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주청년총동맹(大韓民主靑年總同盟)
이리하여 그들은 김구(金九)·조소앙(趙素昻)·신익희(申翼熙)·엄항섭(嚴恒燮)·정인보(鄭寅普) 등 주로 민족진영 요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결성대회를 치르고, 명예회장 이승만·김구, 고문 신익희 외 6명, 참의(參議) 설의식(薛義植) 외 26명, 회장 유진산(柳珍山), 부회장 김창형(金昌炯)·김근찬(金根燦), 총무부장 유우석(柳愚錫), 사업부장 겸 지방부장 김후옥(金厚玉), 재정부장 박정래(朴貞來), 감찰부장 김두한, 정보부장 장우극(張愚極), 선전부장 박용직, 조직부장 조권(趙權), 교도부장 유약한(劉約翰), 중앙위원 김건(金鍵) 외 12명으로 간부진용을 갖추었다. 서울에 강력한 남녀조직을 구축한 이들은 조선청년전위대와 충돌이 잦았는데,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이 ‘시공관사건(市公館事件)’이었다. 이 사건은 1947년 4월 20일 좌익측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