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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례(喪禮)

가족의식행사

 상중(喪中)에 행하는 모든 의례를 지칭하는 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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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복 / 유월장
분야
가족
유형
의식행사
성격
용어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상중(喪中)에 행하는 모든 의례를 지칭하는 용어.
영역닫기영역열기개설
상례는 죽은 사람을 장사지낼 때 수반되는 모든 의례로서, 사람이 태어나서 마지막 통과하는 관문이 죽음이고, 이에 따르는 의례가 상례이다. 대부분의 사회에서는 죽음을 단순히 인간의 생물학적인 활동의 정지가 아니라, 인간의 영혼이 현세에서 타계(他界)로 옮겨간다고 믿으며, 상례에는 그러한 관념들이 일정한 행위로 표현되고 있다. 이와 같은 상례는 어떠한 사회에서도 존재하며 사회마다 그 개념과 내용을 달리하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도 여러 유형의 상례가 관행되어왔다.
보편적으로 관행되는 상례를 살펴보면, 무속적인 상례와 불교식 상례, 유교식 상례, 기독교식 상례절차가 있다. 물론, 이들 상례들은 서로 습합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그 중에서 오늘날에도 가장 보편적으로 관행되고 있으며, 전통적인 상례방식의 대표적인 것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 유교식 상례이다.
무속이나 불교가 유교보다 일찍 한국인의 종교생활을 지배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유교식 상례가 보편적으로 관행되어온 까닭은, 유교가 규정한 사례(四禮) 중의 하나가 상례이고, 상례를 비롯한 사례를 조선시대의 사회적 규범으로 받아들여 그 준행을 법제적으로 강요하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미 관행되고 있었던 무속적인 상례가 인간의 죽음을 영혼이 이승에서 저승으로 가는 것으로 믿는 내세관의 바탕 위에서 행해지고 있었고, 그것이 유교의 상례가 가진 죽음에 대한 관념과 유사하였기 때문에, 커다란 문화적 충격 없이도 유교식 상례가 정착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 나라의 유교식 상례는 대체로 주희(朱熹)가 쓴 『가례 家禮』의 영향하에서 만들어진 조선시대 여러 예서(禮書)들의 준칙에 따라 관행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실제로 행하고 있는 것을 보면 예서에 나와 있는 규정을 상당히 생략하거나 달리하고 있으며, 지역이나 가문에 따라 상당한 차이가 있다.
또, 망자(亡者)의 지위에 따라서 의례내용을 달리하기도 한다. 즉, 유아사망과 혼인 전 사망, 기혼자의 사망은 그 의례의 내용이 약간씩 다르다. 민간에서는 청장년의 사망을 흉상(凶喪)이라 하고, 노년의 사망을 호상(好喪) 또는 길상(吉喪)이라고도 하여 구별하고 있다.
한편, 상례는 다른 의례와는 달리 그것이 인간의 최종 통과의례라는 점에서 도시와 농촌을 막론하고 보수적인 성격을 띠고 전승되어왔다.
그러나 오늘날 특히 도시에서는 생활환경과 경제관념의 변화, 의례전문가의 부족, 가정의례준칙이나 장의사 등의 일반화로 비교적 간소하게 행해지고 있으며, 특히 주검의 처리에 있어서 화장이 성행하고, 비록 매장을 하더라도 묘지의 선택에 관한 관념이 변하여 공원묘지 등이 성행하게 되었다.
영역닫기영역열기상례의 변천
우리 나라 상례의 변천은 상고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오늘날의 상례로 대별하여 살펴보는 것이 편리하다. 고려 말기까지의 상례가 어떻게 시행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보다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야 그 구체적 모습을 파악할 수 있겠지만, 무속적·불교적 상례가 주로 행하여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조선시대에 와서는 고려 말부터 유입되기 시작한 유교식 상례가 확산되는 한편, 민간에서는 무속적인 상례가 지속적으로 행하여졌던 것으로 보인다. 고려시대 이전의 상례는 장례에 대한 약간의 기록과, 현존하는 고분의 발굴결과로 알 수 있는 묘제(墓制)를 통하여 추론할 수 있을 뿐이다.
부여 등지에서는 순장(殉葬)의 풍속이 있었으며, 『삼국지』 부여전(夫餘傳)에 의하면, 여름철에 사람이 죽으면 모두 얼음을 사용하며, 귀인에 대한 순장의 풍속이 있어 많을 때는 수백 인에 이르렀다고 한다.
또, 지장(遲葬)의 풍속이 있어 길면 5개월까지 이르는 경우가 있었으며, 상주는 치장(治葬)을 서두르지 않고 주위의 강청에 의해서 행하는 것이 망자에 대한 도리라고 믿고 있었다. 부여에서는 또 세골장(洗骨葬)과 같은 장법이 있었는데 『삼국지』 위서 동이전 부여조에 의하면, 시체를 산 위에 두었다가 부란(腐爛)한 뒤에 내어준다고 하였다.
