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초당동 유적 ( )

선사문화
유적
문화재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초당동 일대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돌덧널무덤 등이 분포하는 유적.
이칭
이칭
강릉 초당동 고분군
유적/고인돌·고분·능묘
건립 시기
4~6세기
관련 국가
신라
재질
59,290㎡
소재지
강원도 강릉시
국가지정문화재
지정기관
문화재청
종목
사적(2007년 12월 03일 지정)
소재지
강원 강릉시 초당동 84- 2 등
내용 요약

강릉 초당동 유적(江陵 草堂洞 遺蹟)은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초당동 일대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돌덧널무덤 등이 분포하는 유적이다. 초당동 일대의 사구 지대에는 선사시대 이래 마을이 확인되는데, 삼국시대 집터와 총 300여 기 이상의 신라 고분군이 집중 확인되고 있다. 시신을 매장하는 구조는 나무널무덤과 덧널무덤도 확인되지만, 대부분 돌덧널무덤이 축조되었다. 그리고 이 고분들에서는 신라 토기와 함께 금동관, 관장식, 장식큰칼, 귀걸이 등의 위세품이 출토되어 신라와의 관계를 잘 보여 준다.

정의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초당동 일대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돌덧널무덤 등이 분포하는 유적.
발굴경위 및 결과

강릉 초당동 유적은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의 주1 지대에 분포하고 있는 고분군과 집터 유적이다. 1969년 주2 1기가 조사되면서 그 실체가 알려지기 시작하였고, 이후 50여 차례 이상의 조사를 통해 현재 300여 기 이상의 고분을 확인하였다.

형태와 특징

시신을 매장하는 구조는 나무널무덤을 비롯해 나무덧널무덤, 주3 등도 확인되나, 대부분 돌덧널무덤이 확인된다. 돌덧널무덤은 봉분을 갖추고 있는 대형의 무덤이 일부 확인되나, 중소형의 무덤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이 고분들에서는 신라 토기를 비롯하여 다량의 유물들이 출토되었는데, 이 가운데 초당동A-1호묘에서는 금동용문투조대금구(金銅龍文透彫帶金具), 초당동B-16호묘에서는 출자형 금동관(出字形 주4과 금제 귀걸이, 금동제 장식큰칼, 초당동C-1호묘에서는 은제 새날개모양머리장식, 초당동ⅢA-1호묘에서는 나비모양관모장식 등이 출토되었다.

이 유물들은 신라에서 제작된 것을 초당동 고분군에 매장된 인물들이 받은 것으로, 강릉 일대를 다스리던 인물들이 초당동 고분군에 매장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초당동 고분군이 언제 축조되기 시작하였는지에 대해 여러 견해가 있으나 최근 확인되는 나무덧널무덤의 양상을 통해 볼 때, 4세기 후반에 축조되기 시작하여 5세기에서 6세기 전반에 걸쳐 집중적으로 축조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의의 및 평가

강릉 초당동 유적은 강원특별자치도 강릉 지역의 신라 고분 문화 유입의 양상을 비롯하여 신라의 강원 영동 지방 진출, 지방 지배 방식의 면모를 엿볼 수 있는 유적이라 할 수 있다. 2007년 12월 3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참고문헌

단행본

『강릉 초당동 고분(사적 제490호) 발굴조사 약식보고서』(강원고고문화연구원, 2018)
『江陵 草堂洞 古墳群』(강원고고문화연구원, 2010)
『江陵 草堂洞 遺蹟Ⅴ』(강원문화재연구소, 2009)
『江陵 草堂洞 遺蹟Ⅳ』(예맥문화재연구원, 2008)
『江陵 草堂洞 遺蹟Ⅳ』(강원문화재연구소, 2008)
『江陵 草堂洞 遺蹟Ⅲ』(예맥문화재연구원, 2008)
『江陵 草堂洞 遺蹟Ⅲ』(강원문화재연구소, 2007)
『江陵 草堂洞 遺蹟Ⅱ』(강원문화재연구소, 2006)
『江陵 草堂洞 遺蹟Ⅰ』(강원문화재연구소, 2005)

논문

심현용, 「고고자료로 본 5~6세기 신라의 강릉지역 지배방식」(『문화재』 42-3, 국립문화재연구소, 2009)
이창현, 「강릉지역 신라고분 연구」(단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5)
주석
주1

해안이나 사막에서 바람에 의하여 운반ㆍ퇴적되어 이루어진 모래 언덕. 크게 해안에서 볼 수 있는 해안 사구와 사막에서 볼 수 있는 내륙 사구로 나뉜다.    우리말샘

주2

지면을 깊게 파고 자갈 따위의 석재(石材)로 덧널을 만든 무덤. 삼국 시대에 사용했으며 널길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우리말샘

주3

시체를 큰 독이나 항아리 따위의 토기에 넣어 묻는 무덤. 전 세계적으로 널리 쓰인 무덤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청동기 시대부터 쓰여 지금까지도 일부 섬 지방에서 쓰이는데, 하나의 토기만을 이용하기도 하고 두 개 또는 세 개를 이용하기도 한다.    우리말샘

주4

삼국 시대에 상류 계층이 사용하던 관. 얇은 금동판으로 머리둘레만큼 띠 모양으로 만들고, 산자형이나 불꽃 모양을 투각한 장식을 달았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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