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리교(監理敎)
1884년 6월 27일 미국 감리교 선교사인 매클레이(Maclay,R.S.)가 서울에 와서 당시 개화당의 지도자인 김옥균(金玉均)을 통하여 고종에게 감리교회의 선교사업에 대한 윤허를 요청하였고, 고종은 교육사업과 의료사업에 국한시켜 이를 허락하였는데, 그 날이 1884년 7월 3일이었다. 이로써 미국 감리교회의 한국 선교계획과 준비는 급진전을 이루어, 1885년 4월 5일 미국 북감리회 선교사 아펜젤러(Appenzeller,H.G.) 부부가 장로교의 언더우드(Underwood,H.G.)와 함께 인천에 상륙함으로써 본격화되었다. 그로부터 한 달 후에 감리교의 의료선교사인 스크랜턴(Scranton,W.B.)이 서울에 도착하였고, 아펜젤러는 정동의 그의 집에서 그 해 8월 3일부터 한국인 학생에게 영어를 가르치기 시작하였는데, 이것이 배재학당이다. 이 학교는 급속히 성장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