고구려에서도 순장의 풍습이 있었으며, 사람이 죽으면 후하게 장례를 치렀다는 기록이 있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는 왕의 장례에 너무 많은 사람이 순장을 당하게 되므로 248년(중천왕 1) 이를 금지시켰다고 하고 있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의하면, 사람이 죽으면 100일간 미루었다가 성대하게 장례를 치르는데, 이때 재물을 탕진하였다고 한다.
또, 진한지방에서는 장례식 때 큰 새의 날개를 함께 묻는 풍습이 있었다. 오늘날 고분에서 발굴되는 새깃모양의 관식(冠飾)과 연관성을 가지는 것이다.
옥저에서는 세골장이 있었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의하면, 길이 10여 장의 큰 목관을 만들어 목관 위에 사람의 머리가 들어갈 정도의 입구[戶]를 열어 두고, 씨족원 중에 사람이 죽으면 모두 일시 가매장을 하였다가 피육(皮肉)이 탈진한 뒤 뼈를 수습하여 곽 속에 다시 순서대로 넣으며, 토기에 쌀을 넣어 목관의 입부분에 매달아둔다고 한다.
신라시대의 초기에는 순장의 풍속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의하면 503년(지증왕 3) 순장금지령을 내렸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삼국통일 이전의 장례에 대한 몇 가지 기록을 통하여 보면, 이때의 상례는 무속적 의례로 행하여졌음을 추론할 수 있다. 순장과 세골장의 관념이 무속의 내세관과 맥락을 같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순장과 세골장은 망령이 왕생(往生)할 수 있다는 무속적 관념을 바탕으로 하여 행하여진 것이기 때문이다. 삼국시대인 4, 5세기 사이에 중국에서 불교와 유교가 들어오고, 7세기에는 도교가 들어오면서 사상과 신앙에 변화가 일어나고, 더불어 상례의 관행도 바뀌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통일 전후 신라의 매장법과 화장법은 이러한 영향을 잘 반영해준다. 화장은 불교적 다비(茶毘)에서 영향받은 것인데, 문무왕의 유조(遺詔)에 의하여 그를 화장하고 유골을 동해안의 대왕암에 흩은 것으로도 입증된다.
제34대 효성왕, 제37대 선덕왕, 제38대 원성왕 등도 유명(遺命)에 의하여 화장하였다는 기록이 『삼국사기』에 있다. 화장하여 유골을 매장하거나 흩어버린 이와 같은 이중장제는 신라지역에서 많이 발견되는 골호(骨壺)를 보아서도 능히 알 수 있다. 삼국을 통일한 신라는 숭불·숭유 정책을 병용하였기 때문에 장제에도 불교식 다비와 유교식 매장을 병용하였다.
그러다가 신라 말엽에 참위설(讖緯說)과 풍수지리설(風水地理說)이 들어오게 되면서부터 매장의 풍속이 성하게 되었다. 고려는 불교를 국가의 지도이념으로 하고, 한편으로는 민심을 수렴하기 위하여 도참설(圖讖說)을 숭상하고 도선(道詵)의 지리참위설을 정치에 이용하였기 때문에 상례와 장례가 다분히 이들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 한편, 풍수지리설과 묘지의 관계는 밀접하였다.
묘상(墓相)을 본 사실은 『시경』에도 보이며 가상(家相)과 함께 일찍부터 중국에서는 묘상도 보아왔다. 고려말에는 풍수설에 의하여 천도설(遷都說)까지 나올 정도로 풍수지리설은 일반대중 사이에 큰 매력이 되었다.
풍수는 장풍득수(藏風得水)에서 유래한 말이다. 장풍득수하여 지기(地氣)가 집중한 지상(地相)이야말로 이상적인 땅에서 묘지의 지기를 얻음으로써 사자의 자손은 번영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고려시대는 불교가 국교의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후장(厚葬)의 풍속을 억제하였다고는 하지만, 976년(경종 1)에 법제화된 분묘제도를 보면, 그 장대함은 놀랄 정도이다. 한편으로는 숭불정책이 강화되어 화장의 풍습도 병행되었다.
그러나 충렬왕 때 주자학(朱子學)이 들어오고 유자(儒者)들이 정치적 실권을 잡으면서 공양왕에 이르러서는 불교의 상례인 다비법을 금지하였다. 이때부터 사대부계급은 불교식을 폐하고 주희의 『가례』에 의한 상례를 따르도록 하였다. 그래도 민간에서는 불교 및 무속적인 상례가 관행되었을 것이다.
