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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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사
제도
삼국시대 고구려의 지방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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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삼국시대 고구려의 지방관직.
내용

고구려는 4세기경부터 각 방면 교통로상의 성(城)·곡(谷)을 단위로 지방통치조직을 정비하기 시작하여 점차 성을 중심으로 하는 일원적인 지방제도를 마련하였다.

『한원(翰苑)』에 인용된 고려기(高麗記)에 따르면, 7세기 전반 각 성을 대성(大城)·제성(諸城)·소성(小城)·성(城) 등으로 편제하여 욕살(褥薩)·처려근지(處閭近支)·가라달(可邏達)·누초 등의 지방관을 파견하였고 한다. 각 성에 파견되었다는 누초는 중국의 현령(縣令)에 비견되는 존재로서 최하위 지방관으로 추정된다.

물론 누초가 파견된 성이 최말단 행정단위는 아니었다. 고구려 멸망시에 부여성(扶餘城)이 위치하였던 부여천 일대에만 40여 개 성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누초급 성 아래에도 말단 행정단위로서의 작은 성이 여러 개 존재하였다고 추정된다.

한편 소성에 파견되었다는 가라달이 일반적 지방관이 아니라 고위 지방관인 욕살·처려근지의 막료나 군관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누초는 욕살·처려근지·누초라는 3단계 지방통치조직의 최하위 지방관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고구려 율령에 관한 일시론」(노중국, 『동방학지』 21, 1979)
「고구려의 주,군, 현에 대하여」(이승혁, 『역사과학』, 1987·1)
「고구려 집권체제 성립과정의 연구」(임기환, 경희대학교대학원박사학위논문, 1995)
「5∼7세기 고구려의 지방제도」(노태돈, 『한국고대사논총』 8, 1996)
「고구려 중·후기 중앙집권적 지방통치체제의 전개과정」(김현숙, 『한국고대사연구』 11,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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