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례 ()

조선시대사
제도
조선시대, 국가 의례를 관장하던 통례원(通禮院) 소속의 종3품 관직.
제도/관직
설치 시기
1466년(세조 12)
폐지 시기
1895년(고종 32)
소속
통례원
내용 요약

상례(相禮)는 조선시대에 국가 의례를 관장하던 통례원(通禮院) 소속의 종3품 관직이다. 1466년(세조 12)에 처음 설치되었으며, 좌 · 우통례 아래에서 국가 의례를 담당하였다. 각종 국가 의례 시 주로 왕세자를 인도하는 역할을 담당하였고, 국장도감이 설치되면 대치사관(代致詞官)으로 활동하였다. 1895년(고종 32)에 통례원이 장례원(掌禮院)으로 개칭될 때 장례(掌禮)로 바뀌었다.

정의
조선시대, 국가 의례를 관장하던 통례원(通禮院) 소속의 종3품 관직.
설치 목적

1466년(세조 12)에 관제를 다시 정할 때 당시까지 국가 의례를 담당하던 통례문(通禮門)을 통례원(通禮院)으로 개칭하면서, 판통례문사(判通禮門事)를 좌통례(左通禮), 겸판통례문사를 우통례(右通禮), 지통례문사(知通禮門事)를 상례(相禮), 부지통례문사(副知通禮門事)를 봉례(奉禮)라 하였다.

임무와 직능

각종 국가 행사에서 예의(禮儀)를 맡는 통례원의 종3품 관직으로, 통례원에서의 차서는 정3품 당하관인 좌통례 · 우통례와 정4품 관직인 봉례의 사이에 위치한다. 3품의 주1으로 인식되었고, 음서의 혜택이 미쳤던 중요 관직이었다.

각종 국가 의례 시 봉례와 함께 주2를 인도하는 역할을 담당하였고, 국장도감이 설치되면 주3으로 활동하였다. 또한 왕이 행차할 때 통례가 참석하지 못하면 통례의 역할을 대신해서 수행하였으며, 각 사의 낭관급 관원들이 왕을 정기적으로 인견하는 주4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변천사항

조선 후기에는 다른 관원에게 가상례(假相禮) 혹은 섭상례(攝相禮)를 겸직으로 임명하기도 하였는데, 이들은 주로 왕의 인도를 주관하였다. 1895년(고종 32)에 통례원이 장례원으로 개칭될 때 상례는 장례로 바뀌었고, 1897년에는 다시 장례를 고쳐 상례로 하였다.

참고문헌

원전

『경국대전(經國大典)』
『고종실록(高宗實錄)』
『대전회통(大典會通)』
『성종실록(成宗實錄)』
『세조실록(世祖實錄)』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영조실록(英祖實錄)』
『정조실록(正祖實錄)』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인터넷 자료

조선왕조실록사전(http://waks.aks.ac.kr/site/encysillok)
주석
주1

조선 시대에, 호조에 속하여 대궐에서 쓰는 여러 가지 식품, 직조(織造)와 내진연(內進宴)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관아. 태종 원년(1401)에 내부시를 고친 것으로, 고종 19년(1882)에 없앴다.    우리말샘

주2

제후국에서, 임금의 자리를 이을 임금의 아들.    우리말샘

주3

설날 아침이나 동지 때의 조하(朝賀)나 진찬(進饌) 따위의 행사가 있을 때에, 왕세자나 세자빈을 대신하여 임금에게 치사(致詞)를 읽어 올리던 집사관.    우리말샘

주4

조선 시대에, 백관(百官)이 차례로 임금에게 정치에 관한 의견을 아뢰던 일.    우리말샘

집필자
임선빈((前)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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