유교식 상례가 우리 나라에 유입된 구체적인 시기는 고려 충렬왕시대에 안향(安珦)에 의하여 『주자전서(朱子全書)』가 들어오고, 『가례』도 함께 연구되면서부터이다. 그러나 이때는 일부 지배층에 의하여 시행되고 논의되었을 뿐 확산되지는 않다가 조선시대에 접어들면서 유교를 사회의 지도이념으로 확립하기 위한 목적과 더불어, 상례를 포함한 유교식 관혼상제의 사례가 지배층에 의하여 시행되기에 이르렀다.
이때 피지배층의 관혼상제도 유교식으로 행할 것을 규정하였지만, 그 활발한 시행은 조선 후기에 와서였다. 그 사이는 시행에 대한 지배층 내부의 논쟁을 통하여 이론적인 근거를 마련하는 시기였다. 그 결과 등장한 것이 주희의 『가례』에 대한 학문적 연구경향으로서 유학자들간에 예학이 논의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학문적 관심은 1659년 효종이 죽었을 때 인조의 계비인 자의대비(慈懿大妃)의 복제를 1년으로 할 것인가, 3년으로 할 것인가에 대한 논쟁인 기해예송(己亥禮訟)에까지 이르렀다.
이러한 예송을 통하여 예학은 활발한 진전을 이루었지만, 이론적인 근거에 대해서는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한 채, 결과적으로 주자의 『가례』의 내용을 어기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각각 다르게 행하게 되었다.
여기에서 가가례(家家禮)라는 말이 나오게 되었다. 이와 같은 사정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유교적 상례를 시행하지는 않았다.
그 이유로는 예로부터 시행해 오던 비유교적 상례의 보수성과 유교적 상례의 지나친 형식성과 복잡성을 들 수 있겠다. 그 결과 유교적 상례를 중심으로 하면서도 그것을 실용적으로 단순화하는 방향에서 상례가 행하여져 왔다.
따라서, 현행의 유교식 상례에서도 비유교적인 요소가 습합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양상으로 상례가 관행되어 오다가 기독교가 수용되자 일부에서는 기독교식 상례가 행하여지고, 한편으로는 1912년에 발표된 「화장취체규칙 火葬取締規則」에 의하여 화장장과 공동묘지가 대도시에서 활발히 이용되었으며, 사회운동단체의 합동장이나 사회장이 거행되기도 하였다.
그 밖에도 1934년에 발표한 의례준칙과 1961년의 의례준칙, 1969년의 가정의례준칙의 제정 등은 상례의 절차와 상복제(喪服制)를 대폭 간소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오늘날 도시사회에서는 도시적 생활양식에 대한 적응결과로 장의사가 상례를 담당하게 되고, 공동묘지나 화장장의 이용률이 높아지면서 유교식 상례가 간소화되었다.
영역닫기영역열기상례의 절차
  1. 1. 유교식 상례
    전체의 절차를 보면 『예서』에는 보통 초종(初終)·습(襲)·소렴(小殮)·대렴(大殮)·성복(成服)·조상(弔喪)·문상(聞喪)·치장(治葬)·천구(遷柩)·발인(發靷)·급묘(及墓)·반곡(反哭)·우제(虞祭)·졸곡(卒哭)·부제(祔祭)·소상(小祥)·대상(大祥)·담제(禫祭)·길제(吉祭)의 19절차로 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의 관행에서는 염습이라 하여 『예서』의 습·소렴·대렴을 흡수하고, 발인이 천구를, 우제가 반곡을 흡수하였으며, 부제·담제·길제가 사라져 대체로 11개 절차로 행하여진다. 『예서』의 절차를 기준으로 하되 실제의 관행을 곁들여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① 초종:임종에 대한 준비, 초혼, 시체 거두기[收屍], 상례 동안의 소임분담, 관 준비 등에 관한 내용이 있다. 운명이 가까우면 정침(正寢)에 모시고, 솜을 코 위에 놓아 호흡여부를 확인한다. 숨을 거두면 곡을 하고, 이어서 죽은 사람의 웃옷을 가지고 지붕에 올라가 북쪽을 향하여 웃옷을 휘두르면서 죽은 사람의 이름을 세 번 불러 초혼(招魂)을 한다.
    그런 뒤 웃옷은 바구니에 담아 내려서 영좌(靈座)에 둔다. 다음에는 장막을 쳐서 시신을 가리고, 시신을 시상(屍床)에 올려 머리를 남쪽으로 향하게 한다. 입은 벌려 윷가락 같은 것을 끼워놓고, 발은 곧게 펴 나무틀[燕几]에 매어놓는다. 상주(喪主)는 아들이 되며, 주부는 죽은 사람의 아내 혹은 상주의 아내가 된다. 그리고 가족들은 옷을 바꾸어 입고 음식을 폐한다.
