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중학교와 서울고등학교를 거쳐 1960년 육군사관학교 제16기로 졸업, 육군 소위로 임관되었다. 이후 육군보병학교, 수도사단 제1연대 소대장, 1군 하사관학교 수류탄 교관 등을 역임하였다. 1965년 한국군 1개 사단의 월남파병이 결정됨에 따라 8월 29일맹호부대(수도사단의 별칭) 제1연대 제10중대장에 보직되었다.
10월 4일 오전 10시경 베트남 파병을 앞두고 중대원의 수류탄투척 훈련을 실시하던 중 이등병 박해천이 실수로 안전핀을 뽑은 수류탄을 중대원들이 모여있는 곳에 떨어뜨리자 순간적으로 위험을 느낀 그는 폭발하기 직전 수류탄 위에 몸을 날려 중대원 백여명의 생명을 구하고 자신은 산화하였다.
육군은 그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높이 평가하여 소령으로 1계급 특진시킴과 함께 4등 근무공로훈장을 추서하였으며, 그의 위대한 군인정신을 길이 남기기 위하여 생시 그가 소속했던 맹호부대 제1연대 3대대를 그의 이름을 따 ‘재구대대(在求大隊)’라고 명명했다. 1966년에 태극무공훈장이 추서되었다.
그의 모교였던 서울고등학교 교정에 이를 기념하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으며, 육군사관학교에는 동상이 건립되어 있다. 또한, 그가 산화한 강원도 홍천군 북방면 성동리에는 강재구공원이 있다. 그리고 육군에서는 ‘재구상’을 제정하여 매년 육군의 중대장 가운데 모범 중대장을 선발하여 시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