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마국은 26년(대무신왕 9) 고구려에 복속된 소국으로, 왕의 친정을 통해 왕실의 부(部)인 계루부(桂婁部) 휘하에 편제된 것으로 여겨진다. 개마국은 대무신왕 즉위 후 진행된 주변 소국들에 대한 활발한 정복 활동의 결과로 고구려에 복속되었다. 『삼국사기』에는 대무신왕이 직접 군사를 이끌고 가 개마국을 정벌하여 그 국왕을 굴복시키고, 땅을 군현으로 삼았다고 되어 있다. 그리고 그 이듬해는 개마국이 고구려에 복속되었다는 사실을 듣고 개마국에 인접한 구다국(句茶國)도 고구려에 항복하였다고 한다. 해당 기록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초기 고구려가 주변으로 팽창하면서 복속시킨 주변 소국 중 개마국이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
개마국의 위치에 대해서는 고구려 초기 중심지였던 중국 랴오닝성[遼寧省] 환런현[桓仁縣], 지린성[吉林省] 지안시[集安市] 근처로 보는 견해와 압록강 이남, 낭림산맥 동쪽의 개마고원 일대로 비정하는 설이 대별된다.
명칭은 개마고원을 의미하는 개마대산(蓋馬大山)에서 유래하였다. 『후한서(後漢書)』 동이전은 오늘날 함경도 해안 지역에 위치하였던 동옥저가 개마대산 동쪽에 있었다고 전한다. 문맥상 개마대산은 백두산이나 그 일원인 개마고원에 비정할 수 있다. 그리고 『한서(漢書)』 지리지에는 서기전 107년에 설치된 현도군(玄菟郡)의 속현 중 서개마현(西蓋馬縣)이 보인다. 개마라는 지명이 상당히 이른 시기부터 사용되었음이 확인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