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북한 황해북도 개성시 탄현문 밖에 있었던 고려전기 제1대 태조가 창건한 사찰.
내용
946년(정종 1) 정종은 이 절에 불사리(佛舍利)를 봉안하였고, 성종은 서희(徐熙)의 병을 염려하여 이 절에서 기원하였으며, 1018년현종은 사리탑을 중수한 뒤 금강계단(金剛戒壇)을 만들어서 3,200인의 승려를 득도시켰다. 1042년정종이 태조의 휘신도량(諱晨道場)을 열었고, 1083년문종이 태자를 송나라에 파견하여 송판대장경(宋版大藏經)을 받아오게 한 뒤 이 절에 봉안하고 도량을 열었으며, 1087년 선종이 대장경경성법회(大藏經慶成法會)를 열었다.
또한, 예종은 선왕인 숙종과 명의태후(明懿太后)의 영가를 이 절에 봉안한 뒤 매년 기일마다 찾아와 분향하였으며, 1179년명종이 백고좌법회(百高座法會)를 열었다. 그러나 1233년(고종 23) 몽고의 침략으로 소실되어 90여년 동안 방치된 채 소규모로 명맥만 이어오다가, 1323년(충숙왕 10)에 남산종사(南山宗師) 목헌구공(木軒丘公)을 중심으로 한 승려들이 중창을 시작하여 1325년(충숙왕 12) 완공하였다.
그 뒤의 역사는 전하지 않으나,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으로 보아 조선 중기까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절터에 있었던 칠층고탑(七層高塔)은 민족 항일기에 개성박물관으로 옮겼는데, 그 때 탑 안에서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7책이 발견되었으며, 7권의 말미에는 염승익(廉承益)이 지은 발원문이 있다. 또한 935년에 조성된 석등은 개성 역사박물관으로 이전 보관되었는데 보물급 문화재 제32호로 지정되어 있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북한사찰연구(北韓寺刹硏究)』(사찰문화연구원, 1992)
- 『송도(松都)의 고적(古蹟)』(고유섭, 열화당, 1977)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