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사집 ()

유교
문헌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인 이항복(李恒福, 1556~1618)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간행한 시문집.
문헌/고서
편찬 시기
1629년(인조 7)
간행 시기
1629년(인조 7)
저자
이항복(李恒福)
편자
이현영, 이명준, 정충신, 이종성 등
권책수
원집 6권, 별집 6권, 부록. 도합 10책
권수제
백사선생집(白沙先生集)
판본
목판본
표제
백사집(白沙集)
소장처
고려대학교 도서관,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 등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백사집』은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이항복(李恒福, 1556~1618)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간행한 시문집이다. 1629년(인조 7) 간행 강릉본, 1635년(인조 13) 간행 진주본, 1726년(영조 2) 간행 영영본의 세 판종이 전한다. 당대의 경세가 이항복의 시문과 당대 주요 인물 및 사건에 대한 저자의 여러 공적·사적 기록 등을 수록하고 있다.

키워드
정의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인 이항복(李恒福, 1556~1618)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간행한 시문집.
서지사항

1629년(인조 7) 간행된 강릉본은 원집 6권, 별집 6권, 부록 (10책)이, 1635년(인조 13) 간행된 진주본은 원집 6권, 별집 4권, 부록 · 보유 (8책)이, 1726년(영조 2) 간행된 영영본은 원집 23권, 부록 7권 (15책)이 전한다. 목판본이다.

편찬 및 간행 경위

『백사집』은 세 차례에 걸쳐 간행되었다. 초간본인 강릉본은 주1되어 있던 주2을 문인들이 주도하여 1629년(인조 7) 강릉에서 처음 간행한 것이다. 장유(張維)의 서문에 의하면 강원도 관찰사 이현영(李顯英)이 같은 동문인 강릉 부사 이명준(李命俊)과 함께 저자의 유고를 모아 간행하였다고 한다. 원집 6권, 별집 6권, 부록(도합 10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중간본인 진주본은 1635년(인조 13)에 경상우병사 정충신(鄭忠臣)이 진주에서 강릉본을 원집 6권, 별집 4권, 부록 및 보유(도합 8책)로 재편집하여 목판으로 간행한 것이다. 장유는 발문에서 초간본이 간행된 뒤에 편차(編次)가 잘못되고 오자가 적지 않다는 지적이 많아 문하생들이 공동으로 교정하여 틀린 곳은 고치고 빠진 곳은 보충하고 쓸데없는 것은 삭제하고 위치가 잘못된 것은 바로잡았다고 하였다. 이 중간을 주도한 인물은 영남우도 절도사(嶺南右道節度使) 정충신(鄭忠信)이다. 그는 저자의 가장 총애 받은 문인으로 저자의 북청 유배 길과 사후 장사 지낼 때까지의 모든 사실을 「백사북천일록(白沙北遷日錄)」으로 남긴 인물이기도 하다. 이 중간본은 저자가 기축옥사(己丑獄事) 때 남긴 「기축기사(己丑記事)」가 포함되어 있어, 남인(南人)들 사이에서 정치적 이유로 거론되기도 하였다.

영영신간본(嶺營新刊本)은 이러한 문제를 불식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저자의 5대손 이종성(李宗城)의 주도로 1726년(영조 2) 영남 감영(監營)에서 목판으로 간행한 것이다. 원집 23권, 부록 7권(도합 15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영영본은 강릉본과 진주본 모두 착오가 많고 시문에 출입이 있어 두 본을 대교하고 종합하여 전집을 만든 것이다.

구성과 내용

권14는 시 · 가영(歌詠) · 만(挽), 권58은 차(箚), 권912는 계(啓), 권13·14는 의(議), 권15는 잠(箴) · 명(銘) · 서(序) · 기(記) · 발(跋), 권16은 잡저(雜著), 권17은 신도비명, 권1820은 묘갈명, 권21은 행장(行狀) · 유사 · 제문(祭文), 권22는 서독(書牘), 권23은 조천기문(朝天記聞)으로 되어 있다.

