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윤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사간원정언, 사헌부지평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상경(象卿)
녹촌(鹿村)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611년(광해군 3)
사망 연도
1650년(효종 1)
본관
전주(全州)
주요 관직
사간원정언|사헌부지평
목차
정의
조선 후기에, 사간원정언, 사헌부지평 등을 역임한 문신.
생애 및 활동사항

본관은 전주(全州). 초명은 후현(後賢). 자는 상경(象卿), 호는 녹촌(鹿村). 최수준(崔秀俊)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최기남(崔起南)이고, 아버지는 공조판서 최내길(崔來吉)이다.

1633년(인조 11) 성균관에 입학하고, 1644년 별시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였다. 사간원정언·사헌부지평을 역임하면서 성망(聲望)을 크게 나타내었으나, 1649년 친상을 당하여 이를 이겨내지 못하고 그 이듬해에 죽었다.

참고문헌

『인조실록』
『국조방목』
『국조인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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