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자강회(大韓自强會)
그 밖에 식산흥업의 필요성, 국가부원 증진책(國家富源增進策), 식산 결여의 원인, 황무지 개척, 일제의 황무지 개척 요구의 저의, 한국의 기후, 한국의 생산물, 임업의 필요, 토지 개량의 필요성, 종자 개량 등에 대한 구체적 연구를 거친 후 월보를 통해 계몽운동을 전개하였다. 국채보상운동 때 적극적인 참여를 결의하기도 하였다. 운영에 필요한 재정은 회칙에 따라 회원의 입회금과 독지가의 기부금으로 충당하였다. 회비는 가입시 입회금 1원을 내게 되어 있었으나 실제의 운영은 주로 기부금과 찬조금에 의존하고 있어 재정 상태는 궁핍한 실정이었다. 이 회는 출발 당시부터 법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활동 범위를 설정했기 때문에 소극적이며 온건한 계몽운동으로 일관하였다. 또한 당시 정부도 통감부의 영향 아래 있었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