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문은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중동부에 위치한 조선족 집거지역이다. 두만강을 토문강이라고 부르는 만주족의 발음에서 유래하였다. 청나라 때에 봉금지대로 설정되어 있어서 1913년에서야 사람이 살기 시작하였다. 두만강 유역의 교통과 경제활동의 요지로 대표적인 조선족 집거지역으로 북한과 중국의 교류를 상징하는 도문대교와 도문철교 등이 있다. 인근의 백두산과 용정, 연길, 훈춘 등 항일독립운동 유적지와 조선족 문화가 남아 있다. 매년 7월과 8월 사이에 두만강과 조선족의 특색이 드러나는 두만강문화축제가 열린다.
도문은 본래 옥저(沃沮)였다가 고구려의 영토가 된 지역이다. 당대 이후 발해국 현덕부에 속했다가 요대에는 여진, 원대에는 개원로 남경만호부, 명대에는 노이간도사(奴爾干都司)로 불렸다. 청대에는 동북지역이 봉금지대(封禁地帶)로 설정되면서 약 200여 년간 황폐한 곳으로 남았다가 1913년에 이르러서야 연길현이 건설되기 시작하였다. 1925년에는 20여 호가 거주하였으며, 1931년에는 약 100호의 주민이 마을을 이루면서 탄막동을 ‘도문’으로 개칭하였다. 1934년에 간도성 연길현 도문시로, 1936년에는 도문가가 되었다.
행정구역은 월청 · 석현 · 장안 · 양수 등 4개의 진(鎭)과 3가도(街道), 60여 개의 행정촌으로 구성되어 있다. 2014년 기준으로 인구는 약 12만 명이며, 그중 조선족이 약 65,000명으로 전체 인구의 약 54% 점하고 있는 조선족 집거지역이다. 북한 · 중국 교류의 상징인 도문대교와 도문철교를 통해 양국의 물자 교류가 오랜 기간 지속되어 왔으며, 인근의 백두산과 용정, 연길, 훈춘 등 항일독립운동 유적지와 조선족 문화가 남아있어 이곳을 찾는 한국관광객의 발길이 매우 잦은 곳이다.
도문이라는 지명은 두만강(豆滿江)에서 기인한다. 통문(統們), 치만(馳滿), 토문(土門), 두만(豆滿) 등은 모두 두만강을 지칭하는 말이다. 금 · 원대에 애야굴하(愛也窟河)와 통문하(統門河), 명대에 아야고하(啊也苦河)와 도문하(徒門河) 등으로 쓰이다가 청대에는 만주족 발음으로 토문강(土門江)이라 하였다. ‘토문’은 ‘만(萬)’의 의미로 ‘하원(河原)’, 즉 만수지원(萬水之源, 만 가지 물의 근원)을 뜻한다.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의 현급 도시인 도문은 두만강 유역의 교통 · 경제활동의 요지이다. 지리적으로 북한 · 중국 양국 변경을 따라 흐르는 두만강 가에 자리 잡고 있다. 동쪽으로는 훈춘, 서쪽으로는 연길과 용정, 북쪽으로는 왕청현과 가까우며, 남쪽으로는 두만강 너머 북한의 온성군과 인접해 있다.
도문시를 연결하는 도로 · 철도 · 항운 교통은 인근의 동북아시아 ‘금삼각(金三角, 황금트라이앵글)지대’이자 ‘장길도개발계획(長吉圖開發計劃)’의 주요 경로인 연길, 훈춘, 북한의 나진-청진, 러시아의 하산-블라디보스토크를 연결하는 운송로의 중심에 해당한다.
최근 각광받고 있는 중국도문강문화여유절(中國圖們江文化旅遊節)은 도문시가 집중 육성하는 축제이다. 이는 ‘두만강’과 ‘조선족 비물질 문화유산’을 주요 키워드로 미술 · 음악 · 연극 · 문학 등 과거와 현재, 미래를 아우르는 민족적 · 지역적 특색이 드러나는 두만강문화축제이다. 매년 7월과 8월 사이에 두만강과 도문대교 인근의 ‘두만강광장’에서 열리며, 2010년 시작된 이래 2015년 6회를 치르는 동안 도문시를 대표하는 국제문화관광축제로 성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