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 ()

고려시대사
인물
고려 후기에, 국자좨주, 상서좌복야, 한림학사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1278년(충렬왕 4)
본관
미상
출생지
금마군
주요 관직
교서랑|기거사인|예부시랑|국자좨주|상서좌복야|한림학사 승지
정의
고려 후기에, 국자좨주, 상서좌복야, 한림학사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출신지는 금마군(金馬郡). 자(字)는 호연(浩然). 고려 고종∼원종대 문한관(文翰官), 문장가로서 명성을 떨쳤다. 아들로 이행검(李行儉)이 있다.

생애 및 활동사항

고종 때 과거에 급제하여 부성(富城) 현위(縣尉)로 임명되었다. 이후 중앙에 올라와서 도병마녹사(都兵馬錄事)가 되었으며 직사관(直史館)으로 선발되었다. 얼마 안 있어 어떤 일로 인해 관직에서 물러났다. 상서(尙書) 김창(金敞)이 이주의 재능을 사랑하여 추천하니 교서랑(校書郞)에 임명되었다. 그 후 여러 관직들을 거쳐 기거사인(起居舍人)이 되었다.

원종 때 병부·예부의 시랑(侍郞), 국자좨주(國子祭酒)를 역임하였다. 좌간의대부(左諫議大夫)로 있다가 왕에게 글을 올려 퇴관할 것을 요청하였더니 왕이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 한림학사승지(翰林學士承旨)로 벼슬을 올려 주어 치사(致仕)케 하였다. 이주는 성질이 온순하고 어질었으며 특히 글을 잘 지었고 편지 등의 글씨도 잘 썼다. 평생토록 생산(生産)에 힘쓰지 않았으므로 그 집에는 쌀 한 섬의 저축도 없었다고 한다. 1278년(충렬왕 4)에 78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고려의 무인정권』(김당택, 국학자료원, 1999)
『고려 무인정권기 연구』(황병성, 신서원, 1998)
「최우정권하의 문한관: ‘능문’ ‘능리’의 인사 기준을 중심으로」(조인성, 『동아연구』6, 1985)
「고려의 문한관」(변태섭, 『김철준박사 화갑기념 사학논총』, 1983)
집필자
김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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