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대(朴容大)
1881년부터 1910년까지 병조참판, 한성부 좌윤, 공조참판, 호조참판, 이조참판, 형조참판, 성균관 대사성, 예조참판, 의정부 도헌, 중추원 의관, 봉상사 제조, 영선사장, 비서원경, 법규교정소 의정관, 궁내부 특진관, 충청남도 관찰사, 태의원경, 사직서 제조, 비서감경, 경효전 제조, 법부대신, 홍문관 학사, 사직서 제조, 의효원 제조, 장례원경, 규장각 제학 등 주요 관직을 역임했다. 1908년 7월 기호흥학회 찬무원, 1909년 12월 국민대연설회 발기인 겸 간사원 등으로 활동했다. 일제강점 이후 일제침략에 협력한 공로를 인정받아 1910년 10월 일본정부로부터 남작 작위를 받았으며, 1911년 2만 5000원의 은사공채를 수령했다. 1915년 시정5주년 기념 조선물산공진회 경성협찬회 정회원, 1917년 10월 불교옹호회 고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