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창원(昌原). 호는 송암(松巖). 사성 정득우(丁得雨)의 후손이다. 일찍이 무과에 급제하였고,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종형 정철(丁哲)과 종질 정대수(丁大水)와 함께 한산도전투에서 큰 공을 세우고, 그 공으로 성주판관에 임명되었다. 1594년 거제·옥포전투에서 전사하였다. 뒤에 병조판서에 추증되고, 여수의 가곡사(佳谷祠)에 제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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