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3월 2일 인천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석실분은 고려시대의 것으로서 석실 내부는 화강암을 잘 다듬어 축조하였다. 석실의 크기는 남북 장축 방향 260㎝, 너비 196㎝의 장방형으로 축조되어 있다.
고려시대 지배계층의 무덤으로 알려진 이 고분은 과거 도굴로 인하여 석실이 노출되어 있어 보존 · 정비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됨에 따라 이를 위한 발굴을 2006년 말에서 2007년 초에 이르기까지 실시하게 되었다. 석실 내에는 유물 파편만 출토되었지만 봉분구조물과 석실, 건물지가 양호하게 남아 있어 고려시대 지배계급 묘제의 전형을 보여주는 사례로 확인되었다.
석실은 4m 범위의 풍화암반층을 파낸 후 잘 다듬어진 화강암으로 길이 2.6×1.9×2.1m 규모로 축조한 후, 천장은 3×1.1m 크기의 판석 3매로 덮고 입구는 2m 크기의 화강암 판재로 폐쇄한 구조이다. 시신을 안치하는 석실 내부 바닥 중앙에는 2.2×1.1m 크기의 석제관대를 설치하고 내부에 회를 채워 넣었다.
석실상부 봉분에는 호석(추정 12각형) 및 그 외부에 돌린 난간과 난간지대석, 그리고 동북과 서북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석수(동물상) 2기가 확인되었다. 석실 남편에는 제사를 지내기 위한 건물터가, 그 아래로는 길이 27m 규모의 축대가 남아 있다. 또한 석실 정중앙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네 방향에서 진단구(제사용 매납유물)로 판단되는 도기항아리가 출토된 바, 이 시기 왕릉급 고분에서 처음 발견되는 사례로 진단구와 토기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석실내 출토유물로는 청자편, 각종 금은제장식 파편, 유리그릇편 · 구슬류, 상부통보(祥符通寶, 송(宋) 진종(眞宗) 1008∼1016 제작) 1점, 은제못, 금박장식 관재 등 소량이지만 다양하게 출토되었다. 특히 봉황머리를 나타낸 은제장식편의 경우 문양이 있는 곳에만 도금처리하여 장식적 효과가 뛰어나도록 한 것이 특징적이다.
강화능내리석실분 발굴조사는 고려 강도시대(江都時代, 1232∼1270) 왕릉인 석릉(碩陵: 희종 1237년 몰), 가릉(嘉陵: 원종비 순경태후 1244년 몰), 곤릉(坤陵: 강종비 원덕태후 1239년 몰)에 이은 국립문화재연구소(현, 국립문화유산연구원)의 네 번째 왕릉급 조사였다. 이 발굴조사를 통해 봉분을 구성하는 난간과 지대석의 구조 및 석수의 위치가 드러났고, 석실의 입구부와 묘도(墓道)에 대한 구조 및 축조방법을 명확하게 파악하는 성과를 거뒀다. 따라서 향후 고려시대 묘제연구 및 복원 · 정비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할 것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