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현풍(玄風). 자는 익보(益輔), 호는 괴헌(槐軒). 할아버지는 사성(司成) 곽지번(郭之藩)이며, 아버지는 선무랑(宣務郎) 곽초(郭超)이다.
작은아버지 곽월(郭越)에게 글을 배우다가 김경창(金慶昌)의 문하에 들어가 수학한 뒤 정구(鄭逑)와도 종유(從遊)하였다. 장현광(張顯光)·서사원(徐思遠) 등과 친교가 두터웠으며, 1573년(선조 6) 김우옹(金宇顒)의 추천으로 참봉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초유사(招諭使) 김성일(金誠一)을 도와 모병(募兵)·모량(募糧) 등 토적활동(討敵活動)의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는 한편, 서사원과 협력하여 직접 의병활동을 펴기도 하였다.
정유재란 때에는 종제(從弟) 곽재우(郭再祐)와 함께 의병을 이끌고 창녕(昌寧)의 화왕산성전투(火旺山城戰鬪)에 참전, 왜적을 물리친 뒤 그 공으로 부호군(副護軍)에 올랐다. 난이 끝난 뒤 향리에서 인재교육으로 여생을 마친 뒤 대구의 유호서원(柳湖書院)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