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쪽은 합천군, 서쪽은 함양군, 남쪽은 산청군, 북쪽은 경상북도 김천시와 전북특별자치도 무주군에 접하고 있다. 동경 127°39′∼128°06′, 북위 35°31′∼35°56°에 위치한다. 면적은 803.13㎢이고, 인구는 6만 3232명(2015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1개 읍, 11개 면, 267개 행정리(94개 법정리)가 있다. 군청은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상림리에 있다.
경상남도 최서북부에 위치하며, 소백산맥의 준령을 경계로 경상북도 · 전북특별자치도와 접경하고 있으며 우리 나라 남부지방에서는 유일한 고원지대인 진안고원에 연속된 산지지대의 일부이다. 지세상의 특징은 군의 중남부가 대체로 해발 200m 내외의 저평지를 이루며 잔여부분은 대부분이 중 · 저산성 산지부를 형성한다. 고산지대의 산록에는 침식된 저산성 산지가 다수 분포하고 있으며, 화강암이 침식된 곳도 도처에 산재되어 있다.
북쪽에 덕유산(德裕山, 1,591m) · 삼봉산(三峰山, 1,254m) · 국사봉(國士峰, 875m) · 수도산(修道山, 1,316m) · 단지봉(丹芝峰, 1,327m) · 좌일곡령(佐一谷嶺, 1,258m) · 두리봉(頭利峰, 1,135m) 등의 비교적 높은 산과 험준한 고개가 전북특별자치도와 경상북도의 경계를 이루며 연속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서쪽에는 남덕유산(南德裕山, 1,507m) · 기백산(箕白山, 1,331m) · 금원산(金猿山, 1,353m) 등이 연이어져 있고, 동쪽에는 의상봉(義湘峰, 1,046m) · 비계산(飛鷄山, 1,126m) · 오도산(吾道山, 1,134m) · 수성산(宿星山, 899) 등이 전개되어 각각 함양군 및 합천군의 군계를 이루고 있다. 한편 남쪽은 비교적 낮은 보록산(保錄山, 767m) · 철마산(鐵馬山, 705m) · 갈전산(葛田山, 763m) 등으로 둘러싸인 산간분지에 해당되며 내부의 대분지 속에도 호음산(虎陰山, 930m) · 건흥산(乾興山, 563m) · 금귀봉(金貴峰, 827m) · 보해산(普海山, 912m) 등이 분포되어 작은 분지를 형성하고 있다.
위의 산들은 낙동강의 지류인 황강(黃江) · 남강(南江) · 감천(甘川)과 금강 등의 원천이 되고 있다. 거창분지에 모이는 영천(瀯川)과 아월천(阿月川) 황강을 이루면서 대산천 · 가천천과 합류해 합천댐으로 흘러든다.
경상남도 내륙지방에 자리 잡은 거창군의 기후는 대륙성 기후의 특성이 현저하며, 연평균기온 13℃, 1월 평균기온 1℃, 8월 평균기온 26℃이며, 연강수량은 1,729㎜, 평균습도 68.0%이다(2008년 현재).
지질은 선캄브리아기 편마암의 변성암을 기반으로 화성암류가 주를 이루며, 화강암과 제4기 충적층도 일부 산재한다. 북단인 고제면 궁항리 일대에 화강암과 편마암이, 주상면과 위천면의 경계를 이루는 능선과 위천면 상천리 금원산록 일대에는 화강암이 널리 분포하고 있다. 토양은 갈색 산림토가 지배적이며 표층은 갈색, 하층은 황갈색을 띤다.
식생은 냉대림 · 온대림 · 고산식물 등이 혼재하며, 진달래 · 싸리 · 소나무 · 참나무 · 오리나무 · 닥나무 · 대나무 등이 낮은 산지에, 적송 · 낙엽송 · 주목 등이 높은 산지에 분포되어 있다.
낙동강의 지류 황강 상류에 넓게 펼쳐진 이 지방에 처음으로 인류의 발자취가 미친 것은 신석기시대 말기로 추측된다. 최근에 이 지역에서 발견된 빗살무늬토기는 강을 따라 올라온 최초의 주민들이 남긴 유물일 것이다. 청동기시대에 와서는 인류가 이 지방 거의 전지역에 널리 퍼져서 각처에 선돌 · 고인돌 같은 유적을 남겼다. 삼한시대 변진 고순시국(古淳是國)을 이 곳으로 비정하고 있으며 삼국시대 초기부터 거타(居陀) 또는 거열(居烈)이라는 이름으로 문헌에 나타나는데, 이름이 진주의 옛 이름과 똑같아서 혼동을 일으킨 것인지 아니면 서부 경상남도지방을 총칭한 것인지 잘 알 수 없다. 어쨌든 낙동강 유역 각지에 분립한 가야연맹 중의 하나가 이 지방에 자리잡고 있었다는 것은 거창읍 개봉동과 마리면 말흘리 고분군의 규모와 여기에서 출토된 각종 유물들에 의해 증명되고 있다. 그리고 그 나라는 지리적으로 백제에 인접해 그 세력권에 들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신라가 가야제국을 차례로 병합해 그 세력이 이 지방에까지 미치게 된 7세기 초에는 양국이 정면으로 부딪치면서 피나는 쟁탈전이 벌어졌고, 현재 이 지방에 남아 있는 여러 산성들은 대개 이 때의 전장이라 전해지고 있다. 삼국을 통일한 신라는 685년(신문왕 5) 전국을 9주로 개편하면서 거타주를 나누어 진주에 청주(菁州)를 설치하고 이 곳에 거열군(居烈郡, 또는 居陀郡)을 두었다. 757년(경덕왕 16)에는 이 곳을 거창군으로 개칭하였다. 또 영현(領縣)인 남내현(南內縣)을 여선현(餘善縣: 지금의 위천지방)으로, 가소현(加召縣)을 함음현(咸陰縣: 지금의 加祚地方)으로 개칭했으며, 마리지방은 이안현(利安縣)으로 고쳐서 천령군(天嶺郡: 지금의 함양군)에 소속시켰다.
고려 초 함음현을 원래의 이름대로 가소현으로 환원하고 여선현을 감음현(感陰縣)으로 개칭하였다. 1018년(현종 9)합천이 주로 승격하면서 거창현으로 강등되어 가소현 · 감음현 · 이안현과 함께 합주(陜州)에 소속되었다. 1161년(의종 15) 고을사람의 무고사건으로 감음현을 부곡으로 개편했다가 1391년(공양왕 3) 현을 복구하면서 이안현을 감음현에 병합하였다. 1172년(명종 2)에는 거창현에 감무를 두었다. 1271년(원종 12) 거듭되는 왜구의 침범으로 거제현이 가소현으로 피란 오자 가소현을 거제현으로 이속하였다.
