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관직(官職)은 산계를 바탕으로 내려졌다. 문신은 문산계, 무신은 무산계(武散階), 기술직 관리는 잡직계(雜職階), 지방의 실력자나 향리 등은 토관계(土官階)를 바탕으로 관직이 내려졌으며, 종친과 의빈은 문산계 안에 각각 종친계와 의빈계(儀賓階)를 별도로 제정하여 운영하였다.
종친계는 1443년(세종 25) 12월의 교지에 의해 문산계에서 독립하여 처음 실시되었다. 이전의 종친직은 하나의 품계를 두었는는데, 1443년부터 문 · 무관(文武官)의 예에 따라 2개의 품계를 두었다.
정1품에는 현록대부(縣祿大夫) · 흥록대부(興祿大夫)를, 종1품은 소덕대부(昭德大夫) · 가덕대부(嘉德大夫)를 두었다.
정2품에는 숭헌대부(崇憲大夫) · 승헌대부(承憲大夫)를, 종2품은 중의대부(中義大夫) · 정의대부(正義大夫)를 두었다.
정3품에는 명선대부(明善大夫) · 창선대부(彰善大夫)를, 종3품은 보신대부(保信大夫) · 자신대부(資信大夫)를 두었다.
정4품에는 선휘대부(宣徽大夫) · 광휘대부(廣徽大夫)를, 종4품은 봉성대부(奉成大夫) · 광성대부(光成大夫)를 두었다.
정5품에는 통직랑(通直郞) · 병직랑(秉直郞)을, 종5품은 근절랑(謹節郞) · 신절랑(愼節郞)을 두었다. 정6품에는 집순랑(執順郞) · 종순랑(從順郞)을 두었다.
이와 같은 내용은 변동 없이 그대로 『 경국대전』에 수록되었다. 그리하여 『경국대전』에 수록된 종친계는 무계(無階)인 대군(大君) · 왕자군(王子君) 아래 정1품부터 정6품까지 각각 쌍계를 두었으며, 종3품의 상계인 명선대부 이상은 당상관이었다.
가덕대부는 종친계 종1품 하계로, 대군(大君)을 계승할 적장자(嫡長子)에게 처음으로 수여되는 벼슬의 품계이이며, 관직은 종친부의 군이었다.
『경국대전』에 수록된 종친계 가운데 일부의 관계는 명칭이 변동되었으나, 가덕대부는 변동 없이 운영되었다.
종친계를 문산계와 구별하여 설치한 것은 종친들을 우대하려는 뜻도 있었으나, 종친이 정치에 참여하는 것을 제한하려는 의도도 내포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