통일과 중공을 도모하자는 거사십책(擧事十策)을 상정하였다. 저서로는 『남산집(南山集)』 17권 『당언(戇言)』 12편, 『설창질서(雪牕疾書)』 12편, 『주역직의(周易直義)』 12편 등이 있다.

참고문헌

『남산집(南山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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