조선 초 1414년(태종 14)가소현에 우거(寓居)한 거제현과 거창현을 제창현(濟昌縣)으로 통합했다가 이듬해 거창현으로 환원해 현감을 두었다. 1415년 향교를 창설하였다. 1432년(세종 14)에 거제현이 본도로 수복했는데,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세종 때 거창현의 호구수는 505호 3,150인이었다. 1470년(성종 1) 왕비의 고향이라 해 군으로 승격했다가 중종 초에 현으로 환원했으며, 1658년(효종 9)에도 안음현(安陰縣)에 합했다가 2년 뒤에 다시 환원하였다. 1728년(영조 3)에 노론의 정치독점에 반대한 정희량(鄭希亮)이 청주의 이인좌(李麟佐), 합천의 조성좌(曺聖佐)와 통모해 안음현에서 반란을 일으켜 거창지역까지 점령하였다. 1729년에는 무신란(戊申亂)으로 폐현이 된 안음현의 북부를 편입해 거창부(居昌府)로 승격하였다. 1506년(중종 초)단경황후 신씨의 폐위로 다시 거창현으로 격하되었으나 1739년(영조 15)단경왕후 복위로 거창부로 승격하고, 1788년(정조 12) 한때 현으로 강등되었으나 1799년 부로 환원하였다. 1759년(영조 35)거창부의 호구 수는 4,263호 2만31인이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관제 개정으로 거창군이 되고 1914년 군의 폐합에 따라 마리 · 위천 · 북상의 3면을 안의군에서, 신원면(神院面)을 삼가군에서 편입해 13개 면이 되었다. 1919년 3·1운동 때에는 김병직(金秉直) · 어명준(魚命俊) 등이 양기리 장날에 거사했는데 3,000여 명이 참가하였다.
1937년 거창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조선 말기의 유학자로 이름이 높았으며 의정부참찬으로 있었던 곽종석(郭鍾錫)은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그 폐기를 상소했고 경술국치 뒤에는 고향인 거창에 은거하면서 3·1운동 때는 전국 유림을 규합해 만국평화회의에 독립청원서를 보내는 등 구국운동과 후진양성에 헌신하였다. 1957년월천면이 거창읍으로 편입되었고, 1973년함양군 안의면 진목리, 춘전리가 남상면으로 편입되었으며, 현재는 거창읍, 주상, 웅양, 고제, 북상, 위천, 마리, 남상, 남하, 신원, 가조, 가북 등 1읍 11면의 행정구역으로 되어 있다.
1949년 8월 공비의 거창읍습격사건과 이듬해의 6·25전쟁으로 읍내의 공공시설과 시가지가 큰 피해를 입었으며, 1951년에는 신원면에서 이른바 ‘거창양민학살사건’이 일어나 군민들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 1957년에 월천면이 거창읍에 편입되었으며, 1973년 7월 1일함양군 안의면의 춘전리 · 진목리가 남상면에 편입되었다. 1984년 영남과 호남을 잇는 88올림픽고속도로(현 광주대구고속도로)가 개통되어 이 지역의 교통이 편리해졌다. 1988년 8월 1일거창읍 상동이 상림리로, 하동이 중앙리로, 동동이 대동리로, 금천동이 금천리로 개칭되었다. 1995년에는 일부 마을의 지명이 변경되기도 하였다.
불교 유산으로는 서울간송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금동보살입상(보물, 1963-1 지정), 거창읍의 거창 양평리 석조여래입상(보물, 1963년 지정) · 거창 상림리 석조보살입상(보물, 1963년 지정), 위천면 상천리의 거창 가섭암지 마애여래삼존입상(보물, 1971년 지정), 마리면 말흘리의 송림사지석조여래좌상, 북상면의 거창 갈계리 삼층석탑 · 거창 농산리 석조여래입상(보물, 2005년 지정), 가조면 수월리의 거창 고견사 석조여래입상 등이 있다. 특히 현 거창군청은 옛 아림사지(娥林寺址)로 신라시대의 석재가 출토되기도 하였다. 거창 갈계리 삼층석탑은 1974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고, 거창 고견사 석조여래입상은 1988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유교 유산으로는 북상면 갈계리의 거창 갈천서당(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993년 지정)을 비롯해 1415년(태종 15)에 창건되고 1623년(인조 1)에 중건된 거창읍 가지리에 거창향교(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983년 지정), 1661년(현종 2)에 건립되고 이듬해에 사액된 가조면 일부리에 도산서원(道山書院), 1664년에 건립되고 1680년(숙종 6)에 사액된 주상면 완대리에 완계서원(浣溪書院), 1637년(인조 15)에 건립된 북상면 월성리에 성천서원(星川書院), 1694년에 건립된 위천면 대정리에 구연서원(龜淵書院) 등의 많은 서원이 있었다.
사우로는 1738년에 설립된 웅양면 노현리에 포충사, 1788년(정조 12)에 세워진 거창읍 동리에 창충사와 북상면 농산리에 모리재(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995년 지정), 주상면 연교리에 모리재(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995년 지정),등이 있고, 덕봉사(德峯祠) · 용원사(龍源祠) 등이 있었다. 포충사와 창충사는 1983년 경상남도 문화재자료(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누정으로는 위천면 강천리에 반구헌(경상남도 문화재자료, 1996년 지정)을 비롯해 고운정(孤雲亭, 일명 松風臺) · 영사정(永思亭) · 동해정(東海亭) · 입암정(立巖亭) · 건계정(建溪亭) · 심소정(心蘇亭) · 대앙정(大仰亭) · 덕산정(德山亭) · 동인정(同人亭) · 망월정(望月亭) · 삼덕정(三德亭) · 앙진루(仰辰樓) 등이 있다. 건계정은 거창읍 상림리 위천 유역의 반석 위에 세워진 정자로, 거창장씨들이 그들의 선조 장종행(章宗行)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1904년 이 정자와 보은재(報恩齋) 및 사적비를 세우고, 그들 성씨집단이 유래한 곳이라는 중국 건주(建州) 땅의 지명을 따서 건계정이라 이름지었다 한다. 또 심소정은 남하면 양항리 서쪽 황강변 산기슭에 세워진 정자로 조선 세종 때 북벌의 공을 세우고 단성현감을 지낸 윤자선(尹孜善)이 은거한 곳으로, 1919년 파리장서사건 때 지방유림들이 여기에서 거사를 의논했다 한다.
