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8월 15일의 조국광복을 계기로 한국 내의 초등학교에 배치되어 있던 일본인 교원들이 모두 물러갔을 뿐만 아니라 초등학교 취학생이 폭발적으로 늘어남에 따라 초등교원의 수요가 크게 증가되었다.
이에 군정청 학무당국에서는 우선 남한에 있던 10개의 사범학교 중 3개 사범학교는 중등교원 양성기관으로 승격 개편토록 하고 나머지 7개의 사범학교는 신제의 사범학교로 개편하여 계속해서 초등교원 양성교육을 실시토록 하였다.
그리고 1946년도에 강릉사범학교를 비롯하여 경기·개성·부산·충주·군산·목포·순천 등의 공립사범학교를 설치하여 각 시·도에서 필요로 하는 초등교원을 양성하도록 하였다.
이상과 같은 군정청 문교당국의 초등교원 양성방침에 따라 강릉사범학교는 1946년 9월에 설립인가를 받아 동년 9월에 초급(병설중학과정), 1학년(2학급), 2학년(1학급), 3학년(1학급)의 입학식을 거행함으로써 개교되었다. 1946년 10월 3일에 초급 2학년 1학급과 사범과 1학년 2학급이 증원 모집됨으로써 사범과도 개설되었다.
1947년 2월에 초급 3학년 1학급이 증원 모집되어 초급과정은 각 학년 공히 2개 학급씩으로 편성되었다. 1947년 6월 20일에 초급 제1회 수료식이 거행되었다. 1949년 6월 15일에 사범과 제1회 졸업식(58명)이 거행되고 1950년 4월 1일 공립에서 국립으로 이관되었으며 1950년 5월 1일에 병설중학교의 제4회 졸업식이 거행되었다.
강릉사범학교는 1955년 9월 21에 신축교사의 기공식을 거행하고, 1957년 4월 8일에 부속국민학교를 개설하였으며 동년 7월 9일에 신축교사로 이전하였다. 1960년 1월 사범과 9학급이 6학급으로 감축되고, 병설중학은 9학급에서 12학급으로 증설되었다.
혁명정부의 2년제 교육대학 설치방침에 따라 강릉사범학교는 1962학년도부터 학생모집이 중지되고, 1963년 2월말을 기해 폐교되었다. 강릉사범학교는 1946년 9월부터 1963년 2월 말까지 존속하면서 병설중학교는 16회의 졸업자를 배출하고, 사범과는 15회에 걸쳐 모두 2,074명의 졸업자와 36명의 수료자를 배출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