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초당동 일대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돌덧널무덤 등이 분포하는 유적.
발굴경위 및 결과
형태와 특징
이 고분들에서는 신라 토기를 비롯하여 다량의 유물들이 출토되었는데, 이 가운데 초당동A-1호묘에서는 금동용문투조대금구(金銅龍文透彫帶金具), 초당동B-16호묘에서는 출자형 금동관(出字形 金銅冠)과 금제 귀걸이, 금동제 장식큰칼, 초당동C-1호묘에서는 은제 새날개모양머리장식, 초당동ⅢA-1호묘에서는 나비모양관모장식 등이 출토되었다.
이 유물들은 신라에서 제작된 것을 초당동 고분군에 매장된 인물들이 받은 것으로, 강릉 일대를 다스리던 인물들이 초당동 고분군에 매장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초당동 고분군이 언제 축조되기 시작하였는지에 대해 여러 견해가 있으나 최근 확인되는 나무덧널무덤의 양상을 통해 볼 때, 4세기 후반에 축조되기 시작하여 5세기에서 6세기 전반에 걸쳐 집중적으로 축조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의의 및 평가
참고문헌
단행본
- 『강릉 초당동 고분(사적 제490호) 발굴조사 약식보고서』(강원고고문화연구원, 2018)
- 『江陵 草堂洞 古墳群』(강원고고문화연구원, 2010)
- 『江陵 草堂洞 遺蹟Ⅴ』(강원문화재연구소, 2009)
- 『江陵 草堂洞 遺蹟Ⅳ』(예맥문화재연구원, 2008)
- 『江陵 草堂洞 遺蹟Ⅳ』(강원문화재연구소, 2008)
- 『江陵 草堂洞 遺蹟Ⅲ』(예맥문화재연구원, 2008)
- 『江陵 草堂洞 遺蹟Ⅲ』(강원문화재연구소, 2007)
- 『江陵 草堂洞 遺蹟Ⅱ』(강원문화재연구소, 2006)
- 『江陵 草堂洞 遺蹟Ⅰ』(강원문화재연구소, 2005)
논문
- 심현용, 「고고자료로 본 5~6세기 신라의 강릉지역 지배방식」(『문화재』 42-3, 국립문화재연구소, 2009)
- 이창현, 「강릉지역 신라고분 연구」(단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5)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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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해안이나 사막에서 바람에 의하여 운반ㆍ퇴적되어 이루어진 모래 언덕. 크게 해안에서 볼 수 있는 해안 사구와 사막에서 볼 수 있는 내륙 사구로 나뉜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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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지면을 깊게 파고 자갈 따위의 석재(石材)로 덧널을 만든 무덤. 삼국 시대에 사용했으며 널길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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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시체를 큰 독이나 항아리 따위의 토기에 넣어 묻는 무덤. 전 세계적으로 널리 쓰인 무덤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청동기 시대부터 쓰여 지금까지도 일부 섬 지방에서 쓰이는데, 하나의 토기만을 이용하기도 하고 두 개 또는 세 개를 이용하기도 한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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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삼국 시대에 상류 계층이 사용하던 관. 얇은 금동판으로 머리둘레만큼 띠 모양으로 만들고, 산자형이나 불꽃 모양을 투각한 장식을 달았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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