신석기시대 말기의 빗살무늬토기가 황강의 상류인 거창읍 부근까지 퍼져 있었고, 주상면의 거창 내오리 지석묘(경상남도 기념물, 1983년 지정)와 내오리지석묘를 비롯하여 가조면의 마상리, 북상면의 농산리 등지에서 고인돌이, 고제면 농산리에서 선돌이 발견되었다.
1972년 남하면 에서 고려시대의 벽화고분인 거창둔마리벽화고분(사적, 1974년 지정)이 발견되었고, 거창읍 대동리에는 거대한 봉토를 가진 삼국시대의 거창개봉고분군(경상남도 기념물 제51호)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으며, 마리면의 말흘리고분군과 남하면의 무릉리고분군은 거의 도굴당하거나 파괴되었다. 이 지역 고분에서 출토된 것으로 추측되는 금동제 마구류(馬具類)와 금 · 옥제 장신구들이 국립중앙박물관과 일본 동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97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정온 동계문집 목판은 조선 중기 명신 정온(1569~1641)의 문집책판으로 1660년 초에 초간, 1851년에 중간한 동계문집 전 9책의 전질로서 총판 299매가 보존되어 있다. 1998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문위 관련 고문서는 조선중기 모계 문위(1554~1631)선생의 교지류 · 문집 · 필첩 등으로 당시 사회상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서 거창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1987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윤주하 교우문집 목판은 교우 윤주하(1837~1908)선생의 유고(遺稿)를 정리한 책으로서 목록(目錄), 시(詩), 소서(疏書), 서기발(序記跋), 잡저(雜著) 등 10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993년에 장판각을 만들어 보존하고 있다. 1996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송병선 연재문집 목판은 구한말 문신 송병선(1836~1905) 선생의 문장(文章) · 시(詩) · 행장(行狀) 등을 판각한 목판본으로 53권 1,942매로 구성되어 있다. 거창 초계정씨종가소장고문서는 고려말 정준(鄭俊)선생의 동방록(同榜錄), 교지와 초계정씨 교지류, 필첨으로 구성되어 있다. 1979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임훈 갈천문집 목판 및 임운 첨모당문집 목판은 조선 명종 · 선조 때의 유학자인 갈천임훈(林薰)의 글들을 모아 편집하여 만든 책판이다
거창삼베일소리는 길쌈하는 과정에서 부른 노동가로서 삼밭매기소리, 삼잎치기소리, 삼겆소리, 삼삼는소리, 물레소리, 베나르기소리, 베매기소리 등으로 구성된다. 거창 일소리는 노동현장에서 불리어졌던 노래로서 어산영, 못둑다지기소리, 보리타작소리, 모찌기소리, 모내기소리, 논매기소리, 벼타작소리, 칭칭나네 등 여덟 소리로 구성되어 있다. 거창읍의 학리에는 징장은 구리와 주석을 혼합하여 만들며 소리가 웅장하고 파장이 긴 것이 특징이다. 거창삼베일소리는 1995년 경상남도 무형문화재(현, 무형유산)로 지정되었고, 징장은 1993년 경상남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성터로는 거창읍 상리에 거열성(경상남도 기념물, 1974년 지정) · 분산성(盆山城, 일명 城山城) · 들성大坪城과 웅양면의 하성(霞城, 일명 女城) · 웅현성(熊峴城), 가북면의 황사산성(黃沙山城), 남하면의 성령산성(城嶺山城), 주상면의 성기성(聖基城)과 기타 망덕산성(望德山城) · 소흘산성(所屹山城) 등의 흔적이 남아 있다.
고건축으로는 위천면 강천리의 정온 선생 가옥(중요민속자료, 1984년 지정)과 정온가의 유품(중요민속자료, 1987년 지정), 남하면의 거창 무릉리 정씨고가(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992년 지정), 양항리의 거창 윤경남 생가(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997년 지정), 위천면의 거창 황산리 신씨고가, 북상면의 거창갈계리임씨고가 등 민속자료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 거창 황산리 신씨고가는 1994년 경상남도 민속문화재(현, 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으며, 거창갈계리임씨고가는 1985년 경상남도 민속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남상면 에는 거창 연수사 은행나무(경상남도 기념물, 1993년 지정)가 있다.
조선시대의 교육기관으로 거창읍 가지리에 있는 거창향교는 1415년(태종 15) 전국에 향교를 설치하라는 전교가 있었을 때 설치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 함양군으로 편입된 안의의 안의향교도 1473년(성종 4)에 창건되어 마리면 · 위천면 · 북상면 일대의 자제들의 교육을 담당하여 왔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당시 향교와는 별도로 양현재(養賢齋) · 양무당(養武堂) 등이 군수의 관할 아래 유생의 교육을 담당해 왔으나 조선 말기에 철폐되었다.
사립 교육기관으로는 1535년(중종 30)임훈(林薰)이 북상면 갈계리에 용문서당을 개설한 것이 시초이며, 1661년에 도산서원이, 1664년에 주상면 완대리에 완계서원이 창건되어 1680년 사액, 1869년에 훼철되었으며, 1694년위천면 대정리에 창건되었다가 훼철된 구연서원, 1707년 창건된 가조면 사병리의 병암서원 등이 있으며, 이외에도 많은 서원이 훼철되었다.
1737년에 포충사 등 크고 작은 서원과 재실 및 서당이 잇달아 설립되어 많은 학자를 배출하였다. 그 중에서 특히 임훈 · 임예(林藝) · 정온(鄭蘊)은 거창에서 배출된 대표적인 유학자로서 후학들을 계발시킨 공이 크다.
신교육기관으로는 1907년 지금의 거창초등학교가 거창보통학교로 개설된 것이 시초이고, 그 뒤 각 면마다 보통학교가 생겼으며, 1929년에 거창공립농업보습학업(居昌公立農業補習學業)이 설립되어, 최초의 중등교육기관으로서 지금의 거창농림고등학교로 이어져오고 있다.
2015년 현재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7개교, 중학교 9개교, 고등학교 7개교, 전문대학 2개교(경남도립거창대학 · 한국승강기대학교)가 있다. 거창읍 하리에 있는 군립거창도서관은 군민의 교육과 문화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
문화행사로 매년 10월에 열리는 아림제(娥林祭)는 종합 문화행사로서 군민들의 축제이다.
