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여중(汝中). 일찍이 무예를 익혀 정기룡(鄭起龍) · 주몽룡(朱夢龍) 등과 함께 무용(武勇)으로 ‘삼룡(三龍)’이라는 칭을 들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경상우감사(慶尙右監司) 김성일(金誠一)의 조처에 따라 가관(假官: 임시 수령)으로서 함창현감(咸昌縣監)이 되어 제1차 진주성전투 때 무기 관리를 맡아 왜병 격퇴에 공을 세웠다.
1593년(선조 26) 명나라 군사가 상주 · 대구 등지에 주둔하고 있을 때 군량 조달 담당관으로 활약하였으며, 그뒤 경상우병사(慶尙右兵使) 정기룡을 도와 성주(星州)의 화원현(花園縣), 고령(高靈)의 안림역(安林驛), 삼가(三嘉) 등지의 전투에 참전하여 승전한 공으로 절충장군(折衝將軍)에 올랐다.
임진년 1년간 12회에 걸친 대소전투에 참가하여 모두 이겼으며, 임시로 함창현감으로 있는 동안 군민(軍民)을 개유(開諭: 사리를 알아 듣도록 잘 타이름)하여 단합하게 하였을 뿐 아니라 군량조달에도 공헌하였다. 뒤에 장기현감을 역임하였고, 효성이 지극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