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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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사
제도
고구려의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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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구려의 행정구역.
개설

외평은 고구려 후기 지방 통치와 관련한 사료에 보인다. 그 기능이나 성격을 정확히 파악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평이 고유어로 벌판을 의미하는 단어이고 신라의 사례를 통해 볼 때 지역 단위, 그 중에서도 수도권의 일부나 지방을 일컫는 명칭으로 추정된다.

내용

『수서(隋書)』에는 6세기 무렵 고구려 정치 체제에 대한 개략적 기록이 있다. 먼저 태대형(太大兄)을 필두로 선인(仙人)까지 12등급의 중앙 관등을 소개하고, 그 뒤에 내평(內評), 외평(外評), 오부(五部), 욕살(褥薩)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외평 등이 중앙 관제에 이어 기록된 것으로 볼 때 지방 제도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함께 언급된 오부, 욕살 등도 지방 제도와 관련이 있는 명칭들이다.

그러나 고구려 관제에 대한 상세한 사항을 전하는 『삼국사기』고구려본기에는 외평과 관련된 기록이 없고 단지 직관지에서 『수서』의 기록을 인용하고 있을 따름이라 외평의 성격과 기능을 정확히 파악하기는 힘들다. 외평과 내평에 대해서는 그동안 적지 않은 해석이 나왔는데, 내평을 왕도와 기내를 포함한 수도권 지역으로, 외평을 나머지 지역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근래에는 내평을 경기, 외평을 지방, 5부를 왕도로 해석하거나, 고구려 전역을 내평 5부와 외평 5부로 나누어 내평은 왕도, 외평은 지방으로 보는 견해도 존재한다.

외평에 대한 전통 시대의 해석은 조선 후기에 안정복이 『동사강목』에서 이를 헌관(憲官), 곧 지방 관료들을 규찰하는 관직으로 본 것이 거의 유일하다. 그러나 이것은 ‘평(評)’의 한자 뜻을 토대로 추론한 것에 불과하므로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평은 6~7세기 무렵 고구려는 물론 신라와 일본에서도 지역 구획에 대한 단위명으로 사용되었다. 일본의 경우 평의 발음은 우리말 ‘고을’이 어원임이 분명한 ‘코호리(コホリ)’ 혹은 ‘고오리(ゴオリ)’였다. 그러므로 외평의 평은 고구려 고유의 지명 용어를 훈차한 지역 단위명으로 볼 수 있다.

평은 신라에도 보이는데, 『양서(梁書)』신라전에는 수도에 6탁평(啄評)이 있었다고 전하다. 6탁평은 문맥으로 보아 수도에 설치된 6부를 뜻한다. 즉 탁평은 부를 의미하는 용어로 중국 사서에 나타나고, 부는 신라 왕경에 설치된 것이므로 평은 수도의 지역 구분을 위해 사용한 명칭이라 볼 수 있다. 동일 계열의 지명 단위가 고구려와 신라에서 동시에 나타나는 것은 상호 영향의 결과이며, 역사적으로 볼 때 고구려가 신라에 전해준 것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고구려에서도 평은 신라와 마찬가지로 수도 권역의 지역 구분 단위나 지역명으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본래 왕도를 편제하기 위해서 설치한 구역이었던 평은 집권화의 진전과 함께 고유명 5부의 유력 세력이 왕도로 결집하면서 그들이 관칭하던 부와 혼용되다가 고유명 5부가 소멸하자 부는 완전히 평을 대체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기존의 수도 구획 단위 명칭으로서의 평은 사라졌지만, 수도 전체 혹은 수도권을 일컫는 일반 명사적 표현으로서 평이라는 용어는 후기까지 상존하였다. 수서의 기록은 이를 방증하는 것으로, 고구려 사람들이 수도(왕도=내평)와 수도권(왕기=외평)으로 부르던 것을 적기하였던 것이다. 즉 외평은 왕도 외곽의 왕기(기내) 지역을 부르던 호칭일 가능성이 크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동사강목(東史綱目)』
『삼국지(三國志)』
『한원(翰苑)』
『양서(梁書)』
『수서(隋書)』
『고구려의 영역지배 방식 연구』(김현숙, 모시는 사람들, 2005)
『고구려정치사연구』(임기환, 한나래, 2004)
『고구려사연구』(노태돈, 사계절, 1999)
『東アジア世界における日本古代史講座(朝鮮三國と倭國)』4 (武田幸男, 學生社, 1980)
『古代朝鮮と日本』(山尾幸久, 龍溪書舍, 1974)
「고구려 왕도, 왕기의 형성 과정과 성격」(조영광, 『한국고대사연구』 81, 2016)
「일본 고대의 고호리(評, 郡)에 관한 연구」(손대준, 『경기교육논총』 1,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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