이 지역의 민속놀이는 경상남도 일원의 다른 지역과 거의 비슷하다. 약간 특이한 것은 돌싸움石戰으로서 이 지역이 예로부터 각 국가 세력간의 격전지였던 관계로 상무정신을 고취시키고자 장려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고로들의 말에 의하면, 일제강점기 초까지도 돌싸움이 존속했으며 매년 일정한 시기에 관의 허가 아래 각 마을 사이에 벌어졌는데, 사상자가 발생하더라도 별다른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고 한다. 돌싸움의 승패는 마을의 운수를 좌우한다 해 꽤 성행했으며, 망팔매 · 줄팔매 등 진보된 형태로도 행해졌다고 한다. 이러한 돌싸움을 위해 수시로 돌을 모았는데, 이 과정에 산신의 가호를 비는 산신제도 있었다고 전하나 지금은 상고할 길이 없다. 다만 돌을 쌓았던 누석단(累石壇)의 흔적이 신원면 진목고개, 마리면 창촌, 남하면 지산고개, 가북면 용산리, 가조면 원천 등지에 남아 있으며, 민간신앙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곳의 동제는 거창읍 · 웅양면 · 남상면 · 신원면 · 가조면 · 가북면에서 당산제 15사례, 산신제 10사례 등 25사례가 보고되어 있으며, 제관의 금기일수가 1개월에 이르는 것도 있다. 그 목적은 거창읍 대평리는 수호신인 용을 모시기 위해, 죽전동과 개봉동은 산짐승의 피해를 없애기 위해, 상동 · 대동 · 구례동 등은 질병의 예방을 위한 것이었다. 또한 신라 헌덕왕 때부터 시작되었다는 기우제를 지내는 기우단이 있는데, 삼봉산에서 먼저 기우하고 다음에 가지리금산(錦山)에서 제사했다고 한다. 구 군지에 의하면, 오방(五方)의 토룡에 대한 제사와 사문(四門)에 기우하는 제사가 끝나면, 불을 피워 밖에 걸고 병으로 물을 푸며 시장을 다른 곳으로 옮기는 의식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용을 만들어 새끼줄로 끌고 다니며 암장을 발굴하는 등 여러 가지 행사를 거행했다고 한다.
이 지역은 험준한 지리적 조건으로 인해 봉우리 · 고개 · 거수(巨樹) · 호식(虎食) 등 자연환경과 관련된 전설 · 민담이 많으며, 영남 우도의 학풍과 관련된 인물전설과 야사가 많이 전승되고 있다. 특히 이 지역은 역사적으로 진한과 변한, 신라와 가야, 신라와 백제, 신라와 후백제 사이에 위치해 지리상 군사요충지였다. 임진왜란 때에도 명나라 군사의 주둔지였으며 의병의 본거지가 되었기 때문에, 산성이 많이 축조되어 이와 관련된 축성설화가 다소 전승되고 있다.
웅양면 한기리의 하성에 얽힌 전설은 전형적인 오누이힘내기전설 유형에 속한다. 옛날 힘센 남매가 있어 오빠는 성을 쌓고 누이는 치마에 돌을 담아 날랐는데, 오빠로부터 성이 완공되었다는 말을 듣고 누이가 도중에 돌을 부어버린 곳이 성 밑의 돌너들이라 전한다. 누이가 치마에 돌을 가득 담아가지고 올 때 돌이 양쪽 귀로 흘러내려 이루어졌다는 돌더미도 있다. 이로써 이 성을 일명 여성(女城) 혹은 치마성이라고 한다. 명당설화에 해당되는 음석(陰石)바위전설도 있다. 거창읍 양평리는 원래 이 음석의 덕으로 운세가 트이다가 동세가 기울자 음석을 없애고 마을 이름을 양평(陽坪)으로 바꾸었다고 전한다.
인물설화로는 산청군 설화에도 등장하는 명의 유이태(劉以泰)에 관한 것이 몇 가지 있으며, 그가 침대롱을 놓아두었다는 침대롱바위가 위천면 사마리에 있다. 또한, 한말의 거유 곽종석과 고려말 장수로 전하는 유형귀(劉亨貴)에 관한 전설이 야사화되어 구전된다. 호식설화는 주로 효자 · 열부와 관계된 것들로서, 가북면 우혜리의 주인을 지킨 소 이야기, 효녀 월랑과 열녀 권씨가 호랑이를 퇴치한 이야기 등이 대표적이다.
이 고장은 벼농사를 주로 지으며 덕유산 줄기에 둘러싸여 바람이 적기 때문에 예로부터 바람을 많이 타는 삼농사가 많이 이루어졌다. 그래서 벼농사에서 불리는 「모찌기소리」 · 「모심기소리」 · 「논매기소리」, 삼을 삼으며 부르는 「삼삼기소리」 등의 노동요가 많다. 이 네 가지 민요는 ‘정자소리’라는 선율에 얹혀 불리는데, 이 소리는 경상도지방에 널리 퍼져 있다. 정자소리는 장절형식으로 되어 있고 한 절은 4음보 넷의 메기는 소리와, 같은 길이의 받는 소리로 이루어지며, ‘안짝’이라 하는 메기는 소리와, ‘밧짝’이라 하는 받는 소리의 가사내용은 대구를 이루는 경우가 많다. 「삼삼기소리」는 부녀자들이 매일 저녁 차례로 돌아가면서 삼을 삼는데, 이를 ‘두레삼(품앗이 삼삼기)’이라 하며, 부녀자들 사이에만 불리는 노래여서 평소의 정감과 한이 잘 표출되어 있다.
노동요로는 이 밖에도 「보리타작소리」, 말뚝을 박으며 부르는 「망께소리」, 물레질하며 부르는 「물레소리」, 베를 짜며 부르는 「베틀소리」 등이 전해진다.
의식요로는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상여소리」 · 「달구소리」, 정초에 지신밟기를 하며 부르는 「지신밟기소리」가 전해지고 있다. 상여를 운반하며 부르는 소리는 느린 「상여소리」와 빠른 「관암보살소리」로 나누어지는데, 「상여소리」는 3분박 4박자로 중모리에 맞으며, 두 장단에 선소리꾼이 선소리를 메기면 상여를 멘 상여꾼들이 같은 장단에 “어 너 너화 오이야 너화 넘차 너화 넘.” 하고 받는다. 선율은 메나리토리로 되어 있으나 간혹 육자배기토리의 선율이 섞인다. 「관암보살소리」는 가파른 산을 오르며 부르는 소리이기 때문에 빠르게 부르며, 메기고 받는 소리의 길이도 짧다. 3분박 4박자로 자진모리에 맞으며 한 장단에 선소리꾼이 “나무아미타불”하고 메기면 상여꾼들이 같은 장단에 “관암보살”하며 받는다. 달구질을 하면서는 「달구소리」를 부르는데, 처음에는 선소리꾼이 일정한 장단이 없이 긴 사설을 촘촘히 엮어 메기면 일꾼들이 대개 3분박 4박자에 “에루달구” 하며 받는데, 받는 소리의 박자길이도 일정하지 않다. 「관암보살소리」나 「달구소리」는 메나리토리로 되어 있다. 「상여소리」 · 「관암보살소리」 · 「달구소리」의 가사는 죽음을 슬퍼하고, 슬퍼하는 사람을 달래는 내용이 주이나, 호상일 때는 때때로 우스운 내용을 담아서 분위기를 바꾸는 경우도 있다.
