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은 기본적으로 종5품아문에 해당하는 관서를 총괄하거나 지방의 각 전과 능, 원 등의 관리를 책임지는 역할을 하였다. 한편 종친부 영은 장관이 아니며 종친 우대를 위해 설치하였기에 별도의 담당 업무가 없었다.
영(令)은 고려시대 제도를 계승하여 조선 건국 직후부터 설치가 확인된다. 1392년(태조 1)에는 경시서(京市署), 사온서, 사선서(司膳署)에 종5품 영을, 공조서(供造署)와 개성부 오부에 종6품 영을, 전옥서(典獄署), 전구서(典廏署), 서적원(書籍院)에 종7품 영을, 도염서(都染署)에 종8품 영을 설치하였다. 1443년(세종 25)에는 종친부에 정5품 영을 설치하였다.
영은 1466년(세조 12)에 관직을 일원적으로 통일하는 과정에서 종5품으로 규정되었고 소격서(昭格署) 등 종5품을 장관으로 하는 관서에 설치되었다. 이는 그대로 『 경국대전』에 수록되었다. 이후 한성부의 5부가 종5품아문으로 승격되면서 영이 추가되었다. 소격서나 사온서는 관서 자체가 혁파되었고 의영고와 장흥고는 종6품아문으로 강등되면서 영이 혁파되었다.
이에 따라 조선 후기에는 종친부, 종묘서, 사직서, 5부, 광흥창, 평시서, 숭의전에만 존속하였다. 한편 조선 후기에는 왕실의 혼전(魂殿)과 왕릉(王陵)의 관리를 위한 직책으로 종5품의 영을 두었다. 혼전과 왕릉의 증가에 따라 영의 정원도 지속적으로 늘어났다.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 당시 근대 관제로 개편되면서 궁내부 소속의 종묘서, 사직서, 영희전(永禧殿) 등을 제외하고는 모두 폐지되었고, 이들 관서의 영은 1907년(융희 1)에 혁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