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권 1책. 석인본. 1975년 현손인 준서(駿舒)·정서(正舒)와 안종선(安鍾宣) 등에 의해 편집, 간행되었다. 권두에 권용현(權龍鉉)의 서문과 권말에 안종선의 발문이 있다. 전주대학교 도서관과 전라남도 장성의 변시연가(邊時淵家) 등에 있다.
권1에 시 21수, 서(書) 54편, 잡저 6편, 권2에 서(序) 5편, 기 3편, 발 1편, 제문 5편, 묘갈명 1편, 행장 4편, 부록으로 승정원일기초록(承政院日記抄錄)·행장·묘갈명·묘표·만장·제문·백석헌기(栢石軒記)·농소기(農巢記) 각 1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書)의 「상친정(上親庭)」은 1853년 4월 17일부터 1874년까지 집에 보낸 편지로, 안부 및 교우와 조정의 사정, 국내외 정세 등에 관한 내용이 기술되어 있다.
「삼정책(三政策)」은 당시 삼정이 문란해 국가의 기강이 무너지고 국내외의 정세가 어지럽게 되자 이에 대한 대책을 밝힌 것이다. 성심(聖心)을 바로 해 정치의 근본을 세울 것, 기강을 바로잡을 것, 수령을 바로 임명할 것, 관리를 다스려 무위도식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을 주장하였다.
「용학서언심언성책(庸學序言心言性策)」에서는 『중용』의 솔성(率性)과 『대학』의 정심(正心)의 관계를 논하였다. 『중용』은 전심(傳心), 『대학』은 복성(復性)의 글로 규정하고 있다.
「척양사론(斥洋邪論)」은 당시 서양 세력이 문호 개방을 요구해오는 데 대한 논설이다. 노불양묵(老佛楊墨)의 이단보다 심한 무리이기 때문에 정학(正學)을 밝혀 척사의 근본을 세울 것을 촉구하였다.
이밖에 「계유일기(癸酉日記)」는 1873년 2월 3일부터 5월 10일까지 회시(會試)의 시관으로 참가했던 전후 사실을 간략히 기록해놓은 것으로, 과거시행의 상황을 파악하는 데 참고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