    호상(護喪)이 관을 만들도록 하고, 사당에 고하며, 부고(訃告)를 하도록 한다. 실제의 관행에 의하면, 그 절차는 다음과 같다. 임종은 대부분 본인이 사용하던 방에서 하고, 이어 속광과 수시(收屍:시체의 머리와 팔·다리를 바로 잡음)를 한다.
    그 다음 사자상을 차리고, 그 앞에서 초혼을 한다. 사자상에는 지방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밥·동전·짚신을 얹는다. 그리고 마을이나 친척 가운데서 호상을 삼아 장례준비를 하고 부고를 낸다.
    시신은 시상판 위에 얹어 움직이지 않도록 묶고, 창호지로 둘러 덮어, 그 앞에 병풍을 치고 향상(香床)을 차린다. 모든 상제들은 시신을 지키고 서서 조객을 받는다. 밤이 되면 마당에 화톳불을 놓아 밤샘을 하고, 여자들은 수의와 상복을 준비한다.
    ② 습:시체를 목욕시키고 의복을 갈아입히는 절차이다. 『예서』에 의하면, 먼저 습의(襲衣)를 준비하고 시신을 목욕시킨다. 손톱과 발톱을 깎아서 빗질하여 나온 머리털과 함께 각각 다섯 개의 조발낭(爪髮囊)에 담는다.
    다음에는 옷을 입히는데 아래옷과 버선의 순서로 입힌다. 그리고는 곡과 반함(飯含)을 한다. 반함의 내용을 보면, 상주가 왼소매를 벗고 구슬을 가지고 들어가면 시자가 쌀을 가지고 들어간다.
    쌀을 시신의 입에 세 번 떠넣고 돈과 구슬을 각각 세 개씩 넣는다. 그리고 명목(幎目)으로 눈을 가리고 충이(充耳)로 귀를 막으며 허리띠를 맨 다음 악수(幄手)로 손을 싸서 홑이불로 덮는다.
    이어서 영좌를 설치하고 영좌의 오른쪽에는 명정(銘旌)을 세운다. 실제의 관행은 뒤에 설명할 소렴 및 대렴과 함께 염습을 한다. 시신 위에 홑이불을 덮고 상체와 하체의 차례로 목욕을 시킨다.
    머리털과 함께 손·발톱을 깎아 조발낭에 담아둔다. 이어서 시신에 수의를 입힌 다음 반함을 한다. 일반적으로 쌀을 버드나무숟가락으로 떠서 세 번 입에 넣고 동전 세 개를 넣기도 한다. 반함에 이어서 소렴을 한다.
    소렴의 절차는 베로 된 요에 시신을 눕히고 빈 곳에는 창호지나 헌옷가지로 채운 뒤 종이 등으로 시신의 모양을 네모지게 만든다.
    다음에 베 조각 일곱 개로 시신 전체를 양옆으로 싸면서 매듭을 짓지 않은 채로 스물한 번을 묶는다. 이어서 대렴 즉, 입관(入棺)을 한다. 먼저 관 안에 창호지를 깔고 칠성판(七星板)과 베요를 깐다. 그 다음에 시신을 넣고 빈 곳은 흰옷가지 등으로 채운다. 이때 조발낭도 넣는다. 그 위에 베이불로 덮고 창호지로 싼 다음 관뚜껑을 덮는다. 관은 광목으로 싸서 밧줄로 묶는다.
    ③ 소렴:소렴은 습을 한 이튿날에 한다. 소렴에 쓸 옷과 이불을 준비한 다음 소렴전(小殮奠)을 차린다. 다음에 옷으로 머리를 받치고 양어깨를 채운 다음, 다리와 무릎 사이에도 옷을 끼운다. 남은 옷으로 시신을 덮어 모양을 네모지게 한 다음 이불을 덮는다. 이것이 끝나면 상제들은 곡을 한다.
    그리고 남자상제들은 삼끈으로 머리를 묶고 웃옷의 한 쪽 어깨를 드러내며, 여자상제들은 북머리쪽을 향하여 대나무비녀를 꽂는다. 이어서 소렴전을 치우고 다시 전(奠)을 올린다.
    ④ 대렴:소렴 다음날 대렴을 한다. 대렴에 사용할 옷과 이불을 준비한다. 대렴전을 차리고 관을 들여온다. 관 안에 재를 뿌리고 칠성판을 깔고 그 위에 다시 요를 깐다. 그 다음 시신을 넣고 헌 옷가지 등으로 빈 곳을 채워서 시신이 움직이지 않도록 한다. 이때 조발낭도 넣는다. 이어서 관뚜껑을 덮고 머리 없는 못을 박은 다음 천으로 싸서 묶는다.
