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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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향과 감귤속에 속하는 상록 소교목의 총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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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감귤은 운향과 감귤속에 속하는 상록 작은 키 나무의 총칭이다. 잎은 항상 푸르며 나무 모양은 둥글다. 감귤은 잎이 두껍고 타원형 또는 방추형이다. 감귤의 열매는 성숙기에 황색으로 변한다. 기온에 민감하며, 특히 겨울철의 온도조건이 부적당하면 다른 재배조건이 아무리 좋더라도 재배가 어렵다. 제주도의 귤은 옛날부터 신기한 과일로 여겨 동지 때가 되면 귤을 조공하였다. 오늘날 제주에 남아 있는 재래의 감귤은 10여 종에 불과하다. 생산량이 해마다 급증하여 1970년대에 들어와서 기호식품의 범주를 벗어나 대량 소비 단계로 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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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운향과 감귤속에 속하는 상록 소교목의 총칭.
내용

나지막한 키에 주간(主幹:원줄기)의 발달이 어렵고 가지가 잘 갈라지며, 나무 모양은 둥글다. 잎은 두껍고 타원형 또는 방추형이며, 잎자루에 미약하게 발달한 날개[翼]가 있다. 열매는 성숙기에 달하면서 황색으로 변하며, 산에 대한 당의 비율이 높아질 뿐 아니라 방향(芳香)이 강해진다.

감귤류의 원산지는 아시아의 열대지방에서 아열대 지방이라고 하나 거의 아시아 대륙의 동남부에 집중되어 있으며, 그 발생중심지는 인도와 중국의 접경지인 히말라야산맥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우리나라에서 감귤이 재배된 시기는 확실하지 않으나, 일본의 문헌인 『비후국사(肥後國史)』에 삼한에서 귤을 수입하였다는 기록과 『고사기(古事記)』 · 『일본서기』에 신라 초기에 지금의 제주도인 상세국(桑世國)으로부터 귤을 수입하였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삼국시대에 재배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려사』에는 1052년에 탐라에서 세공으로 바쳐오던 감귤의 양을 1백 포로 늘린다는 기록이 있고, 조선시대의 『태조실록』에는 1392년에 그때까지 상공(常貢)으로 받아오던 감귤을 별공(別貢)으로 한다는 기록이 있다. 『세종실록』에는 전라도 남해안지방까지 유자를 심어 시험재배하게 한 기록이 있고, 『대전회통』에는 상벌제도를 두어 귤나무 재배를 장려한 기록이 있다.

『동국여지승람』의 제주목조(濟州牧條)에 보면 감에는 황감(黃柑) · 유감(遊柑) 등이 있고, 귤(橘)에는 금귤(金橘) · 산귤(山橘) · 동정귤(洞庭橘) · 왜귤(倭橘) · 청귤(靑橘)이 있다고 되어 있다. 특히 청귤은 다른 감귤과 달라 봄이 되면 익는다고 기록되어 있다.

감귤은 기온에 민감하며, 특히 겨울철의 온도조건이 부적당하면 다른 재배조건이 아무리 좋더라도 재배가 어렵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재배하고 있는 온주밀감은 연평균기온이 15℃ 이상으로, 1 · 2월의 월평균기온이 5℃ 이상이고 최저기온이 -5℃ 이하로 내려가지 않는 곳이라야 안전하지만, 대체로 -6℃ 이하가 10년에 3회 이내인 곳을 적지로 보고 있다.

연간강우량은 1200∼1500㎜가 적합하고, 토질은 중점토나 사질토를 제외하고는 어느 토질이나 재배가 가능하다. 토양이 얕은 곳은 겨울철의 한해나 여름철 건조의 해를 받기 쉬우며, 각종의 장해를 일으키기 쉽기 때문에 토층이 깊은 토양으로 보수(保水) · 보비력(保肥力)이 적당한 것이 적합하다. 산성토양에는 강한 편이나 적정산은 pH 5∼6이다.

묘목의 번식은 4월 중 · 하순에 행하는 가지접이나 9월 중 · 하순경에 행하는 눈접으로 실시한다. 대목으로는 탱자나무 · 유자나무 · 하귤나무 등이 이용된다. 재배되고 있는 주요 품종으로는 조생온주계통의 흥진조생(興津早生) · 삼보조생(三保早生) · 궁천조생(宮川早生) 등과, 보통 온주계통의 미택온주(米澤溫州) · 남감20호 · 삼산온주(杉山溫州) · 청도온주(靑島溫州) 등이 있다.

제주도의 귤은 옛날부터 신기한 과일로 동지 때가 되면 귤을 조공하였고, 나라에서는 제주목사에게 포백을 하사하였다. 또, 귤이 대궐에 들어오면 이를 축하하기 위하여 성균관과 동 · 서 · 남 · 중의 4개 학교의 유생들에게 과거를 보이고 감귤을 나누어 주었다. 이것을 감제(柑製) 또는 황감제(黃柑製)라고 하였다. 반면에 제주에서는 더 많은 귤을 생산하기 위하여, 열매가 맺으면 관에서 열매 하나하나에 꼬리표를 달고 하나라도 없어지면 엄한 형을 주었다.

또한, 아전들은 이를 빌미로 엄청난 수탈을 감행하여 나무를 통째로 뽑아버리는 수가 허다하였으며, 그 생산량이 크게 줄었다고 한다. 김상헌(金尙憲)의 『남사록(南槎錄)』에도 “해마다 7, 8월이면 목사는 촌가의 귤나무를 순시하며 낱낱이 장부에 적어두었다가, 감귤이 익을 때면 장부에 따라 납품할 양을 조사하고, 납품하지 못할 때는 벌을 주기 마련이었다. 이 때문에 민가에서는 재배를 하지 않으려고 나무를 잘라버렸다.”고 되어 있다.

오늘날 제주에 남아 있는 재래의 감귤은 10여 종에 불과하며, 대부분이 1911년 일본에서 도입된 온주밀감을 비롯한 몇 종류의 재배종이다. 급격한 재배지의 확장은 1960년 초반기부터이다. 그 뒤, 감귤의 생산량은 해마다 급증되어 1970년대에 들어와서는 감귤이 기호식품의 범주를 벗어나 대량소비단계로 접어들었고, 최근에는 음료수 등 가공소비가 급증해서 재배면적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참고문헌

『한국식물도감』(정태현, 신지사, 1956)
『과수원예각론』(이광연 외, 향문사, 1978)
『백화전서』(양인석, 송원문화사, 1983)
「귤나무」(임경빈, 『산림』 244호,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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