의식요로서 장례요와는 다른 「지신밟기소리」는 정초에 마을의 안녕과 풍농을 빌며 농악을 치면서 부르는 고사소리인데, 이 군에서는 ‘성주풀이’ · ‘도장풀이’ · ‘마구풀이’ · ‘물풀이’ · ‘호간대풀이’ 등으로 이루어진다. 선소리꾼이 3분박 4박자, 자진모리에 맞는 한 장단에 소리를 메기면 농악패들이 징 · 꽹과리로 같은 장단을 치며 받는데, 메기는 소리는 단순한 선율로 대개 메나리토리로 이루어진다.
거창군에 전해오는 민요에는 노동요와 의식요 외에도 「신세한탄가」 · 「쌍금쌍금쌍가락지」 · 「개미노래」 · 「꿩꿩장서방」 · 「개떡노래」 · 「길군악」 · 「담방구타령」 · 「동풍가」 · 「자진난봉가」 등 전국 혹은 경상도지방에 널리 퍼져 있는 유희요도 많이 있다. 이 군의 민요는 경기도지방의 경토리나 전라도지방의 육자배기토리로 된 선율도 보이지만, 경상도 특유의 메나리토리로 된 선율이 많이 있으며, 정자소리는 같은 경상도라도 동부지역이 빠른 것과는 달리 느린 것이 특징이다. 또한 전라도와 가깝기 때문에 경상도지방의 메나리토리 선율에 전라도지방의 육자배기토리의 선율이 섞여 있는 것이 이 군 민요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농경지 면적은 121.4㎢로서 전체면적 중 경지면적이 점유하는 비율이 15.1%에 불과하고 시가구역에 해당되는 거창읍의 면적도 56.28㎢밖에 되지 않아, 나머지 지목면적 629.92㎢의 대부분이 임야로 되어 있다. 시가구역에 해당되는 거창읍의 면적 중 도시계획이 적용되는 용도지역면적은 주거지역 2.3㎢, 상업지역 0.31㎢, 공업지역 0.39㎢, 잔여면적은 농촌적 성격의 토지로 되어 있다.
경지면적은 1만 1476㏊이며 논이 6,976㏊, 밭이 4,460㏊로 논밭의 구성비 논이 61.3%, 밭이 38.7%여서 논의 비중이 밭보다 훨씬 우세한 편이다. 논의 이용은 주로 소하천 유역의 평야나 산악의 구릉지 중 경사도가 낮은 지역을 대상으로 벼농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거창읍 주변의 분지지역이 이 군에서 중요 논농사지역에 해당된다.
군의 농가호수는 9,154호, 농가인구는 2만 996명으로서 농가인구율이 33.2%에 달해, 산업화가 급속히 진행중인 경남의 시 · 군 중 농업적 성격의 산업활동이 아직도 지배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는 지역 중의 하나임을 증명해 주고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 · 보리 · 콩 · 팥 · 녹두 · 밀 · 호밀 · 완두 · 땅콩이고, 특용작물로는 대마 · 아주까리 · 참깨 · 들깨 등이 있고, 약용작물로는 오미자 · 인삼 · 질경 · 잎당귀 · 목단 · 백작약 · 강활 등이 재배된다. 과수작물로서 1930년대 이래로 사과가 거창읍을 중심으로 재배되고 있다.
또한 축산물로는 한우 · 젖소 · 돼지 · 닭 · 산양 등이 사양되며 곳에 따라 양봉도 행해지고 있다. 거창은 사과와 복수박, 딸기등의 특산물이 전국에 이름난 곳이기도 하며, 특히 우리 고장 특산품인 거창사과는 지리적인 여건이 내륙산간에 위치한 해발 250m의 분지로 일교차가 크고 일조량이 많아 고당도, 짙은 향, 뛰어난 육질, 높은 저장성 등의 특징을 자랑으로 하고 있다. 거창군에서는 5,160ha의 농업진흥지역과 1,216의 농업보호구역을 설정하여 농업생산을 향상시키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광업을 살펴보면 거창군에는 3개의 금속광과 9개의 비금속광이 있으나 현재는 모두 가동되지 않고 있다. 총 사업체수 4,313개 업체로 1만 4,831명이 종사하고 있다. 총 사업체의 76%가 거창읍에 자리하고 있으며 이 외에 위천면, 마리면, 가조면에도 일부 업체가 분포하고 있다. 전형적인 농촌지역임에도 불구하고 농업 및 임업관련 업체는 13개에 불과하며 121명이 고용되어 있다.
어업관련 업체는 전무하며 광업관련 업체도 16개 업체로서 적은 편이다. 총 종업원수는 218명이다. 제조업을 살펴보면 364개 업체에 총 1,719명이 고용되어 있다. 식료품제조업, 비금속광물제조업, 나무 및 가구제조업의 비중이 다른 업종에 비해 상대적으로 매우 큰 편이다.
전체 산업 종류와 비교하여 가장 비중이 큰 서비스업에는 총 3,920개의 업체가 분포하고 있으며 종사자수도 1만 2,773명에 달한다. 도매 및 소매업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데 1,320개의 업체에 2,860명이 종사하고 있다. 다음으로 숙박 및 음식점업체가 1,007개에 2,168명이, 공공 및 개인서비스업체가 569개, 1,113명이 종사하고 있다.
시장으로는 상설시장 2개소 정기시장 3개소가 있어 농촌적 특성이 아직 강하게 남아 있음을 뒷받침하고 있다.
광주대구고속도로가 군의 남부를 동서로 지나고, 이 밖에도 국도의 24호선이 함양합천, 3호선이 김천산청 등지로 연결되어 있으며, 전북특별자치도 무주와도 통하고 있다.
‘경치 좋고 인심 좋은 곳’으로 이름난 이 고장에는 수려한 덕유산의 산세에다가 옛 신라 · 백제 · 가야의 완충지대였던 관계로 유적지도 많아 연중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다. 덕유산에서 흘러내리는 위천은 맑은 계곡과 곳곳에 절경을 이루는 기암괴석이 많아 예로부터 풍류를 즐기기에 알맞은 곳으로 유명하다.