    ⑤ 성복:『예서』에 의하면, 성복은 대렴 다음날 한다. 성복이란 상제들이 상복을 입는 절차를 말한다. 성복은 원칙적으로 오복제(五服制)에 따라 참최(斬衰)·자최(齊衰)·대공(大功)·소공(小功)·시마(緦麻)가 있으며, 또 그 관계를 맺게 된 내용과 근거에 따라 정복(正服)·가복(加服)·의복(義服)·강복(降服)이 있다. 그리고 친등관계에 따라 3년·1년·9개월·5개월·3개월의 상복입는 기간을 정하여 두었다.
    또한, 자최에는 지팡이가 있는가 없는가에 따라 장기(杖期)와 부장기(不杖期)가 있다. 상복에는 관·효건(孝巾)·최의(衰衣)·최상(衰裳)·의상(衣裳)·수질(首秷)·요질(腰絰)·교대(絞帶)·상장(喪杖)·신발 등이 있으나, 실제로는 일정한 규칙 없이 각기 형편에 따라 성복을 행한다. 보통, 같은 고조의 후손인 8촌까지의 범위에서 상복을 입는다.
    물론, 사자와의 관계에 따라 상복에 차이가 있다. 이 제도를 오복제라 한다. 성복을 하고 나면 성복제(成服祭)라 하여 맏상주가 제주가 되어 의례를 올린다.
    ⑥ 조상:손님이 상인(喪人)을 만나 조문하는 것을 말한다. 『예서』에 의하면, 성복 전에는 손님이 와도 빈소 밖에서 입곡(立哭)하고, 성복 후에야 비로소 상인과 정식으로 조문을 한다.
    조문의 방법은 상제가 곡을 하면 손님은 영좌 앞에 나가서 곡을 하고 재배한 뒤, 주인 앞으로 와 상제가 절을 하면 손님도 답례한다. 그 뒤 인사말을 건네고 손님이 일어나면 상제도 일어서서 절을 하고, 손님이 이에 답례한다.
    ⑦ 문상:상제가 먼 곳에 있다가 상사를 들었을 때 행하는 절차를 말한다. 부모의 상이면 우선 곡을 하고 옷을 바꾸어입고 길을 떠난다. 도중에서 슬픈 마음이 나면 곡을 하고, 부모가 계신 곳이 보이면 다시 곡을 한다. 집에 들어서서는 영구 앞에서 재배하고, 상복을 갈아입는다. 이어서 다시 곡을 한다.
    ⑧ 치장:장지와 장일을 정하고, 장지에 가서 광중을 파고, 신주(神主) 만드는 절차를 말한다. 『예서』에 의하면 석달 만에 장사지내는데, 그 전에 장지와 장일을 택한다. 이때 땅의 좋고 나쁨과 날짜의 길흉을 염두에 둔다. 택일한 다음 상주가 아침에 곡을 하고 묘자리에 가서 토지신에게 고한다. 상주는 돌아와 영좌 앞에서 곡하고 재배하며, 일꾼들은 광중을 판다.
    그 다음 지석(誌石)과 신주 등을 만든다. 실제의 관행에서는 상을 당하면 장지와 택일을 하고, 장일 당일에 광중을 판다.
    ⑨ 천구:영구를 사당에 옮겨 고하고, 다시 영구를 안채 마루에 옮기는 것을 말한다. 발인 전날 아침에 복인이 모두 모여 조전(朝奠)을 올리고, 영구를 사당에 옮긴다. 사당에 이르면 중문 안에 놓고 영좌를 차리고 곡을 한다.
    다음날 아침 영구를 마루로 옮기고 대곡(代哭)을 한다. 해가 지면 조전(祖奠)을 올린다. 실제의 관행에서는 천구의 절차는 거의 소멸되고, 발인 전날 저녁에 일포제(日晡祭)를 지낸다.
    ⑩ 발인:영구가 장지로 떠나는 절차를 말한다. 아침에 상여를 꾸미고, 영구를 옮겨 싣는다. 그 다음 견전(遣奠)을 올린다. 견전은 영구가 떠날 때 지내는 제사를 말한다. 이어 방상(方相) 2명을 앞세워 상여가 출발한다.
    친한 손님은 길가에서 상여를 멈추게 하고 전(奠)을 드린다. 실제의 관행에서는 견전 대신에 발인제를 지낸다. 그리고 상여가 출발하여 친구집 앞을 지날 때면 친구가 상여를 멈추게 하고 노제(路祭)를 지내기도 한다.
    ⑪ 급묘:상여가 장지에 도착하여 매장하기까지의 절차를 말한다. 상여가 장지에 도착하면 영구를 광중의 남쪽에 모시고 상주들은 광중의 양옆에 서서 곡을 한다. 다음에 상주들은 곡을 멈추고 영구를 광중에 내린다.