부록의 권1은 연보, 권2는 가장(家狀), 권3은 행장, 권4는 제문, 권5는 만사(挽詞), 권6은 제공찬술(諸公撰述), 권7은 의변(疑辨) 등이다.

시는 고금체 333수를 대략 시대순으로 편찬한 것으로, 「이흥효의 미인도에 제하다[題李興孝美人圖]」, 「산수도(山水圖)」, 「박연폭포 그림에 제하다[題朴淵圖]」 등 당시 사대부 문인의 예술 취향을 알 수 있는 다수의 주3, 난세의 역경을 문학으로 표현한 난중시(亂中詩)와 유배시(流配詩) 등을 수록하고 있다.

서발류는 남원 · 담양 · 동복 · 나주 등 전라도 주요 보루 지역 소재의 산성도(山城圖)에 부친 해설인 「전라도산성도후서(全羅道山城圖後敍)」, 허균(許筠)의 시집에 부친 서문이자 저자의 시론이 되어 있는 「성소잡고서(惺所雜稿序)」, 한유의 문집인 『한창려집』을 훈련도감자로 간행하면서 작성한 「훈련도감인 한창려집발(訓鍊都監印 韓昌黎集跋)」 등을 수록하고 있다.

신도비명은 「도원수권공묘지(都元帥權公墓誌權慄)」, 「회재선생지(晦齋先生誌李彦迪)」, 「한원부원군이공묘지(漢原府院君李公墓誌李德馨)」, 「연안이공비(延安李公碑李廷馣)」, 「율곡선생비명(栗谷先生碑銘李珥)」, 충무공의 노량대첩 기념비인 「통제사이공노량비명(統制使李公露梁碑銘)」 등을 수록하고 있다. 「율곡선생비명」은 이이(許筠)의 십만양병설이 처음 언급된 곳이기도 하다.

행장은 정치가, 시인, 학자로 당대에 명망이 높던 박순(朴淳)에 대한 글을 수록하고 있고, 유사는 임진왜란에서 큰 업적을 세운 권율(權慄), 이순신, 유성룡(柳成龍) 등에 대한 기록을 수록하고 있다.

계(啓), 차(箚), 의(議) 등 주의류(奏議類) 산문에서는 저자의 경세관을 비롯하여 국방과 민생을 포함한 국정의 당면 과제와 그에 대한 저자의 대책을 살펴볼 수 있다. 국왕에게 올리는 주의류의 글들이 『백사집』의 3분의 1일 넘는 분량을 차지하고 있어, 35년간 조정의 여러 관직에서 국정을 두루 담당했던 저자의 경세 문장과 관직 이력을 함께 엿볼 수 있다.

현황

1629년(인조 7) 간행 강릉본은 고려대학교 도서관,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 한국학중앙연구원 등에 주4이 전한다. 1635년(인조 13) 간행 진주본은 고려대학교 도서관,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 동국대학교 중앙도서관, 충청남도 도서관,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등에 영본이 전한다. 1726년(영조 2) 간행 영영본은 국립중앙도서관,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충남대학교 도서관, 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 영남대학교 도서관, 조선대학교 중앙도서관 등에 주5이 전한다.

참고문헌

원전

이항복, 『백사집』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단행본

신승운, 「『백사집』 해제」 (한국고전번역원, 1998)
임형택, 「(국역)『백사집』 해제」 (한국고전번역원, 1998)
주석
주1

잘 지은 좋은 글. 우리말샘

주2

생전에 남긴 글. 우리말샘

주3

동양화에서, 그림의 제목과 관련된 시를 지어 화면에 적어 놓은 글. 우리말샘

주4

한 질을 이루는 여러 권의 책 중에서 빠진 권이 있음. 또는 그런 책. 우리말샘

주5

한 질로 된 책의 전부. 우리말샘

집필자
노요한(고려대 한자한문연구소)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