거창읍에서 서북쪽으로 약 13㎞ 지점에 자리잡은 수승대는 이 군의 대표적인 관광명소이다. 위천의 맑은 계곡에 섬같이 우뚝 솟은 수승대는 이황(李滉)이 명명한 거북형의 넓은 암반으로 주위에 노송이 울창하고 구연서원 · 관수루 · 약수정 등의 누각이 건립되어 특히 여름철에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이 곳에서 위천을 따라 내려가면 맑은 계곡물과 울창한 송림, 구름다리가 어우러져 아름다운 경치를 이루는 건계정에 이르게 되고, 북쪽 산록에는 자연동굴에서 샘이 솟아나오는 거열성이 자리잡고 있다.
이 밖에 사선대 · 가조폭대 · 가북낙모대 · 심노정 · 육모정 · 인풍정 등도 명승지로서 이름난 곳이다. 광주대구고속도로를 이용한 관광객이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거창시장, 가조시장, 위천시장, 신원시장은 5일 주기로 장이 섰으나 1981년 이후 거창시장은 상설화되고 나머지 시장만 5일 시장의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1989년 시월연극제로 출발한 거창국제연극제는 황산리 수승대 군민관광지 일대에서 개최되는 국내최대의 야외연극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1960년에 시작된 아림예술제는 이 지역의 전통문화를 계승 · 발전시키기 위한 종합예술축제이다. 위천천 둔치 및 읍 일대에서 이루어진다. 거창군 전역에서 이루어지는 거창평화인권예술제는 한국전쟁 관련 민간인 유족들에 대한 지원과 평화와 인권을 존중하는 사회를 구현하기 위하여 2000년부터 시행된 학술제 및 문예활동 등의 행사이다.
김천리 에 자리 잡은 거창박물관은 전시실과 강당을 갖추고 있으며 이 고장의 독지가인 최남식(崔南植)과 김태순(金泰淳)이 기증한 유물을 바탕으로 1988년에 개관하였다. 김천리의 거창군문화센터는 군민의 여가생활과 문화적 혜택을 위해 2001년에 개관하였으며 실내공연장과 야외공연장을 갖추고 있다. 대현리의 거창사건역사교육관은 거창사건희생자합동위령사업의 일환으로 2003년에 개관하였으며 거창사건관련 사료가 다양한 방식을 통해 전시되고 있다.
거창읍 양평리 에 거창실내체육관이 있고 역시 양평리에 들어설 거창스포츠파크는 2009년 완공예정이며 주경기장과 축구장, 육상트랙 등 각종 경기시설이 갖춰진다.
군의 남서부에 위치한 읍. 면적 56.05㎢, 인구 4만 736명(2015년 현재). 읍소재지는 상림리이다. 본래 위천의 안쪽이 되므로 천내면(川內面)이라 해 6개 리를 관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8개 리로 개편, 관할하다가 1957년거창읍제(居昌邑制) 실시에 따라 월천면의 5개 이를 병합해 거창읍으로 승격 13개 리를 관할,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읍역은 취우령(驟雨嶺, 792m) · 관술령(官述嶺) · 금귀산(710m)에 둘러싸였고 남북으로 황강, 동서로 위천이 흘러 그 유역에 발달된 동서 4㎞, 남북 6㎞에 이르는 거창분지의 낮고 평평한 지역이 중심부를 이룬다.
총면적 중 농경지가 차지하는 면적이 41.4%로서 군내에서는 가장 넓은 농경지를 가지고 있고, 주로 주곡농업을 영위하고 있다. 그 밖에 송정리에 사과단지가 조성되어 있고 양잠도 활발하다. 상설시장도 1개소 있다. 상림리를 중심으로 시가지는 군내 각지 및 대구 · 김천 · 진주 · 전주 · 남원 등지로 통하는 교통의 요지로서, 농산물 · 잎담배 · 목재 · 한지 등의 집산지이기도 하다.
교통은 국도가 사방으로 뻗어 있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상리에 석조물 · 석조관음입상 · 성봉성지(城峰城址) · 건계정 · 김인순추모비(金麟淳追慕碑) · 창충사 · 최씨절부비(崔氏節婦碑), 동리에 개봉고분, 중리에 삼덕정, 양평리에 석조여래입상, 가지리에 거창향교 등이 있다. 아림사지 · 거열산성지 · 건흥사지 등이 있다.
상림(上林) · 중앙(中央) · 대동(大東) · 대평(大坪) · 금천(金川) · 송정(松亭) · 정장(正莊) · 장팔(長八) · 서변(西邊) · 동변(東邊) · 학(鶴) · 양평(楊平) · 가지(加旨) 등 13개 리가 있다.
군의 동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96.24㎢, 인구 1,441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우혜리이다. 본래 거창군 지역으로 옛 가소현의 북쪽이 되므로 가북면이라 해 율리(栗里) · 용산(龍山) 등 18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가서면의 장기동을 병합해 지금의 7개 리로 개편, 관할하게 되었다. 이 면은 거의 산악지로 형성되었고, 의상봉 · 수도산 · 보해산이 위치한다.
산업으로는 거의 식량작물 재배가 중심을 이루나 뽕나무 재배는 다른 면에 비해 약 10%로 우위를 차지한다. 교통은 6번 지방도가 있으나 대체로 불편한 편이다. 문화유적은 용산리에는 임진왜란 때 마을 동편(일명 박구디)에 살고 있던 문씨일족이 왜적을 막기 위해 쌓은 황사산성지가 있는데, 지금도 군량미로 사용했던 쌀의 재(灰)가 나온다. 임진왜란 때 죽산전씨가 축조한 용산리 산성도 이 곳에 있다. 동석리에는 최치원(崔致遠)이 가야산에 은둔할 때 이 곳에 왔던 것을 기념하기 위해 지은 고운정이 있다. 용산리에는 용천정사(龍泉精舍)와 낙모대가 있다.
우혜(牛惠) · 박암(朴巖) · 몽석(夢石) · 용암(龍巖) · 중촌(中村) · 해평(海坪) · 용산(龍山) 등 7개 리가 있다.
군의 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66.13㎢, 인구 3,993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마상리이다. 본래 거창군 지역으로 옛 가소현의 동쪽이 되므로 가동면이라 해 사병(士屛) · 창촌(倉村) 등 6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상가남면(上加南面)의 일부(一釜) · 장항(獐項) · 도동(道洞) · 지산(知山) · 대학(大學) 등 5개 리와 가북면의 용산동(龍山洞) 일부를 병합해 사병 · 수월 · 마상 · 일부 · 도리의 5개 리로 개편, 관할하였다. 1916년 군면 폐합에 따라 가서면의 장기 · 동례 · 대초 · 쇠강 · 기리의 5개 리를 병합하여 가조현의 이름을 따서 가조면이라 하고 10개 리를 관할하였다. 이 면의 동쪽 및 동북쪽에는 이상봉 · 비계산 · 오도산이 있으며, 중앙부에는 가천의 본류 및 다수의 지류가 흘러 가조들은 이 군의 곡창지대이다.