    운불삽(雲黻翣)과 현훈(玄纁)을 광중에 넣은 뒤 상주는 재배하고 복인은 곡을 한다.
    그리고 광중 위에 횡판(橫板)을 펴서 영구를 가리고 석회와 흙으로 광중을 채운다. 묘 옆에서 토지신에게 고하고 지석을 묻는다. 흙이 다 채워지면 영좌에서 신주에 글을 쓴다. 축관이 신주를 영좌에 두고, 혼백은 뒤에 둔다. 그리고 상제들이 영좌 앞에서 재배하고 곡을 한다. 다음에 축관이 신주를 영여(靈轝)에 모시고 혼백도 그 뒤에 모신다.
    ⑫ 반곡:본가(本家)로 반혼(返魂)하는 절차이다. 반우(返虞)라고도 한다. 장지에서 신주와 혼백을 영여에 모시고 축관이 분향한 다음에 반곡을 한다. 상주일행은 영여를 모시고 집에 도착할 때까지 곡을 한다. 집에 도착하면 축관이 영좌에 신주와 혼백을 모신다.
    이어서 상제들이 곡을 하면 손님들이 다시 조문한다. 실제의 관행에서는 혼백을 묘 앞에 묻기도 하며, 모시고 반곡하기도 한다.
    반혼해서 돌아오다가 집 근처에서 곡을 한다. 집에 도착하면 상청을 마련한다.
    ⑬ 우제:사자의 시체를 매장하였으므로 그의 혼이 방황할 것을 우려하여 위안하는 의식이다. 우제는 초우제와 재우제·삼우제의 세 번이 있다.
    초우제는 장일 낮에 지내고, 재우제는 유일(柔日) 즉, 일진이 을정기신계(乙丁己辛癸)에 해당하는 날 지낸다. 삼우제는 강일(剛日) 즉, 일진이 갑병무경임(甲丙戊庚壬)에 해당하는 날 지낸다. 실제의 관행에서도 이와 비슷하지만 묘소를 다녀와서 지내기도 한다.
    ⑭ 졸곡:무시곡(無時哭)을 마친다는 뜻이다. 삼우를 지낸 뒤 강일에 행하는데, 이때 제를 올린다. 그리고 이때부터 조석에만 곡을 한다. 실제의 관행에서는 삼우제 이튿날이나 100일쯤 되는 때 지낸다.
    ⑮ 부제:신주를 그 조상의 신주 곁에 모실 때 지내는 제사이다. 부제는 졸곡 다음날 지낸다. 음식을 준비하고, 상제들은 목욕하고 머리에 빗질을 한다. 당일에 동이 트면 음식을 진설하고 영좌 앞에서 곡을 한다.
    이어서 사당에 가서 조상의 신주를 모셔다가 영좌에 놓고 제를 올린다. 다음에는 새 신주와 더불어 다시 사당에 모신다. 실제로는 사당이 있는 집에서는 지내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지내지 않는다.
    소상:초상으로부터 13개월이 되는 날 즉, 1주기에 지내는 제사를 말한다. 상제들이 하루 전날 목욕재계를 하고 연복(練服)을 준비한다. 연복이란 상복을 세탁하여 다듬은 것을 말한다. 준비가 되면 신주를 영좌에 모시고, 상제들이 곡을 한다.
    이어서 연복을 갈아입고 다시 곡을 하고 제를 올린다. 이때부터 조석곡을 폐지하고 삭망에만 곡을 한다.
    실제로는 첫 기일에 소상을 지내되, 그 전날 저녁 전제(奠祭)를 올리면서 곡을 한다. 그리고 이튿날 새벽에 소상을 지내며, 지방에 따라서는 이때 혼백을 태우고 탈상을 한다.
    대상:초상으로부터 25개월째 되는 날 즉, 2주기에 지내는 제사를 말한다. 절차는 소상과 같고, 다만 축관이 신주를 사당에 모시며 영좌를 철폐하고 지팡이는 깨끗한 곳에 버린다. 실제로는 소상 때 탈상을 하지 않았으면 이때 한다.
    담제:초상으로부터 27개월째 되는 달의 정일(丁日) 또는 해일(亥日)에 사당에서 지내는 제사이다. 이때는 담복을 준비하는데, 화려한 빛깔을 제외한 그 밖의 빛깔의 옷을 말한다. 그 뒤부터 음주와 육식이 허용된다.
    길제:담제의 다음달에 정일이나 해일을 택하여 지내는 제사이다. 택일이 되면 3일 전부터 재계하고, 전날 사당에 고한다. 길복이라 하여 평상시의 제복을 준비하여 입는다. 길제가 지나면 부인과 함께 동침할 수 있다.
