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가는 고구려의 관등이다. 『삼국지』, 『한원(翰苑)』, 『삼국사기』, 「충주고구려비」 등에서 확인된다. 주몽이 고구려를 건국하기 이전 원고구려의 수장을 지칭하는 명칭으로 부여와 고구려의 전통적인 호칭인 ‘가(加)’에서 유래하였다. 고위 왕족과 유력 부의 수장에게 일종의 작위(爵位)로 수여되었으며, 정치적으로 회유해야 하는 인물에게도 수여되었다. 고구려 후기에는 국왕을 대리하거나 사신 접대의 임무를 수행하면서 외교 담당 관직으로 변화하였다. 이렇듯 왕권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고구려 말기까지 존속되었다.
고추가는 고구려 고위 관명 중 유일하게 초기부터 말기까지 보인다. 고추가가 등장하는 가장 이른 시기의 기록은 『삼국지(三國志)』 동이전으로, 계루부(桂婁部) 고위 왕족과 전 왕족인 소노부(消奴部)의 수장, 왕비족인 절노부(絶奴部)의 수장에게 주어졌다고 한다.
고추가라는 명칭은 예맥계 국가인 부여와 고구려의 수장을 칭하는 전통적 호칭인 ‘가(加)’에서 유래한 것으로 여겨지며, 정확한 의미는 알기 어렵지만 접두사인 ‘고추’가 들어간 것을 통해 볼 때 본래 꽤 유력한 수장을 일컫는 명칭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음운상의 유사성을 들어 신라의 ‘거서간(居西干)’과 비슷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실제 『삼국지』에 의하면 고추가는 왕의 종족(宗族)과 전 왕족, 왕비족의 수장만 받을 수 있었던 것으로 나오며, 『삼국사기』나 「충주고구려비」 등에도 유력 왕족에게 수여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지만 고추가 명칭의 수여 대상이나 자체의 성격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변질된 것으로 보이는데, 먼저 3세기 중반 『삼국지』 단계까지만 하더라도 계루부 왕족은 물론, 소노부와 절노부의 수장, 심지어 환나부(桓那部)에 정복된 주나(朱那)의 왕자에게도 주어진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후에 보이는 실제 수여 사례는 계루부 왕족, 그 중에서도 매우 유력하거나 정치적 회유가 필요한 인물에게 주어진 것을 확인할 수가 있다. 이것은 『삼국지』 단계 이후 고구려의 집권력이 강화되며 그 수여 범위가 점차 왕족으로 한정된 것을 추정케 하는 대목이다.
그리고 성격의 변화 또한 주목된다. 『삼국지』에서 고추가는 관명의 하나로 기록되어 있기는 하지만, 용례를 통해 볼 때 실제로는 고위 왕족과 유력 부의 수장에게 주어진 일종의 작위(爵位)와 같은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신라의 갈문왕(葛文王)과도 유사하다.
그러나 고구려 후기가 되면 그 성격이 의례와 외교, 빈객(賓客) 등을 담당한 관직명으로 변화한 것으로 나타난다. 7세기 무렵에 저술된 『한원(翰苑)』에는 당시 고구려의 관직에 대한 소개를 하며 발고추가(拔古鄒加)가 있는데 고구려 후기 14관등 중 4위에 해당하는 대부사자(大夫使者) 이상이 맡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 직능은 중국 당나라에 있는 홍려경(鴻臚卿)과 마찬가지로 빈객 즉 외교사절을 맞이하는 일을 관장하는 직책이었다고 전하고 있다.
고추가가 고구려 후기에 이르러 외교 담당 관직으로 성격이 변화한 것은 그 태생이 고위 왕족에게 주어진 봉작적 성격의 관등이었기 때문이다. 즉 왕족, 그 중에서도 고추가에 오를 만큼 높은 왕족은 직책상 국왕을 대리하거나, 국왕 배알에 앞서 외국 사절을 접대하는 임무를 맡았을 개연성이 크다.
그리고 이는 고추가로 봉해진 고위 왕족의 임무에서 점차 고추가의 직무로 고착되고, 고구려 후기가 되면 고추가는 더 이상 봉작적 성격의 관등이 아니라 발고추가라는 이름의 외교 담당 관직으로 정착된 것이다.
『신당서』 동이전에는 고구려 관등을 소개하며 12등급 중 최하위로 고추대가(古鄒大加)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한원』에 보이는 외교 담당 관직인 발고추가를 잘못 기록한 것으로 여겨진다. 왜냐하면 고추대가는 『후한서』에만 보이는 표현이며, 고추대가의 바로 앞에 놓인 선인(仙人)이 『삼국지』 이래로 줄곧 고구려 관등제의 최하위에 위치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5세기 말까지도 최고위 왕족에게 수여되었던 사례가 확인되는 고추가가 이로부터 겨우 백 년이 조금 지난 시점에서 최하위 관등명으로 전락하였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고구려 중기 고위 왕족에게 수여되었던 고추가가 역사적 성격 변화 과정을 거치며 발고추가라는 외교 수장급 관직으로 정착되었다고 봄이 타당하다. 『삼국지』에 보이는 고구려 초기 관등 중 고추가의 명칭이 말기까지 존속할 수 있었던 배경은 결국 고추가가 왕권과 불가분의 관계였던 왕족에게 수여된 관등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