산업으로는 봉나무밭이 군 전체 뽕나무 밭의 17%인 약 20㏊로, 이 군에서 제일 넓어서 누에고치의 생산량도 군내 제1위이다. 쌀 · 보리 등의 식량작물 중심의 재배를 한다. 교통은 면의 중앙을 광주대구고속도로가 지나고, 이와 병행해 지방도가 지나고 있다.
문화유적은 기리에 용계정사(龍溪精舍), 장기리에 원천정, 도리에 상충사(尙忠祠)가 있다. 수월리에는 고견사와 견암사동종(見巖寺銅鐘)이 있고, 명승지로는 수폭대가 있다. 마상(馬上) · 기(基) · 대초(大楚) · 동례(東禮) · 장기(場基) · 사병(士屛) · 석강(石岡) · 수월(水月) · 일부(一釜) · 도(道) 등 10개 리가 있다.
군의 중앙 북단에 위치한 면. 면적 58.45㎢, 인구 1,535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농산리이다. 본래 거창군 지역으로 높은 다리가 있으므로 고제면이라 해 농산(農山) · 온곡(溫谷) 등 16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지상곡면(只尙谷面)의 도동 일부를 병합해 오늘에 이르렀다. 이 면은 삼봉산에 둘러싸인 중위평탄면지역(中位平坦面地域)이다.
산업으로는 뽕나무가 약간 산재하고 이 면의 총면적 중 농경지가 18.7%를 차지해 식량작물 중심의 재배를 한다. 주요 농산물은 쌀 · 보리 등이다. 삼봉산에는 금광업이 발달해 있다. 교통은 국도 37호선이 전북특별자치도 무주군과 연결되어 있다.
문화유적은 봉산리에 석조여래좌상과 신라 초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는 금봉암이 있고, 무주구천동과 연결되어 주위풍경이 수려하다. 농산(農山) · 개명(開明) · 봉계(鳳溪) · 봉산(鳳山) · 궁항(弓項) 등 5개 리가 있다.
군의 남부에 위치한 면. 면적 68.52㎢, 인구 2,605명(2015년 현재). 면소재지는 무촌리이다. 본래 거창군 지역으로 고천면(古川面)이라 해 둔동(屯洞) · 진목정(眞木亭) 등 6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청림면(靑林面)의 지화(只火) · 송변(松邊) · 대산(大山) · 이인정(里仁亭)의 4개 리와, 남흥면의 괘리(掛履) · 전척(剪尺) · 임불(任佛) 등 6개 리와, 무등곡면(無等谷面)의 평촌동 일부를 병합하고 남상면이라 해 둔동 · 오계 · 무촌 · 송변 · 대산 · 진척 · 임불 · 월평 등의 8개 리로 개편, 관할하다가 1973년에 함양군 한의면 춘전리와 진목리를 편입해 현재 10개 리를 관할하였다. 남부에 감악산이 있으며 황강이 남하면과 경계를 이룬다.
산업으로는 사과밭이 많아 거창읍 다음으로 사과가 많이 생산되고 이 면의 총면적 중 농경지의 면적이 14.6%를 차지해 쌀 · 보리 등의 식량작물 중심의 재배를 한다. 교통은 광주대구고속도로가 면의 북서쪽으로 지나며, 지방도가 읍을 지나고 있다.
문화유적은 전척리에 일원정(一源亭), 월평리에 하산재(霞山齋)가 있으며, 대산리에 김숙자사당, 무촌리에는 신라헌강왕이 중병으로 고생하다가 이 곳의 약수로 치병이 되었다 해 그 사례로 창건된 연수사가 있다. 무촌(茂村) · 오계(五溪) · 둔동(屯洞) · 송변(松邊) · 대산(大山) · 월평(月坪) · 전척(剪尺) · 임불(壬佛) · 춘전(春田) · 진목(眞木) 등 10개 리가 있다.
군의 남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49.81㎢, 인구 1,603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무릉리이다. 본래 거창군 지역으로 무듬실의 이름을 따서 무등곡면(武等谷面)이라 해 대야(大也) · 가천(加川) 등 8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지산면(芝山面)의 자하(紫霞) · 신기(新基) · 천동(泉洞) · 대사(大寺) 등 4개 이와 고모현면(古毛峴面)의 양항(梁項) · 아주(娥州)의 2개 리와 합천군 봉산면의 가천동(加川洞) 일부를 병합해 남하면이 되었다. 박유산(朴儒山, 713m)과 감토산(紺土山, 521m)이 위치하고 서쪽은 황강과 경계를 이룬다.
산업으로는 총면적 중에서 경지면적이 17.6%를 차지하고 주민의 대부분이 쌀 · 보리 등의 식량작물 중심의 재배를 하고 있다. 한편 대야리에는 금광업이 발달해 있다. 교통은 광주대구고속도로가 면의 북부를 지나고, 24번도로가 거창~합천과 연결되고, 이외에도 지방도가 지나고 있다.
문화유적은 무릉리의 고분군 · 정씨고가와 월곡산성지 및 성령산성이 있다. 둔마리에 천인주악상도(天人奏樂像圖)가 그려진 고려 초기 지방호족의 묘인 벽화고분이 있다. 양향리에 심소정, 대야리에 삼우당, 지산리에 충의사가 있다. 무릉(武陵) · 양항(梁項) · 둔마(屯馬) · 대야(大也) · 지산(芝山) 등 5개 리가 있다.
군의 중앙 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46.61㎢, 인구 2,163명(2015년 현재), 면소재지는 말흘리이다. 본래 안의군 지역으로 옛 마리현(馬利縣)의 동쪽이 되므로 동리면이라 해 신대(薪代) · 영승(迎勝) 등의 9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남리면(南里面)의 하고(下高) · 동변(東邊) · 엄대(嚴大) · 엄신(嚴新) 등 5개 리를 병합하고, 안의군의 옛 이름 마리현의 이름을 따서 마리면이라 해 지금의 7개 리로 개편, 관할하였다. 조두산(鳥頭山, 942m)이 위치하고 남북방향으로 위천이 흐르며, 영승리에 들이 발달해 있다.
