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병조판서, 형조판서, 이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같은 해 좌승지가 되고, 이듬해 도승지와 예조참의 등을 거쳐 1561년 왕의 특별 명령으로 형조참판이 되었다. 그해 성절사(聖節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그 뒤 대사헌 등을 역임하고 다시 부제학이 되어 권신(權臣) 이량(李樑)의 불법을 주장하다가, 오히려 이량의 미움을 받아 부호군(副護軍)으로 좌천되었으며, 1564년 도승지로 다시 기용되었다.
다음 해에 경상도 관찰사로 나갔을 때 정여창(鄭汝昌)을 배향한 함양의 남계서원(藍溪書院)의 사액을 요청해 허락 받기도 하였다. 1566년에 예조참판과 대사헌을 역임하였다. 1568년(선조1) 대사헌으로 사간 유희춘(柳希春)과 함께 조광조의 신원과 추숭을 건의하였고, 1570년 주청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그 뒤 병조 · 형조 · 이조판서와 한성판윤 등을 역임하고, 1576년 우참찬을 거쳐, 1578년 우의정이 되었고, 2년 뒤 영중추부사로 옮겼다. 평상시 그는 국가의 치란이 천운에 있지 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여 정쟁에 초연한 처지를 취하였다. 아들 강인(姜絪)이 호성공신(扈聖功臣)에 책록되자,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참고문헌
- 『명종실록(明宗實錄)』
- 『선조실록(宣祖實錄)』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영남인물고(嶺南人物考)』
- 『백헌집(白軒集)』
- 『대동야승(大東野乘)』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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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진사급제 : 『가정22년계묘8월24일생원진사시방목(嘉靖二十二年癸卯八月二十四日生員進士試榜目)』(국립중앙도서관[古6024-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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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문과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七(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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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호성공신 강린 : 『선조수정실록』 38권, 1604년(선조 37) 6월 25일. "공신을 3등급으로 나누어 대대적으로 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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