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는 4세기경부터 각 방면 교통로상의 성(城)·곡(谷)을 단위로 지방통치조직을 정비하기 시작하여 점차 성을 중심으로 하는 일원적인 지방제도를 마련하였다.
『한원(翰苑)』에 인용된 고려기(高麗記)에 따르면, 7세기 전반 각 성을 대성(大城)·제성(諸城)·소성(小城)·성(城) 등으로 편제하여 욕살(褥薩)·처려근지(處閭近支)·가라달(可邏達)·누초 등의 지방관을 파견하였고 한다. 각 성에 파견되었다는 누초는 중국의 현령(縣令)에 비견되는 존재로서 최하위 지방관으로 추정된다.
물론 누초가 파견된 성이 최말단 행정단위는 아니었다. 고구려 멸망시에 부여성(扶餘城)이 위치하였던 부여천 일대에만 40여 개 성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누초급 성 아래에도 말단 행정단위로서의 작은 성이 여러 개 존재하였다고 추정된다.
한편 소성에 파견되었다는 가라달이 일반적 지방관이 아니라 고위 지방관인 욕살·처려근지의 막료나 군관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누초는 욕살·처려근지·누초라는 3단계 지방통치조직의 최하위 지방관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