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촌문집』은 조선 말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활동한 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인 하봉수(河鳳壽, 1867~1939)의 문집이다. 1959년에 간행된 신연활자본이다. 하봉수는 경상남도 진주의 유림으로서, 국채보상운동, 파리 장서 운동 등 영남 유림들의 반제국주의 운동에 활발히 참여했다. 『백촌문집』은 그러한 하봉수의 현실 인식과 교류 관계, 진주 지역의 사적과 문물에 대한 풍부한 정보를 담고 있다.
하봉수(河鳳壽, 18671939)의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채오(采五), 호는 백촌(栢村)이다. 경상남도 하동(河東)에서 태어나, 장성해서는 경상남도 진주 사곡리(싹실)로 이주했다. 그곳에서 민족주의자 유림인 곽종석(郭鍾錫, 18461919)에게 수학했다. 이후로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하고, 곽종석이 을미사변과 한일 합방을 규탄하는 성명서와 상소문을 작성하는 일을 보조했다. 특히 1919년에 곽종석의 주도로 영남 유림들이 파리 강화 회의에 독립청원서를 제출한 파리 장서(長書) 운동에 참여했다. 독립유공자로 추서되었다.
『백촌문집』의 권말에 사위 손주석(孫柱錫)과 아들 하상표(河相彪)의 발문(跋文)이 있다. 발문에 의하면, 하봉수 사후 10여년 뒤에 손봉석(孫鳳錫), 손주석, 하종헌(河琮憲) 등, 문인과 자손들이 문집 간행을 논의하여, 필사본 초고를 제작했다. 이를 김황(金榥)이 교정하여 1959년에 간행했다.
10권 4책의 구성이다. 12행 28자, 상하향2엽화문어미(上下向2葉花紋魚尾)의 신연활자본이다. 국립중앙도서관, 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 영남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권1~3에는 시 688수, 사(詞) 1편, 악부(樂府) 17편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의(義) · 이(理) · 예(禮) 등 도학적 가치를 주제로 한 시와 우리나라의 누각 · 정자 · 서원 등을 유람하며 옛 선유들의 뛰어난 학식과 높은 인격을 사모하여 읊은 시가 비교적 많다. 시를 짓게 된 동기를 밝힌 서문이 많은 시에 첨부되어 있다. 차운시 등에서 사곡리의 친족으로서 파리 장서 운동에 함께한 하겸진(河謙鎭), 마찬가지로 사곡리에 거주한 안유상(安有商) 등, 다양한 인물들을 확인할 수 있다. 그 이력을 밝힐 수 없는 경우도 많으나, 대체로 사곡리 또는 영남의 유림일 것으로 추정된다. 최익현(崔益鉉, 1833~1906)에게 보낸 시도 있다.
「조대사(釣臺詞)」는 주희(朱熹)의 「조대사」를 모범으로 삼아, 진주 덕천(德川)의 도구대(陶邱臺)에서 남명(南冥) 조식(曺植, 15011572)의 문인인 이제신(李濟臣, 15361584)과 하철(河澈, 1635~1704)을 생각하며 지은 것이다. 악부는 「분양악부(汾陽樂府)」라는 표제 아래 수록된 작품들로, 지리산에서 가야금을 연마한 신라 사람 옥보고(玉寶高)를 소재로 한 「선학금(仙鶴琴)」으로부터 조식의 문인인 진극경(陳克敬, 1546∼1617)을 소재로 한 「독대학(讀大學)」에 이르기까지, 영남의 문물과 사적을 악부의 형식으로 노래한 것이다.
권4~6에는 서(書) 137편이 수록되어 있다.
서(書)는 대부분 당시의 유학자들과 학문상의 의문점을 질의, 토론한 것으로 별지가 첨부된 것이 많다. 「상면우선생(上俛宇先生)」은 곽종석과 이기설(理氣說)에 대해 토의한 내용이다. 「답권명호(答權明湖)」의 별지는 존양지설(尊壤之說), 「답하여해(答河汝海)」는 심성론(心性論)에 대해 토의한 것으로 주목된다. 안유상 등, 영남 유림들이 주를 이루는 것으로 추정된다.
권7에는 잡저(雜著) 20편, 서(序) 12편이 수록되어 있다.
잡저 가운데 「이동성부동설(理同性不同說)」은 인물성동이론(人物性同異論)에 있어서 호론(湖論) · 낙론(洛論)이 모두 일방적임을 지적하고, 자신의 견해를 논술한 글이다. 「척고류변(摭古類辨)」은 각 경전의 내용 가운데 모순되는 부분을 변론한 것이다. 선유(先儒)들의 주석에 대해 고증학적으로 해설하였다.
「유동사문(諭同社文)」은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전 국민이 합심 단결해 적극적으로 참여하자고 권유하는 글이다. 「태진문답(太眞問答)」은 불교와 유교의 차이점, 유교가 불교를 배척하는 논리의 타당성에 관한 의견 등을 승려 태진과 토론한 내용이다.
서(序)는 왕계(王系)를 찬미한 「전주이씨세덕편서(全州李氏世德編序)」, 자신의 유년기 작품을 정리한 책에 대한 「초미록서(焦尾錄序)」 등 서적의 서문과 「송김한숙남귀서(送金漢叔南歸序)」 등의 송서(送序)를 비롯하여 다양한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8에는 기(記) 10편, 발(跋) 9편, 명(銘) 1편, 찬(贊) 2편, 상량문(上樑文) 1편이 수록되어 있다.
기는 「망이동기(望夷洞記)」를 비롯하여 여러 명승지와 누정(樓亭)을 유람하고 지은 기문이다. 발은 「포은선생연보별본발(圃隱先生年譜別本跋)」를 시작으로, 연보, 세고(世稿), 유고(遺稿), 실기(實記) 등 서적들의 발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명은 진주에 소재한 이용(李鎔, 18681940)의 누정인 조대(釣臺)에 제영한 「뇌연조대명(雷淵釣臺銘)」이다. 찬은 직접 베낀 주희의 화상에 쓴 「수사주선생화상찬(手寫朱先生畫像贊)」과 진주의 친족인 무관 하용표(河龍杓, 18481921)의 화상에 쓴 「하월담화상찬(河月潭畫像贊)」이다. 상량문은 안공(安公)이라는 사람의 오산정사(吾山精舍)를 위해 지은 것인데, 이는 안유상의 서재로 추정된다.
권9에 제문 26편, 뇌문(誄文) 1편, 애사(哀詞) 3편, 권10에 행장(行狀) 14편, 묘지명 4편, 묘표(墓表) 3편, 묘갈명 8편, 비명 2편, 전(傳) 3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제문, 뇌문, 애사는 스승 곽종석을 비롯한 주변인들을 위해 지은 것이다. 그 외의 묘도문자(墓道文字)들은 선조 하경복(河敬復, 13771438)과 아버지 하달규(河達圭, 18261895)의 행장 외에, 주변인들의 의뢰를 받아 지은 행장, 묘지명, 비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