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삼국시대 고구려의 지방관직.
내용
북부여는 송화강 중류의 길림일대에 위치하였던 부여의 중심지이고, 고모루성은 광개토왕이 396년(영락 6) 백제로부터 획득한 58성 가운데 하나이다. ‘수사’는 4·5세기경 각 지방 중심지에 파견된 지방관이었던 것이다.
더욱이 모두루의 조부들이 북부여 지역의 성민(城民)·곡민(谷民)을 다스렸다고 하므로 수사는 여러 성·곡을 통괄하던 상위 지방관으로 추정된다. 또한, 고모루성수사가 모종의 군사활동을 한 것으로 보아 군사지휘관을 겸하였다고 여겨진다.
이로 보아 수사는 ‘수(守)’라는 명칭처럼 수(守)-재(宰)라는 2단계 지방통치조직의 상위 지방관 또는 군(郡) 태수(太守)와 동일한 실체로 파악된다. 이에 비해 수사를 여러 군급(郡級)·현급(縣級) 행정단위를 포괄하는 3단계 지방통치조직의 최상위 지방관으로 이해하는 견해도 있다.
참고문헌
- 「고구려 중·후기 중앙집권적 지방통치체제의 전개과정」(김현숙, 『한국고대사연구(韓國古代史硏究)』 11, 1997)
- 「5∼7세기 고구려(高句麗)의 지방제도(地方制度)」(노태돈, 『한국고대사논총(韓國古代史論叢)』 8, 1996)
- 「고구려(高句麗) 집권체제(集權體制) 성립과정(成立過程)의 연구(硏究)」(임기환, 경희대학교대학원박사학위논문, 1995)
- 「3세기 후반∼4세기 전반 고구려의 교통로와 지방통치조직」(여호규, 『한국사연구(韓國史硏究)』 91,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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