    지금까지 보았듯이 『예서』에 나타난 상례의 절차와 실제의 관행은 차이가 있다. 그러나 그 차이는 『예서』의 절차를 이상으로 하되, 실제로는 이를 간소화하여 행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간소화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상기(喪期)의 단축과 주택구조의 변화, 경제적인 부담, 의례의 복잡성 등을 들 수 있다.
  1. 2. 불교식 상례
    불교식 장례법은 곧 다비장례법(茶毘葬禮法)을 말한다. 이것은 시체를 화장하는 장례법이다. 이 화장법은 원래 아리안족의 장법이었던 것을 불교에서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우리 나라에서는 불교가 전래된 삼국시대부터 행하여진 것으로 보인다. 불교를 숭상한 고려시대는 대단히 성행하다가 조선시대에 와서는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억제한 정책에 의하여, 유교식 상례가 숭상되고 불교식 장례법인 화장법은 쇠퇴하였다.
    불교식 장례법은 출가한 승려가 죽었을 때와 재가신도(在家信徒)가 죽었을 때는 관행상 약간의 차이가 있다. 승려는 다비법의 절차를 따르나 신도의 경우는 유교식 상례와 절충하여 행하기도 한다.
    승려가 죽으면 주지에게 알리고, 주지는 종을 세 번 쳐 대중에게 알린다. 누워서 죽었을 때는 오른쪽 옆구리를 땅에 붙여 모로 눕히고, 머리는 북쪽으로 얼굴은 남쪽을 향하게 한다.
    만약, 앉아서 죽었다면 얼굴을 남쪽으로 향하게 하여 안치한다. 그 뒤에 휘장을 설치하고 그 앞에 명정과 사진·위패를 둔다. 위패는 죽은 사람의 지위에 따라 내용을 달리한다. 장례는 형편에 따라 3일장·5일장·7일장을 하지만, 고승일 때는 9일장을 치르기도 한다.
    장일 전에는 다비법사가 영구 앞에서 천수경(千手經)·무상계(無常戒)·법성계(法性戒)·금강경(金剛經)·아미타경(阿彌陀經)·미륵상생경(彌勒上生經)·장엄염불(莊嚴念佛) 등을 독송하며 망인의 왕생을 축원한다.
    다비법의 절차는 삭발(削髮)·목욕·세수·세족(洗足)·착군(着裙)·착의(着衣)·착관(着冠)·정좌와(正坐臥)·입감(入龕)·기감(起龕)·거화(擧火)·하화(下火)·봉송(奉送)·창의(唱衣)·기골(起骨)·쇄골(碎骨)·산골(散骨)의 순이다. 삭발은 입적한 사람의 머리를 깎는 의식으로서, 나무상주시방불(南無常住十方佛)과 나무상주시방법(南無常住十方法)·나무상주시방승(南無常住十方僧)을 세 번 독송한 뒤에 행한다. 삭발할 때도 축원문을 독송한다.
    다음에는 목욕을 시킨다. 목욕을 시킬 때도 축원문을 독송한다. 목욕에 이어서 손과 발을 씻기는 세수·세족을 행하고, 이어서 여러 가지 의관을 입히는 착군·착의·착관을 행한다. 이때도 축원문의 독송이 있다. 정좌와는 시신을 바르게 앉게 하는 절차인데, 이때는 안좌게(安坐偈)를 독송한다.
    이어서 입관을 하여 영구를 감실에 안치하는 입감절차가 따른다. 이때는 제례를 행한다. 입감이 지나면 상제들은 성복(成服)을 한다. 장일이 되면 감실에 안치시켰던 영구를 다비장으로 옮기는 기감절차가 따른다.
    다비장에 도착할 때까지 법사가 경을 독송하여 왕생을 축원하며 다비장에서 100보(步) 거리에 이르면 미타단(彌陀壇)과 산신단(山神壇)을 배설하고 의례를 행한다.
    그 뒤 법사와 대중이 다비장에 이르러 거화한다. 거화에 이어 하화·봉송한다. 이렇게 하여 시신을 화장하게 되는데 시신을 태우면서 창의한다. 창의란 입적자가 쓰던 물건을 경매하거나 대중에게 나누어주는 것을 말한다.
    시신이 불에 탄 뒤 열기가 완전히 식으면 뼈를 일으키고 거두어 부순다. 이러한 절차를 기골(起骨)·쇄골(碎骨)이라고 한다.
    잘게 부순 뼛가루는 산야나 강물에 뿌리니, 이것을 산골(散骨)이라 한다. 이렇게 하여 장례를 마친다.
  1. 3. 천주교식 상례
    천주교에서는 죽음을 ‘눈물의 골짜기’라고 부르는 고통의 사바에서 즐거운 천국에 계시는 하느님에게 인도되는 것으로 믿는다. 그래서 죽음은 슬퍼할 일이 아니라 기뻐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죽음의 문을 통과하여 내세에 들어간 영혼은 먼저 하느님의 심판을 받고 그 사람이 행한 이 세상에서의 선악에 의하여 각자 다른 운명이 주어진다고 믿는다.
