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악사(墨岳寺)’ 또는 ‘간장사(看藏寺)’라고도 하였다. 이승휴(李承休)가 두타산 아래에 용안당(容安堂)이라는 별장을 짓고 10여 년 동안 삼화사(三和寺)의 장경(藏經)을 빌려 공부하던 곳을 1304년(충렬왕 30)에 희사하여 간장암이라 하고, 가까운 밭을 희사하여 절의 재산으로 삼게 하였다.
1322년(충숙왕 9) 이승휴의 맏아들 임종(林宗)과 둘째 아들인 승려 담욱(曇昱)이 허물어진 암자를 중수했다. 조계종의 고승이었던 담욱은 그 제자들과 함께 중수하였으며, 관동진무사 신후천(辛侯蕆)이 이를 도왔다. 공사는 1323년 가을에 완공하였으며, 이 해에 최해(崔瀣)가 중영기(重營記)를 썼다. 이후 간장암의 역사는 전하지 않으나,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44 ‘불우(佛宇)’조에 간장암에 대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 중기까지는 사찰이 유지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후 폐사 연대는 전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