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는 4세기경부터 각 방면 교통로상의 성(城)·곡(谷)을 단위로 지방통치조직을 정비하기 시작하여 점차 성을 중심으로 하는 일원적인 지방제도를 마련하였다.
『한원 翰苑』에 인용된 고려기(高麗記)에 따르면, 7세기 전반 각 성을 대성(大城)·제성(諸城)·소성(小城)·성(城) 등으로 편제하여 욕살(褥薩)·처려근지(處閭近支)·가라달·누초(婁肖) 등의 지방관을 파견하였다고 한다.
소성에 파견되었다는 가라달은 중국의 장사(長史)에 비견되는 존재로서 막료적·군관적 성격을 띤 특수한 지방관으로 추정되는데, 고위 지방관인 욕살·처려근지의 직할지를 관장하던 막료, 이들의 고위 막료로서 군사적인 소성을 관장하던 자, 변경지역의 현령급 지방관 등으로 보는 견해가 제기되었다.
이러한 견해에 따르면, 7세기 전반 고구려 지방통치조직은 대성·제성·성 등 3단계로 이해된다. 한편, 『한원』의 기재 순서를 중시하여 처려근지와 누초 사이의 일반적인 지방관으로 이해하는 견해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