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위 128∼166. 아버지는 제3대 기루왕. 132년(개루왕 5)에는 북한산성을 쌓았다. 155년에는 신라의 아찬(阿飡) 길선(吉宣)이 모반하다가 탄로가 나 도망왔는데, 신라왕이 글을 보내어 돌려주기를 청하였으나 보내지 않았다.
이에 신라왕이 노하여 침공해 왔으나 잘 막았다. ≪삼국사기≫에는 개루왕의 아들로 제5대 초고왕과 둘째아들로 제8대 고이왕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고이왕이 개루왕의 아들이라 함에는 문제가 있다.
재위기간만 38년이므로 죽을 때의 개루왕은 노령이라 하겠는데, 고이왕의 즉위는 개루왕의 죽은 해에서 69년 뒤이며, 그 뒤에도 고이왕은 52년간 재위한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이왕은 개루왕의 아들이 아니라 개루왕의 방계후손이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고이왕의 선대계보를 개루왕에게 연결시킨 것은 당시 백제왕실의 여러 혈족들 중에서 개루왕을 기점으로 하는 지파가 존재했던 때문으로 생각된다.
제21대 개로왕은 일명 근개루왕(近蓋婁王)이다. 이렇게 후대의 왕이 개루왕의 이름을 따고 있음도 그러한 지파의식과 관련된 것일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