    천주교 교회에서는 죽은 자를 위한 장엄한 예식 중에도 특별한 기도나 성가를 바치고, 사망일·장례식 당일·삼우날이나 7일째·30일째, 그리고 1주기가 되는 날 특별한 미사를 행한다. 그리고 어른의 상례와 유아의 상례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는데, 유아에 대한 고유한 미사가 있다.
    어른의 사망 때에 행하는 천주교상례의 주요 절차를 보면, 먼저 성당 입구에 영구가 도착하면 사제는 그것을 출영하고, 성수(聖水)를 뿌리면서 「시편」 제129장을 읊고 기도한다.
    이어 참회의 시편 가운데 한 가지를 읊으면서 부활촛불과 십자가를 선두로 영구를 성당 중앙에 운구하는데, 시신의 다리 부분이 제단을 향하게 안치한다. 영구 주위에는 신앙의 빛을 상징하는 촛불을 밝힌다.
    미사의 마지막 부분에는 고별식이 있다. 시체를 발인하기 전에(또는 매장하기 전에) 신자들이 마지막으로 가는 분에게 인사하는 예식이다.
    고별식은 “이 자리에서 마지막으로 표시하는 우리의 하직인사는 사랑을 나타내고 고통을 덜어주며, 우리의 희망을 북돋우는 것인데, 모든 것을 이기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죽음 자체를 완전히 이기실 그때에 우리는 죽은이를 우정의 기쁨으로 다시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라는 사제자의 권고로 시작되며, 이어서 잠시 침묵의 기도가 있다.
    그리고 성수를 뿌리고 향을 드리고 송별가를 부른다. 이렇게 하여 천주교의 상례절차는 끝난다. 이어서 장지로 출발하여 매장 또는 화장을 한다.
영역닫기영역열기의의
상례는 통과의례의 하나이다. 즉, 이 세상에서의 삶을 종식하고 또다른 세계로 이행하는 데 따르는 의례가 상례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예로부터 관혼상제라고 하여 관례·혼례·상례·제례를 중요한 의례들로 삼아 왔다.
그 가운데서도 사자의례(死者儀禮)인 상례와 제례를 조상숭배와 관련하여 더욱 중요시하여왔다. 그런데 상례는 민족이나 종교에 따라 의례의 내용과 절차, 그 저변에 깔려 있는 관념을 달리하고 있다.
그것은 세계관과 내세관의 차이에 기인한다. 그러나 어떠한 민족이나 종교도 인간의 죽음을 생물학적인 삶의 종료로만 생각하지 않고, 또다른 세계에서 새로운 삶을 위한 시작으로 보는 관념과 그러한 관념이 표출되는 의례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상례는 그것의 내용과 절차를 통하여 여러 가지 또다른 사실을 알게 한다. 첫째, 그 민족이나 종교가 가지고 있는 내세관을 이해할 수 있다. 모든 상례는 그러한 관념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상례를 통하여 일상생활의 질서와 사회생활의 질서를 이해할 수 있다. 의례는 정형화된 금기와 규칙을 가지고 있으며, 이것을 통하여 일상생활과 사회생활의 질서를 유지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셋째, 상례를 통하여 사회구조의 일면을 이해할 수 있다. 즉, 사자와의 관계와 의례의 전문성에 따라서 구실이 부여되고, 그것을 통하여 그 사회의 인간관계를 파악할 수 있다. 결국 우리 나라의 전통적인 세계관과 사회의식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상례의 보다 깊은 연구가 절실히 요청된다고 할 수 있겠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 삼국사기(三國史記)

  • 사례편람(四禮便覽)

  • 삼국지(三國志)

  • 가례(家禮)

  • 한국전통사회의 관혼상제  (장철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4)

  • 『한국민속대관 1-상례-』(김춘동,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1980)

  • 『한국문화사대계』 Ⅶ-한국예속사-(김춘동,고려대학교,민족문화연구소,1979)

  • 한국민속학개설  (이두현 외, 민중서관, 1975)

  • 관혼상제  (이민수, 을유문화사, 1975)

  • 「한국의 상례」(김택규,『영대문화』 16,영남대학교 총학생회,1983)

  • 「불교식장례법」(서수생,『영대문화』 16,영남대학교 총학생회,1983)

  • 「천주교식 장례법」(신상조,『영대문화』 16,영남대학교 총학생회,1983)

  • 「전통적 관혼상제의 연구」(장철수,『한국의 사회와 문화』 2,한국정신문화연구원,1980)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5년)
김택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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