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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황사불상군(芬皇寺佛像群)

    조각유적

     통일신라시대의 석불상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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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목명분황사불상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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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 분황사 불상군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통일신라시대의 석불상군.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1965년 12월경상북도 경주시 구황동분황사 뒷담에서 북쪽으로 30여m 정도 떨어진 우물 속에서 출토된 불상들로서 좌불(坐佛) 13구, 보살입상 1구, 불두(佛頭) 5점, 광배(光背) 1점, 기타 6점 등이다.
    이 불상들이 출토된 곳은 우물이었지만 그곳은 원래 분황사의 강당지(講堂址)에 해당되는 곳으로 짐작되고 있다. 또한 이 불상들이 모두 목이 잘린 채 우물 속에 들어가 있었던 것은 조선시대 척불(斥佛)의 영향으로 경내에 있던 석불들을 우물에 넣었기 때문이라고 추측된다.
    가장 양호한 상태로 출토된 관음보살입상(觀音菩薩立像)은 화강암으로 만들어졌는데, 머리에는 화불(化佛)이 새겨진 삼산관(三山冠)을 썼다. 목이 짧으며 목걸이를 비롯한 장식이 많으며 도식화되고 다소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어서 9세기경의 작품으로 추정되고 있다.
    목이 결실된 좌불은 13구가 출토되었는데, 화강암·사암(砂岩) 등 여러 가지 석재로 제작되었다. 이들은 수인(手印)에 의해서 판단해 볼 때 약사불(藥師佛)·비로자나불(毘盧舍那佛)·석가불(釋迦佛)로 생각된다.
    이들 여래좌상 가운데에는 등의 허리 쪽에 명문이 음각(陰刻)되어 있는 것이 있어서 주목되지만 마멸이 심하여 거의 판독하지 못하고 있다. 이상의 불상 외에도 광배와 함께 조각된 화강암제의 비로자나불이 있고, 사다리꼴의 암판(巖板)에 조각된 여래좌상이 있다.
    또한 화불(化佛)과 불꽃무늬가 조각된 광배가 2점, 불두 5점, 연화대석(蓮花臺石), 치미편(鴟尾片) 등의 유물이 아울러 출토되었다.
    이들 석불군은 크게 석질이 약한 흑운모(黑雲母) 화강암 조각과 밝고 단단한 화강암 조각으로 나누어지는데, 전자는 8세기부터 9세기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불상군은 분황사라고 하는 한 절에서 다량으로 출토된 조각품으로서, 당시 분황사를 중심으로 한 하나의 조각파(彫刻派)가 존재하였음을 보여 주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6년)
    박홍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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