주요산업으로는 다른 면에 비해 양잠업이 활발하고, 이 면의 총면적 중 농경지가 26.9%를 차지해 쌀 · 보리 등의 식량작물 중심의 재배를 하고 있다. 기백산 밑에서는 수은을 생산하고 있다. 교통은 국도 24번이 거창읍과 함양군 안의면과 연결되고 있다.
문화유적은 영승리 뒷산의 선돌, 말흘리에는 고분군과 송림사지가 있는데, 이곳에서 석조석가여래좌상과 연화대좌석조팔백나한상이 발견되었다. 영승(迎勝) · 말흘(末屹) · 율(栗) · 월계(月溪) · 고학(皐鶴) · 대동(大東) · 하고(下高) 등 7개 리가 있다.
군의 서단에 위치한 면. 면적 125.26㎢, 인구 1,635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갈계리이다. 본래는 안의군 지역으로 안의읍내 북쪽이 되므로 북상면이라 해 중산(中山) · 갈계(葛溪) 등 9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이 군에 편입되어 지금의 7개 리로 개편, 관할하였다. 남덕유산 · 월봉산이 위치하며, 산악지대로 갈계리의 앞 숲은 백로 및 왜가리의 도래지이다.
주요산업으로는 뽕나무가 약간 재배되고 있으며 농경지율이 8.5%를 차지하며 쌀 · 보리 등의 식량작물 중심의 재배를 하고 있다. 월성리에는 흑연광산이 있다. 교통은 지방도가 있으나 불편한 편이다.
문화유적은 농산리의 고인돌과 석조여래입상, 갈계리의 갈천서당과 북상삼층석탑이 있으며, 소정리에는 송계사(松溪寺)가 있다. 갈계(葛溪) · 소정(蘇井) · 농산(農山) · 병곡(並谷) · 산수(山水) · 월성(月星) · 창선(昌善) 등 7개 리가 있다.
군의 남단에 위치한 면. 면적 73.72㎢, 인구 1,613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과정리이다. 본래 삼가군(三嘉郡) 지역으로 율원이 있으므로 율원면이라 하였다. 수다(水多) · 원동(院洞) 등 6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지면(神旨面)의 과정(瓜亭) · 내세(內世) · 내동(內洞) · 청연(淸淵) · 중유(中楡) 등 9개 리를 병합하고 신지와 율원의 이름을 따서 신원면이라 하고 9개 리로 개편, 관할하였다. 감악산 · 갈전산 · 보록산 · 월여산(月如山, 862m) 등 구릉성 산지에 둘러싸여 있고, 옥계천이 흐르고 있다.
주요 산업으로는 부분적으로 뽕나무가 산재해, 총경지면적 중 경지면적이 18.7%를 차지하고 있으며, 주민의 대부분은 쌀 · 보리 · 콩 등의 식량작물 중심의 재배를 하고 있다. 교통은 지방도가 주변의 면과 연결되어 편리한 편이다. 문화유적은 덕산리에 오례사, 과정리에 덕남사지(德南寺址) · 감악산남록사지이형석탑(紺嶽山麓寺址異形石塔) 등이 있다.
과정(苽亭) · 양지(陽地) · 구사(九士) · 수원(水院) · 덕산(德山) · 청수(淸水) · 중유(中楡) · 대현(大峴) · 와룡(臥龍) 등 9개 리가 있다.
군의 중앙 북단에 위치한 면. 면적 58.47㎢, 인구 2,082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노현리이다. 흰대미산 남쪽이 되므로 웅양면이라 해 용암(龍巖) · 동변(東邊) 등 13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적곡면(赤谷面)의 10개 리를 병합하였다. 국사봉(國士奉)이 위치하고 있으며, 보리수 · 느티나무 · 굴참나무 등이 자생한다.
이 면의 총경지면적 중 농경지율이 23.9%이고, 쌀 · 보리 등의 식량작물 중심의 재배를 하고 있으며, 누에치기도 활발하다. 교통은 국도 3호선과 지방도가 경상북도 김천시와 연결되고 있다.
문화유적은 한기리의 하성지(霞城址, 일명 女城址)가 있으며 임진왜란 때 축성된 웅양면과 주상면의 경계에는 웅현성이 있다. 그리고 노현리에 포충사, 동호리에 설천재가 있다.
노현(老玄) · 죽림(竹林) · 동호(東湖) · 산포(山圃) · 군암(君巖) · 신촌(新村) · 한기(汗基) 등 7개 리가 있다.
군의 중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53.88㎢, 인구 2,186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장기리이다. 본래 안의군 지역으로 옛 현터가 있었으므로 고현면(古縣面)이라 해 강천 · 마항 등 8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북하면의 6개 리를 병합해 이 군에 편입하고, 위천의 이름을 따서 위천면이라 하였다. 1995년대정리가 황산리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이 면은 금원산과 기백산이 위치하고 위천이 남쪽으로 흐른다.
면의 총면적 가운데 농경지의 면적이 18.1%를 차지하고 있으며, 식량작물 중심의 재배를 하고 있다. 교통은 시군도가 면 소재지를 중심으로 발달되어 있다.
문화유적은 강천리의 반구헌 · 산역천향사정온선생생가, 황산리의 구연서원 · 학촌향사 · 화천향사, 모동리의 정충향사, 가원리의 금계향사, 상천리의 가섭암지 · 마애삼존불상 · 덕천향사 등이 있다. 명승지로는 황산리의 암벽에 이황의 명명시와 입훈 등 명인의 시가 판각되어 있는 수승대가 있다.
장기(場基) · 남산(南山) · 상천(上川) · 강천(薑川) · 황산(黃山) · 당산(棠山) · 모동(茅東) 등 7개 리가 있다.
군의 중앙부에 위치한 면. 면적50.03㎢, 인구 1,640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도평리이다. 본래는 주곡면(主谷面)이라 해 고대(古大) · 거기(渠基) 등 9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지상곡면의 연교 · 외오산 · 내오산 · 오류 · 완서 등 5개 리와 안의군 북하면의 무월동 일부를 병합해 주곡과 지상의 이름을 따서 주상면이 되었다. 토봉(吐峰)에서 미수천(渼水川)이 발원하여 황강에 합류한다.
이 면의 총면적 중 농경지의 면적이 약 20%를 차지하고 주민의 대부분이 식량작물 중심의 재배를 하고 있다. 교통은 국도 3호선이 거창읍과 웅양면으로 연결되고 있다.
문화유적은 완대리에 학사재 · 고인돌, 내오리에 고인돌, 성기리에는 성기성이 있다. 연교리에 성암사와 덕봉사가 있다.
도평(道坪) · 내오(內吾) · 완대(玩臺) · 성기(聖基) · 연교(連橋) · 거기(渠基) · 남산(南山) 등 7개 리가 있다.