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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낙선재(昌德宮樂善齋)

건축문화재 | 유적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에 있는 조선후기 창덕궁과 창경궁 경계에 위치한 궁궐건물.   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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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목명창덕궁낙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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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에 있는 조선후기 창덕궁과 창경궁 경계에 위치한 궁궐건물.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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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닫기영역열기개설
보물 제1764호. 낙선재는 1847년(헌종 13)에 중건된 궁궐 내부의 사대부 주택형식의 건축물이다.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낙선재는 창덕궁과 창경궁 경계에 위치하고 있다. 맨 좌측에 낙선재가 크게 자리 잡고 그 우측으로 석복헌과 수강재가 연이어져 있으며, 이들 뒤편에는 화초, 석물, 꽃담 굴뚝 등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화계와 그 위의 꽃담 너머로는 상량정, 한정당, 취운정이 위치해 있다.
낙선재는 원래 창경궁에 속해있던 건물이었지만 지금은 창덕궁에서 관리하고 있다. 중희당과 수강재를 이웃하고 있기 때문에 처음에는 세자를 위한 공간으로 건설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1756년(영조 32)에 화재가 있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영조대에도 존재했던 것을 알 수 있다. 1847년(헌종 13)에 중건된 낙선재는 후궁 경빈 김씨를 위해 세워진 건물이었다. 그러나 고종대에 들어와서 중희당과 가까운 낙선재를 종종 편전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생겼다. 특히 1884년(고종 21) 갑신정변 이후 고종은 낙선재를 집무실로 정하고 대신들과 외국 공사들을 접견하였다. 그 후 조선왕조 마지막 영친왕 이은이 1963년부터 1970년까지 살았으며, 1966년부터 1989년까지는 이방자 여사가 기거하였다.
낙선재는 연경당과 함께 궁궐 내에서 단청을 하지 않고 일반적인 주거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특이한 건물이다. 낙선재의 정문은 장락문(長樂門)으로 편액은 흥선대원군의 글씨로 알려져 있다. 낙선재 본채는 정면 6칸, 측면 2칸의 단층 팔작집으로 기둥 위 짜임은 간소한 초익공 형식으로 되어 있다. 서쪽 끝 한 칸은 앞으로 돌출시켜 2칸 누마루를 두고 제일 뒤는 온돌방을 들였다. 그 옆으로 2칸 대청이 있고 다시 2칸 온돌방을 두었으며 가장 동쪽 칸은 마루방이다. 가운데 4칸은 전퇴 부분을 개방해서 통로로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누마루 아래에서 아궁이를 가리기 위해 설치한 칸막이에는 현대적인 느낌의 추상적인 문양이 장식되어 있다. 얼음이 갈라진 모양을 하고 있어 빙렬(氷裂)문양이라고 하는데 장식 효과와 함께 화재를 경계하는 의미도 지닌다. 이 밖에 각종 창호의 무늬도 매우 섬세하고 아름다우며 실내에는 다른 곳에서 보기 드문 원형문이 있다.
낙선재의 후원에는 장대석으로 쌓은 화계가 있고 괴석 등을 전시하였다. 또 벽돌로 문양을 만들고 기와로 지붕을 얹은 아름다운 굴뚝이 있다. 화계 뒤로는 상량정(上凉亭)과 서고가 있고, 서쪽으로 소주합루와 만난다. 상량정의 원래 이름은 평원루(平遠樓)인데 일제강점기 동안 상량정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상량정의 뒤에는 긴 평면을 갖는 맞배지붕 서고가 있다. 정면은 나무판을 세로로 세워 만든 판벽이고 좌우벽은 궁장을 쌓는 것처럼 돌과 벽돌로 장식했다. 여기에 많은 양의 서화가 보관되어 있었다고 한다. 낙선재 후원에서 소주합루 영역으로 가기 위해서는 만월문을 지나도록 되어 있다. 만월문은 벽돌로 쌓은 것으로 개구부가 원형이다. 조선 후기부터 궁궐에 등장하는 중국풍 요소의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이다.
영역닫기영역열기의의와 평가
낙선재는 궁궐침전형식이 응용되면서 다른 곳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다양한 문양의 장식이 특히 주목되며, 조선 후기 건축 장인(匠人)들의 축적된 기량을 엿볼 수 있어 건축적인 가치가 높다. 또한 조선왕가의 실제 침전으로 사용된 역사성도 중요한 건물이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6년)
김동욱
개정 (2013년)
김왕직(명지대학교 고건축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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